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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 갔다.

문재인 대통령처럼 나라의 미래를 고민해보고자 오른 건 아니었다. 전문 산악인처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세계 기록을 세우기 위해 간 건 더더욱 아니었다. 애초에 동남아를 계획하고 떠난 여행이 인도로 방향이 틀어졌고, 인도의 진득한 더위가 남편과 나를 서늘한 히말라야로 등 떠민 것뿐이었다.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간 건 아니었지만 여하간 잘 한 일이었다. 매일 걸었고 울었고 두려움에 떨었고 죽을 뻔했지만, 좋았으니까. 지금도 누군가가 "여행했던 곳 중 제일 좋았던 데가 어디에요?"라고 물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히말라야라고.

그때의 기록이 일주일 전, <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책을 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나왔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라고 말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게 참…. 책은 우여곡절 끝에 나왔다.

여행 기록을 어떻게든 공유해보고 싶어 <오마이뉴스>에 인도와 히말라야 여행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 게 4년 전이다.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고 조회수도 많이 나왔고 상이라는 것도 받았다(관련기사 : "남편과 함께 세계 여행, 이렇게 시작했어요").

이쯤이면 내로라하는 출판사들이 달려들어 같이 책을 내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보지, 생각하고 계속 썼다. 인도 이야기를, 히말라야 이야기를, 동유럽 이야기를, 국토종단 이야기를. 그러다 어느날 연락이 왔다. 글이 참 재밌다고. 같이 책을 내보자고.
<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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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드는 건 지난한 과정이었다. 먼저, 소설가 김연수가 <소설가의 일>에서 '토고'라고 일컬었던 초고 쓰는 과정을 견뎌내야 했다. 초고들은 아직 내 컴퓨터 어딘가에 잘 숨어있는데, 어쩌다가 그 파일을 열어 한 줄이라도 읽게 되는 재수없는 날에는 정말 하루 종일 토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린다.

토고를 토해내는 나 자신을 견뎌내야 하는 초고 작성의 시기에는 자아학대가 심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 못 쓰는가. 어쩌면 이렇게 유치하고 뻔할까. 이런 쓰레기같은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 등등.

하지만 나는 초고라는 자아학대의 시기를 견뎌냈다. 그리고 고치기 시작했다. 편집은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작업인 것 같다. 오랜 시간 붙잡고 많이 고칠수록 좋긴 한데, 쏟아부은 시간 대비 성과는 크지 않으니.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
 
"오전 내내 편집 작업을 하면서 나는 내 시 가운데 쉼표 하나를 삭제했다. 그날 오후에 나는 그 쉼표를 다시 집어넣었다."

정말 그렇다! 두 시간 내내 글을 붙잡고 있으면서 고친다는 게 고작 단어 하나, 쉼표 하나일 때가 있다. 한데 그다음 날 읽어보고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같은 글을 붙잡고 하루에 2~4시간씩, 일주일에 다섯 번씩, 한 달 내내, 일 년 내내, 보고 또 보고, 고치고 다시 고치고, 새로 넣은 글을 삭제하고, 다시 붙여보고, 다른데 넣어보고, 그걸 또다시 읽어보고, 다시 써보고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쓸데없는 데 낭비하고 있을 시간에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맥주를 마실 수도 있고, 영화 한 편을 볼 수도 있고, 엉망인 내 글 대신 잘 정리된 책 한 권을 읽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계속 고쳤다. 다시 읽고 다시 고쳤다. 비효율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보면 토고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지니까. 고치고 고치다 보면 읽을 만한 글로 변신할 때가 있으니까. 나의 상념들이 조금이나마 더 잘, 타인에게 전달되었으면 했으니까.

이제 더는 고칠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몇몇 지인들에게 글을 보여줬다. 글에 대한 비평이 돌아왔다. '이 부분은 재밌긴 한데, 전체 흐름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아. 이 부분은 빼. 오글거려. 맞춤법 건드릴 단계인가? 여기저기 좀 틀렸네.'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건 내 글을 객관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보는 데,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솔직히, 기분은 좀 나빴다.

지인들은 시간 내서 내 글을 꼼꼼히 읽어주고 도움이 되라고 의견까지 준 건데, 글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이렇게 저렇게 조금만 고치면 더 좋아질 것 같다는 건데, 쪼잔한 나는 괜히 서운해했다.

이러저러해서 그렇게 쓴 거라고, 그건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글을 읽는 독자 한 명 한 명에게 찾아가 변명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면, 글은 글 자체로 이해되고 와 닿을 수 있어야 했다. 울분을 삼키고 다시 그들의 의견을 찬찬히 살폈다. 의견을 받은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고쳤다.

