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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탐마삿대학교 정치학과의 평범한 학생 콘카녹 쿰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소도의 반인권적 상황을 공유하며 유명해졌다(자료사진).
 태국 탐마삿대학교 정치학과의 평범한 학생 콘카녹 쿰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소도의 반인권적 상황을 공유하며 유명해졌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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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탐마삿대학교 정치학과의 평범한 학생 콘카녹 쿰타는 2년 전 돌연 '유명'해졌다. 여성 학생운동가로서 목격한 교도소의 반인권적인 단면을 대중적으로 공유하면서부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반정부 시위 참여 후 보석 재판을 받으면서 8시간 동안 머물렀던 여성교도소에서의 경험을 썼다. 여성 수감자들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바로가기). 1100여명이 이 글을 공유했다.

지난 29일 방콕에서 만난 콘카녹은 2년 전 일을 떠올리며 "판사의 보석 결정을 기다리는 중인데도 기결수와 같은 입소 절차를 거쳤다. 보석 결정이 난 후에도 5시간이나 수감돼 있었다. 감옥을 맛보게 하고, 내게 겁을 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교도소 안 다른 여성 수감자 수백 명 앞에서 사롱(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는 전통 문양의 커다란 천)으로 몸을 가린 채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임신테스트, 질 검사를 거쳐야 했다. 질 검사는 마약사범에 적용되는 절차다. 모든 것을 교도관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다. 왜 사람들이 감옥에서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는지 이해하게 됐다."

이 모든 경험은 그가 2015년 9월 군부 비판 시위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콘카녹은 민주화 운동권 학생들과 함께 라자박티 공원에서 군부의 부패 의혹을 제기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군인들에게 붙잡혔다. 이후 시위대는 다시는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한 뒤 풀려났다.

하지만 콘카녹은 혼자 서명을 거부하고 재판에 회부됐다.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정부 허가 없이 해외에 나갈 수 없게 됐다. 이후 콘카녹은 매달 군사재판소에 찾아가 이 조치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도, 경찰도 모두 '가해자'

지난 4년여간 여성 학생 운동가로서 그가 경험한 태국의 현실은 군부 정권도, 민주화 진영도 여성에게는 모두 위험하다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규정한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이 경직된 정치 환경과 만나면서 여성을 더욱 취약한 위치로 내모는 탓이다.

태국 여성 활동가들은 시위를 막는 남성 군경과 시위에 함께 참여하는 남성 동료 모두 성폭력의 가해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2014년 5월 22일 군부 쿠데타 이후 민주화 운동에 나선 20-30대 여성 활동가들이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현안이다.

"배꼽이 드러나는 짧은 셔츠를 입고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진압경찰이 다가와서 배가 참 예쁘다고 말하고 갔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남성이고, 나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약자인 여성으로서 성폭력의 위협을 느꼈다."

새로운 민주주의 운동(New Democracy Movement) 등 젊은 민주화 운동 진영 안에서도 최소 2건의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상대여성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한 '이름 있는' 남성 활동가들은 사과를 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축구를 보며 어울리는 남성 중심적 민주화 운동 커뮤니티의 중추적 인물로 남아있다.

콘카녹은 "피해여성이 가해남성의 지명도에 부담을 느끼며 겨우 피해사실을 털어놓은 정황에 비춰볼 때 성폭력 사례는 더 있을지 모른다"며 "진보적이라는 남성들도 여성의 성적 권리, 동의(consent) 개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운동은 당연히 남성이 주도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주의 계열의 남성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태국 지상파 방송 보이스TV 니티톤 수라-분딧 기자는 말한다.

"여성인권 문제, 젠더 폭력 사건들이 정치 변혁이라는 과제 앞에서 사소한 것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군인들이 여성 시위 참여자나 반정부 활동가들의 집에 찾아가는 식으로 여성들의 신변을 위협하고 있다."

8월 28일 기자와 만난 그는 태국 남부 분쟁 지역의 인권문제가 태국 전역 인권문제의 지표라고 강조했다. 태국 남부는 오랜 분쟁의 최대 피해자인 말레이 무슬림 여성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고립되고 외면당하는 지역이다.

'국가' 앞에 지워져버린 여성들
 
태국 여성학계는 2001년 탁신 총리가 등장하면서 점점 정치적 권위주의 문화가 강해졌고, 정권이 바뀐 후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아 젠더문제가 계속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한다(자료사진).
 태국 여성학계는 2001년 탁신 총리가 등장하면서 점점 정치적 권위주의 문화가 강해졌고, 정권이 바뀐 후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아 젠더문제가 계속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한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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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여성주의학자들은 이처럼 '국가정치'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태국 여성학계는 젠더 문제가 정치의 전면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시점을 탁신 친나왓의 집권으로 본다. 탁신이 처음 총리가 된 2001년부터 정치적 권위주의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가 협소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6년 탁신이 부패혐의로 밀려난 이후에도 사회가 친탁신계열의 레드 셔츠와 반탁신 계열의 옐로 셔츠로 갈라지면서 모든 사회문제를 억누르고 있다.

찰리다폰 송삼판 탐마삿대학교 교수(정치학·여성학)는 지난 4일 "10여 년간 이어진 극심한 정치적 대립구도가 시민사회를 죽이고 있다"며 "친탁신-반탁신이 아닌 모든 것들이 덜 중요한 것으로 밀려나는데 이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젠더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삼판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독재정권 하에서 성폭력과 범죄가 줄고 사회가 더 안정돼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라는 점이 이상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단체 중심이었던 여성 인권운동은 개별 사안을 중심 활동으로 이동했다. 대표적인 것이 '안전한 낙태' 지원활동이다. 송삼판 교수는 "'낙태 정치'가 현재 태국 여성운동의 힘"이라며 "초이스 네트워크(Choice Network, 선택을 위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국가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여성들의 삶에 직접 연관되는 캠페인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태국 여성들은 젠더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종교, 정치 체제와 정치 문화가 만든 겹겹의 과제를 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극복과제는 여성의 탄생을 전생의 과오에 따른 현생의 벌로 보는 태국식 대중 불교의 그릇된 운명론, 남자만 왕이 될 수 있는 가부장적 태국 왕정제다. 여기에는 여성을 오염된 존재로 보는 인도식 가부장제와 장자상속, 장자제사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식 가부장제의 영향이 크다.

현대적인 극복과제로는 모든 법과 제도를 중년 남성 군인이 정하는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군부 정치, 친탁신과 반탁신 경합에 모든 에너지가 빼앗기는 대립적 정치 환경이 있다.

콘카녹 등 젊은 여성 활동가들은 이런 겹겹의 극복과제 앞에 유보 전략을 세운 상태다. 민주적인 선거가 치러지고 민간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운동권 안에서 힘을 키우고 살아남되 여성들끼리 젠더 폭력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송삼판 교수의 메시지는 두 가지다. '선거정치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지금 조용히 있다가는 영원히 조용히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주의의 특기는 여성이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표현하는 것을 막는 가부장제의 도도한 역사 속에서 발언공간을 찾아낸 것"이라며 "이 특기를 살려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대화에 기초한 민주주의(Talk Base Democracy)'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만을 이야기하는 기존 민주주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이 선거로 집중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많은 목소리가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태국 여성주의자는 여성주의와 젠더 문제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양성을 견디며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이 민주주의인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발행하는 계간 소식지 <그라지라> 가을호에도 실립니다.


태그:#타이, #젠더문제, #군부쿠데타, #여성인권, #탁신 이후 타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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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현장을 취재하는 외신 자유기고가 이슬기입니다. 지난 기사들은 www.seulkilee.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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