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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52주 동안, 주당 한 권의 책을 읽고, 책 하나당 하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52권 자기 혁명'을 제안한다. 1년 뒤에는 52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 기자말

우리는 진화 게임의 최종 승자가 인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리처드 도킨스의 말대로, 진화란 결국 유전자들의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인간 말고도 많은 참여자들이 있다. 사과도, 쌀도, 소도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

더 크고 달콤한 사과, 더 쫄깃한 쌀, 더 부드러운 소고기를 만드는 유전자는 인류의 선택을 받아 절멸의 위기에서 멀리멀리 벗어날 수 있다. 이들 유전자는 지구를 장악한 종, 인류의 미각을 사로잡는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학습하기에 충분히 많은 세대를 거쳤다.

인류가 소, 닭, 돼지를 가축화했다고 믿고 있지만, 매트릭스의 진실은 그 반대일 수 있다. 소, 닭, 돼지는 우리의 미각을 사로잡아 자신들의 유전자를 지구상에 무수하게 퍼뜨렸다. UN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약 200억 마리의 닭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지구의 주인이 누구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곡물의 무서운 진실

 
<그레인 브레인> 표지
 <그레인 브레인> 표지
ⓒ 지식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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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조종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번창하게 한 것은 가축만이 아니다. 식물은 동물보다 더 광범위하게 인류의 미각을 조작해 왔다. 태초에 야생에서 자라던 옥수수와 밀이 현재의 모습에 비해 얼마나 초라했는지는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 균, 쇠>에 잘 나와 있다.

오랜 세월에 걸친 교배와 품종향상은 인간과 곡물 사이의 상호의존이 심화되는 과정이다. 곡물은 유전자의 보존과 확산을, 인류는 안정적인 식량 조달선을 얻게 되는 윈-윈 게임이다.

데이비드 펄머터의 <그레인 브레인>은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곡물과 뇌에 관한 책이다. 알츠하이머병과 간질은 물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불면증 등 대개의 뇌질환이 탄수화물과 글루텐의 섭취와 관련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980년대 중반의 광고 문구를 유심히 떠올려 보면, "이것은 마약에 취한 뇌입니다"라는 인상적인 구호와 프라이팬에 놓인 달걀 프라이 사진을 보여 주는 대규모 마약 반대 캠페인 공익 광고가 기억날지 모른다. 이 효과적인 이미지는 뇌에 미치는 마약의 영향이 달걀에 미치는 뜨거운 프라이팬의 영향과 같다고 암시했다. 이 광고는 뇌에 미치는 곡류의 영향에 관한 나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보여 준다. (22-23쪽)

탄수화물, 특히 당류를 지나치게 섭취하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통곡물로 만든 시리얼이나 식빵은 건강식이라는 이유로 더 비싸게 판매된다. 통밀이 정제된 밀에 비해 섬유질이 풍부한 것은 사실이다. 탄수화물은 섬유질 아니면 당질이다. 통곡물도 섬유질 부분을 제외하면 당질이고, 당질은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대사된다. 통밀이든 밀가루든 포도당으로 돌아간다. <지방의 진실 케톤의 발견>의 저자 무네타 테츠오는 이 사실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쌀이 목구멍 안쪽을 지나면 설탕과 같다."

글루텐의 위협

 
비소도 일단 먹어보고 내성이 없는 경우에만 피하면 될까? 글루텐이라고 왜 다르게 취급해야 한냐고, 저자는 항변한다.
 비소도 일단 먹어보고 내성이 없는 경우에만 피하면 될까? 글루텐이라고 왜 다르게 취급해야 한냐고, 저자는 항변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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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수화물이 뇌 염증을 일으킨다는 것이 <그레인 브레인>의 요점이다. 뇌에는 통증 수용체가 없어 염증이 발생해도 우리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통증이 없다고 해서 손상이 없다고 속단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의 뇌 영상을 보면,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활성화된 세포들의 모습이 보인다.

