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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의 모양새가 삼각형을 하고 있다. 우산이라도 펼쳐놓은 듯하다. 나무기둥은 우산의 손잡이 같다. 함평 영사재 앞 배롱나무다.
 배롱나무의 모양새가 삼각형을 하고 있다. 우산이라도 펼쳐놓은 듯하다. 나무기둥은 우산의 손잡이 같다. 함평 영사재 앞 배롱나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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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품송(正二品松)을 닮았다. 나무의 모양새가 삼각형을 하고 있다. 흡사 우산이라도 펼쳐놓은 듯하다. 삼각 모양의 품새 아래로 기둥이 반듯하게 뻗어있다. 골골이 확연한 나무 기둥이 우산 손잡이 같다.

잘 생겼다. 키도 훤칠하다. 7m는 족히 돼 보인다. 허리둘레는 2m 남짓. 가만히 두 팔을 벌려 안아봤다. 손끝이 서로 닿지 않는다. 나무의 결도 매끈해 보인다. 훌훌 벗어던진 나무껍질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나뭇가지를 아슬아슬 붙들고 있는 자태가 매혹적이다.

꽃도 진분홍 빛깔로 아름답다. 막강한 권력도 10년 못가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만, '화무백일홍'으로 유혹한다. 고혹적인 아름다움이다. 배경으로 펼쳐지는 파란 하늘도 그지없이 깔끔하다.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는 꽃잎이 살갑다. 나무 아래에 살포시 내려앉은 꽃망울도 초록의 빛깔과 대비를 이뤄 더욱 빛난다. 황홀경이다.
  
함평 백야산 영사재 앞 배롱나무의 위용. 수령 500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꽃과 나무의 자태가 곱다. 곱게 나이 들었다.
 함평 백야산 영사재 앞 배롱나무의 위용. 수령 500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꽃과 나무의 자태가 곱다. 곱게 나이 들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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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영사재 앞 배롱나무에서 엿보이는 세월의 더께. 수령이 500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꽃과 나무의 자태가 곱다.
 함평 영사재 앞 배롱나무에서 엿보이는 세월의 더께. 수령이 500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꽃과 나무의 자태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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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함평군 백야산 영사재(永思齋) 앞의 배롱나무 풍경이다. 20년 전에 보호수로 지정됐다. 수령이 500년이라고 안내판에 씌어 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꽃과 나무의 자태가 곱다. 시쳇말로 곱게 나이 들었다.

배롱나무도 한 그루가 아니다. 수백 년을 산 나무가 세 그루다. 나무 삼형제 같다. 젊은 배롱나무는 더 있다. 일가족 여러 대가 한데 모여 사는 인간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오손도손 오붓해 보인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다. 첫사랑, 첫 입맞춤처럼. 내게는 진분홍 배롱나무 꽃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화려한 봄꽃도, 향기 진한 가을꽃도 아닌 것이 정말이지 아름답다. 찬연한 빛깔로 뿜어내는 꽃너울이 정열적이었다. 요염하기까지 했다.
  
함평 영사재 앞 배롱나무에서 엿보이는 세월의 더께. 나무와 껍질에서 수령이 묻어난다. 시쳇말로 곱게 나이 들었다.
 함평 영사재 앞 배롱나무에서 엿보이는 세월의 더께. 나무와 껍질에서 수령이 묻어난다. 시쳇말로 곱게 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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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적인 배롱나무의 진분홍 꽃. 화려한 봄꽃도, 향기 진한 가을꽃도 아닌 것이 정말 아름답다. 요염하기까지 했다.
 정열적인 배롱나무의 진분홍 꽃. 화려한 봄꽃도, 향기 진한 가을꽃도 아닌 것이 정말 아름답다. 요염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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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은 어느 한 철, 눈부시도록 화사하게 피었다가 며칠 만에 속절없이 꽃잎 떨구는 다른 꽃과 달랐다. 꽃을 석 달 하고도 열흘 동안이나 피운다. 그것도 한 송이 한 송이가 오래 머무는 게 아니다. 날마다 새로운 꽃을 피워낸다. 꽃송이도 무수히 많다. 무더운 여름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도 애틋하다.

배롱나무의 이름도 재밌다.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고 백일홍, 나무백일홍, 목백일홍으로 불린다. 껍질을 손끝으로 긁으면 이파리가 움직인다고 '간지럼나무'로도 불린다. 꽃이 질 때쯤 벼가 누렇게 익어 쌀이 된다고 '쌀밥나무'라고도 한다.

