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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융기문 발’ 보존처리 과정
 ‘토기 융기문 발’ 보존처리 과정
ⓒ 석당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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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가면 신석기시대 그릇 '토기 융기문 발'(위 사진)을 볼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색이 바래고 금이 간 '토기 융기문 발'을 앞으로 더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보존처리'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작업을 끝내고 이 그릇 한 점과 그간의 문화재 보존처리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주 색다른 전시회를 열고 있다.

'보존처리 유물 공개전'은 12월 23일까지 이어진다. 또 19일 오후 3시에는 석당박물관 세미나실에서 특별 강연까지 연다. 유물 보존처리를 담당한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이선명 학예연구사가 '과학으로 되찾은 토기 융기문 발'에 대해 발표하고, 이어서 공주대학교 조영훈 교수가 '문화유산과 3차원 디지털 기술의 만남'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
 
보존처리 하기 전과 한 뒤의 모습
 보존처리 하기 전과 한 뒤의 모습
ⓒ 석당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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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가리 요시타로와 '토기 융기문 발'

이 그릇은 일제강점기 1933년 부산고고회(1931-1941. 일본인 중심의 아마추어 고고학회) 회원 오마가리 요시타로(大曲美太郎)가 부산 영선동 패총에서 발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산동 패총은 지금의 영도구 영선동 파출소가 있는 자리이다.

'토기 융기문 발'에서 '발(鉢 바리때발)'은 말 그대로 바리때를 말한다. 그릇 모양이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닮았다 해서 '발'을 붙인 것이다. 융기문(隆起紋 두터울융·일어날기·무늬문)은 '두텁게 일어나 있는 무늬'를 뜻한다. 하지만 이 명칭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보통 융기는 스스로 일어나는 것인데, 이 그릇의 무늬는 저절로 융기한 것이 아니라 신석기인이 '일부러' 흙띠(덧띠)를 붙여 '무언가'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융기문'보다는 '덧띠무늬'가 더 알맞다. '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근대의 관점으로 신석기 그릇에 이름을 붙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신석기인의 세계관 속에서 적절한 이름을 찾아 붙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오마가리 요시타로가 ‘토기 융기문 발’을 들고 있다. 그는 1905년 조선에 왔고, 여러 관청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두었다. 일본 패망 직전 1945년 6월 30일에는 부산도서관장직을 맡기도 했다.
▲ 오마가리 요시타로 오마가리 요시타로가 ‘토기 융기문 발’을 들고 있다. 그는 1905년 조선에 왔고, 여러 관청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두었다. 일본 패망 직전 1945년 6월 30일에는 부산도서관장직을 맡기도 했다.
ⓒ 문물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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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자형, N자형, V자형?

우리는 아직까지 빗살무늬토기의 '빗살무늬'가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하고 그저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말하고 있다. 사실 이 말은 빗살무늬가 무엇을 새긴 무늬인지 '모른다'는 말을 좀 고상하게 돌려서 하는 말일 것이다. '토기 융기문 발'의 무늬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래 인용문은 이 그릇에 대한 설명글이다.
 
반구형의 발형토기(鉢形土器)로 구순부에는 새김문이 있고, 구연부 한쪽에 짧은 주구(注口)가 부착되어 액체를 담아 따르도록 되어 있다. 토기 몸체 상부에는 점토대(粘土帶)를 W자형으로 붙인 뒤 이 점토대를 띠 모양으로 누르고 새김을 해서 장식효과를 높이고 있다.
-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소장품목록>(2001) 288쪽
바닥이 둥근 반구형 그릇이며 아가리에는 N자형 점토 띠를 연속적으로 붙이고 그 윗면을 눌러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아가리 한쪽에는 조그만 귀때가 달려 있다. 액체를 따르기 위한 귀때가 달린 신석기시대 토기는 아주 드문 편이다.
- <선사 유물과 유적>(이건무·조현종 글, 솔, 2003), 100쪽

 
장식무늬는 덧띠문을 N자형으로 붙였는데, 접합 방법에 있어서도 마치 지네 모양으로 점토 끝 부분을 도구로 눌러 시문하여 기법 면에서 독특함을 보이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V자형 점토띠 장식 무늬와 귀때(注口, 주구)가 있는 것이 특징이며,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 중 유일하게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유물(제597호)이다.
-석당박물관 보도자료, 2018년 9월 3일
 
네 인용문에서 첫 번째 석당박물관 설명글이 가장 어렵다. '발형토기'는 바리때 모양 토기를 말하고, 구순(口脣)은 입과 입술이다. "구순부에는 새김문"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아가리 부분에서는 새김무늬를 찾을 수 없다. 주구(注口 물댈주·입구)는 말 그대로 주둥이·부리·귀때를 말한다. '부착'도 적절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점토대(粘土帶 끈끈할점·흙토·띠대)는 '흙띠' 또는 '덧띠'로 쓰면 좋겠다.