글루텐 민감증이라는 병이 있다. 따라서 글루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험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예를 들자면 독극물인 비소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들은 강한 내성을 보인다. 그렇다면 비소도 어떤 사람들에게만 위험한 물질일까? 민감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소도 글루텐도 위험 물질이다.

글루텐은 단백질이다. 사람들은 어떤 단백질에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글루텐에 대해서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글루텐의 경우, 특유의 '끈적끈적한' 점성이 영양의 흡수와 분해를 방해한다. 상상할 수 있듯이, 소화가 덜 된 음식은 내장에 덩어리진 잔류물로 남게 되고, 이때 경계경보를 발령받은 면역 체계가 결국에는 소장의 내벽을 공격한다. 이때 사람들은 복통, 메스꺼움, 설사, 변비, 속 불편감 같은 증상들을 호소한다. 그러나 위장 장애의 뚜렷한 징후는 없더라도, 예컨대 신경계처럼 몸속 어딘가에서 소리 없는 공격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60-61쪽)

앞에서 말했듯이, 뇌에는 염증을 느끼는 통증 수용체가 없지만, 그렇다고 염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글루텐을 먹고 속이 불편한 사람들이 나은 처지인 것이다. 글루텐을 먹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은 통증 수용체가 없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더 중요한 신체부위, 예컨대 뇌를 공격당하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글루텐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면역 체계를 가진 사람의 약 99%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루게릭병으로 잘못 진단받은 일부 사람들이 단순히 글루텐 민감증이어서 글루텐을 끊자 증상이 해소되었다고 밝힌 연구도 있다.

그 어떤 약도 듣지 않는 편두통과 함께 평생을 살던 63세의 프랜, 헌팅턴 병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의 이상 운동 질환을 앓던 23세의 커트, 그리고 10초 이상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던 네 살박이 ADHD 환자 스튜어트는 모두 글루텐이 없는 식사를 통해 증상을 거의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펄머터와 같이 글루텐 제거 식단을 뇌질환 치료에 적용하는 의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운명을 바꾸는 법

그렇다면 뭘 먹어야 할까? 섬유질이 아닌 탄수화물, 즉 당질 섭취를 줄여라. 식품 성분표에는 탄수화물과 섬유질 함량이 나와 있다. 어떤 과자에 탄수화물이 10g, 섬유질이 4g 들어있다면 당질의 양은 10g - 4g = 6g이다.

과일은 아무리 먹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과일이 해로울 리가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과당은 과일에 들어있기 때문에 과당이다. 특히 망고, 파인애플, 살구 등 지나치게 단 과일은 혈당을 급격하게 상승시킨다. 다소 의외지만, 일반적으로 과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는 베리류가 가장 좋다. 솔직히 말해 과일이라고 할 수 없지만 과일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토마토와 친해져야 한다.

먹거리만 조심한다고 글루텐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욕실 용품과 미용 제품의 제조에는 글루텐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피부 전체를 통해 스며드는 글루텐의 양은 놀랄 정도다. 성분표를 철저히 분석해서 글루텐이 없는 제품을 사용하도록 한다.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은 마약과 같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비행기 안에서였다. 글루텐에 대한 공포로, 나는 기내식 파스타에서 브로콜리만 먹고 나머지를 모두 남겼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힘든 여행에 대한 보상으로 나는 카페라테와 함께 달콤한 간식류를 거리낌 없이 먹어치웠다.

한 가지만 실천해 보자. 밥 양을 줄이는 것이다. 밥공기를 작은 것으로 바꾸고,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덜 때는 반찬 칸 귀퉁이에 조금만 덜자. 밥 칸은 샐러드로 채우면 된다. 습관은 중독보다 강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레인 브레인 - 탄수화물이 뇌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폭로한다!

데이비드 펄머터 지음, 이문영 외 옮김, 윤승일 감수, 지식너머(2015)


태그:#52권 자기 혁명, #데이비드 펄머터, #<그레인 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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