배롱나무 아래로 난 길도 다소곳하다. 진분홍 꽃잎이 떨어져 바닥에 깔리면 환상적인 꽃길이 되겠다. 잠시 그 풍경을 그려본다. 금세 시 한 소절이 튀어나올 것 같다. 산중에 들어앉은 탓에 배롱나무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비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걸어도 운치 있겠다.
  
영사재와 어우러진 배롱나무 고목. 영사재는 함평이씨 효우공파의 제실이다.
 영사재와 어우러진 배롱나무 고목. 영사재는 함평이씨 효우공파의 제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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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옆의 영사재. 영사재는 함평이씨 효우공파의 제실이다. 1804년에 처음 지어졌다.
 배롱나무 옆의 영사재. 영사재는 함평이씨 효우공파의 제실이다. 1804년에 처음 지어졌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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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옆의 영사재도 멋스럽다. 영사재는 함평이씨 효우공파의 제실이다. 1804년에 처음 지어졌다. 묘는 이보다 300여 년 앞서 조성됐다. 배롱나무도 그때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롱나무와 제실, 묘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오래 전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조화롭다.

영사재에서 배롱나무 꽃너울을 바라본다. 절정의 시기를 지났지만, 여전히 한 폭의 그림이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작품사진이 된다. 이내 마음도 한결 더 느긋해진다. 살랑이던 바람결이 가을의 내음을 전해준다.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와 풀벌레 소리도 정겹다. 배롱나무 꽃으로 이름난 담양의 명옥헌원림에 견줄 만한 풍경이다. 사무치게 호젓해서 더 좋다.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고 하죠. 구름 속에 담긴 반달처럼, 아늑한 공간입니다. 천하의 명당자리죠. 선친들이 여기에 묘를 쓰고, 배롱나무를 심은 것으로 봅니다."

영사재에서 만난 이영호(함평군 나산면)씨의 말이다.
  
수령 500년의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영사재 풍경. 제실과 조화를 이룬 배롱나무 고목이 더 멋스럽게 보인다.
 수령 500년의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영사재 풍경. 제실과 조화를 이룬 배롱나무 고목이 더 멋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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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난 배롱나무 꽃. 살랑이던 바람결이 배롱나무 꽃을 간지럽히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난 배롱나무 꽃. 살랑이던 바람결이 배롱나무 꽃을 간지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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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에 얽힌 그의 추억은 제사와 성묘를 넘어 학창시절 소풍과도 엮인다. 이 일대가 '단골' 소풍장소였다고. 당시 학생들은 녹음기를 틀어놓고 막춤을 췄다. 친구들의 장기자랑도 흥겨웠다. 배롱나무 부근에 살짝 숨겨둔 보물을 찾았을 땐 정말이지 오졌다. 어린 학생들한테 오래도록 남을 추억의 시간이었다. 이씨의 회고다. 

"소풍 장소로 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길이 넓지 않고, 외길이었거든요. 학생들이 줄지어 가는 모습, 상상해 보십시오.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도 선생님들이 통제하기에 정말 좋았을 테고요."
 
배롱나무 꽃은 한 철, 눈부시게 피었다가 며칠 만에 꽃잎 떨구는 다른 꽃과 다르다. 꽃을 석 달하고도 열흘 동안 피운다.
 배롱나무 꽃은 한 철, 눈부시게 피었다가 며칠 만에 꽃잎 떨구는 다른 꽃과 다르다. 꽃을 석 달하고도 열흘 동안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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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규행 가옥. 영사재 앞 배롱나무를 심고 가꾼 함평 이씨 효우공파의 옛집이다.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규행 가옥. 영사재 앞 배롱나무를 심고 가꾼 함평 이씨 효우공파의 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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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배롱나무를 심고 영사재를 지은 함평이씨 효우공파는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에 모여살고 있다. 효우공 이접의 후손들이다. 초포리에 있는 이건풍 가옥과 이규행 가옥이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있다. 함평생활유물전시관에선 옛 사람들의 지혜와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나산면은 조선시대에 모평현에 속했다. 1409년 함평현과 모평현이 합해지면서 함풍현이 됐다. 일제강점기엔 항일운동의 중심에 섰다. 강골촌으로 꼽는 3성(장성 곡성 보성)·3평(함평 남평 창평)의 거점이었다. 배롱나무는 근현대의 움푹진 곡절을 기억하고 있다. 
 
함평생활유물전시관 전경. 옛 사람들이 쓰던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 선인들의 지혜와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함평군 나산면에 있다.
 함평생활유물전시관 전경. 옛 사람들이 쓰던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 선인들의 지혜와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함평군 나산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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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배롱나무, #목백일홍, #영사재, #함평이씨, #이규행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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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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