네 인용문을 보면 이 그릇의 무늬를 모두 다르게 말하고 있다. W자형, N자형, V자형, 지네 모양이라 하고, '장식 무늬'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이 그릇의 무늬는 하늘에 걸려 있는 구름, 그 구름 속에 있는 비(雨, 수분)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 ‘토기 융기문 발’ 무늬 이 그릇의 무늬는 하늘에 걸려 있는 구름, 그 구름 속에 있는 비(雨, 수분)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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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형 구름과 세모형 구름

선사시대 그릇이듯 역사시대 그릇이든 그릇 무늬를 볼 때는 아가리 쪽을 '하늘'로 보고 읽어야 한다. 이 그릇의 아가리 쪽 무늬는 '구름무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세계 신석기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그릇에 구름과 비무늬를 새겼다. 구름무늬는 주로 반타원형과 세모형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어느 지역에서 먼저 시작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랬다.

고대 문양학자 리바코프, 김버터스, 아리엘 골란은 반타원형 구름이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세모형 구름으로 바뀐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무엇보다도 그들은 신석기인이 구름을 왜 반타원형·세모형으로 새겼는지 말하지 않는다). 세계 신석기인이 빚은 그릇을 살펴보면 반타원형보다는 세모형 구름이 훨씬 더 많고 세모형 구름과 반타원형 구름을 같이 새긴 나라가 많다.

한반도의 신석기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 그들은 구름과 비를 언제나 신석기시대 '농사의 시작'과 관련하여 설명하는데 이 또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는 구석기시대 홍적세 기간에 겪었던 잦은 홍수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 때 겪었던 해수면의 상승과 수십일 동안 퍼부었던 장대비, 홍수와 관계가 깊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 '빗살무늬토기의 비밀' 편에서 아주 자세히 밝힐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 잘못된 문제틀까지도 다루려고 한다. 아래 사진은 한반도 신석기인과 세계 신석기인이 새기고 그렸던 반타원형 구름과 세모형 구름무늬이다.
  
1·3. 서울 암사동(국립중앙박물관) 2. 부산 동삼동(국립중앙박물관) 4. 이란 아믈라쉬 그릇(기원전 1200-1000년) 5. 남아프리카 줄루 그릇(20세기, 높이 29.2cm) 6. 영국 앵글로색슨시대 그릇. 7. 미국 아칸소(Arkansa) 주 피칸 포인트(Pecan Point) 신석기 그릇 8. 미국 캘리포니아 아메리카 원주민이 짠 바구니(19세기, 높이 20.3cm)
 1·3. 서울 암사동(국립중앙박물관) 2. 부산 동삼동(국립중앙박물관) 4. 이란 아믈라쉬 그릇(기원전 1200-1000년) 5. 남아프리카 줄루 그릇(20세기, 높이 29.2cm) 6. 영국 앵글로색슨시대 그릇. 7. 미국 아칸소(Arkansa) 주 피칸 포인트(Pecan Point) 신석기 그릇 8. 미국 캘리포니아 아메리카 원주민이 짠 바구니(19세기, 높이 20.3cm)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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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은 서울 암사동에서 나온 반타원형 빗살무늬토기 구름무늬이다. 이 무늬는 우리나라 타원형 구름무늬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0> '빗살무늬토기' 편에서는 이것을 '무지개무늬'라 하는데, 그게 아니라 타원형 구름무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타원형 안에 점점이 점을 찍은 것은 구름 속의 비(雨) 또는 물(水)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사진2, 3, 6, 7, 8〉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2-7〉은 모두 세모형 구름이다. 이 가운데 부산 영선동 '토기 융기문 발'과 가장 비슷한 도상은 '부산' 동삼동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조각 〈사진2〉이다. 놀랍게도 아프리카 줄루 사람들은 신석기 때부터 새겼던 구름무늬를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사진5〉). 줄루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 모잠비크, 잠비아, 수단, 카메룬의 장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그릇과 바구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진8〉의 도상과 '토기 융기문 발'은 거의 같은 도상이다. 이들 또한 아프리카 장인들처럼 신석기 때부터 새겼던 구름무늬를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기고 있다. 더구나 미국 아칸소 주 신석기인이 빚은 그릇 〈사진7〉은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이 빚었던 빗살무늬토기와 똑같은 방법으로 무늬를 새겼다. 이러한 빗살무늬토기는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까지 널리 퍼져 있는 무늬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밝힐 것이다.

태그:#토기 융기문 발, #융기문토기, #덧띠무늬토기, #석당박물관, #삼각형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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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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