그렇다고 글 쓰고 고치는 게 마냥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다. 책 머리에도 썼듯 글을 쓰는 동안 히말라야에서의 풍경, 사람, 느낌, 감정들을 다시 세세하게 떠올려볼 수 있어 행복했다. 미친 사람처럼 쓰면서 혼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 시간과 감정들이 독자에게 닿기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솔직하게 적어내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남편과 나의 여행을 까발리는 심정으로. 까발린 내용을 몇 개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히말라야 여행에서 우리는 이토록 지질했으며:
오늘의 불안은 '모두가 이미 찾은 그 순간을, 나만 못 찾은 것 같은' 불안감이다. 한 학기의 반을 지내고 중간시험을 기다리는 학생의 기분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여행은 어땠나. 지현, 조지, 마크, 마이크, 루시와 비교했을 때 우리의 여행은 몇 등 안에 드는가. 중간시험을 망쳤다면 학기말 시험까지 점수를 회복할 여지가 있는가. 그때까지 시간은 얼마나 남았나. 그 시간 동안 점수를 회복하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나.

이토록 느렸고:
느려도 어느 정도 느려야지. 그렇게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로 걸을 필요는 없잖아. 나 골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끊임없이 싸웠다:
오늘 걷는 길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래서 사진에 담아본다. 그래서 싸움이 난다. 아니, 더스틴에 따르면, 내가 말도 없이 뒤처져서 싸움이 터진 거란다. 내 의견에 따르면, 좀 기다려 주면 될 것이지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화를 내는 더스틴이 싸움의 원인이다. 오늘의 웅장한 설산을 앞에 두고 나와 더스틴이 느끼는 건 감사도, 감격도, 벅차오름도 아니다. 짜증이다. 서로에 대한 짜증. 철없는 두 개인이 함께 사는 건 힘든 일이다. 그 두 인간이 같이 산을 오르는 건 더 힘든 일이다. 그 두 인간이 산을 몇 날 며칠 오르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함께하는 건 이따금 낭만적이지만, 이따금 지치는 일이다.

그리고 (몇 번이나) 죽을뻔했다:
나는 포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엔, 나는 포기조차 할 수 없다. 포기라는 건 선택할 자유가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운 특권이다. 지금 나에겐 포기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내게 주어진 선택이란 단 하나. 왼발을 들어 올려 앞으로 내리꽂는,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온몸을 지탱하던 왼발을 앞으로 뻗는 순간, 내 인생은 세 갈래 중 하나의 길로 접어들 것이었다. 첫째, 기적이 일어나 무사히 건넌다. 둘째, 눈 속으로 보기 좋게 나동그라져 생을 마감한다. 셋째, 눈 속에 갇히되 기적적으로 구출된다.

하지만 이런 못난 인간 둘의 여행에도 눈부신 순간은 있었다. 히말라야니까.

하루하루는 평화로웠고:
안나푸르나의 하루는 이렇게 요약된다. 아침에 눈을 뜬다. 술렁술렁 갈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2시간 정도 걷다 잠깐 멈춰 차를 한잔한다. 다시 두 시간 정도 걸은 후 점심을 먹는다. 물론 차를 곁들여서. 오후 3시나 4시쯤 도착한 마을에 짐을 푼다. 전 마을에서 만났던, 혹은 처음 만나는 트레커들과 저녁을 먹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카드 게임도 하면 9시까지 시간을 채운다. 잔다. 단순한고 흡족한 생활이다.

풍경은 감동이었으며:
저 설산들은 언제부터 여기에 저러고 있었던 거야?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4년 전에도, 비 오는 출근길 회사로 뛰어가던 작년 그날에도, 더 오래전, 수능시험을 보고 우울해하던 그날에도 여기 이렇게 조용히 서 있었던 걸까. 그때부터 이렇게 쭉, 지금까지 서 있었던 거야? 그리고 지금 여기, 내 앞에 있어.

트레커들의 이야기는 영감을 주었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히말라야에 와서 자주 드는 생각이다. 5년 동안 여행을 했다는 조세프. 필리핀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여행을 하는 마커스. 모두가 똑같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렇기에 줄을 서야 하며, 조금만 지체하거나 방심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온 나에게는 신선한 삶의 방식이다.

트레킹을 하다 만난 동료들과의 우정은 애틋했다:
토마스, 마케터와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 조금 서글퍼졌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살아 있고, 지금 함께 있다. 나는 언제고 안나푸르나를 기억할 것이고, 안나푸르나를 기억할 때면 그 속엔 언제나 지금의 토마스와 마케터가, 이십 대 끝자락의 나와 더스틴이 있을 것이다.
 
히말라야
 히말라야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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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독자의 마음 속에서 되살아난다

프랑스의 영화 거장 로베르 브레송은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영화는 내 머릿속에서 탄생했다가 종이 위에서 죽는다. 그러다 사람, 그리고 실제 오브젝트에 의해 부활하고, 필름 위에서 다시 죽는다. 하지만 특정한 순서로 놓여졌을 때, 그리고 스크린 위에 상영될 때, 영화는 마치 물을 준 꽃처럼 되살아난다."

여행을 하고 책을 출간한 나의 경험을 감히 거장 브레송 감독의 그것에 비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책을 내고 난 지금 저 문장을 다시 읽으니, 무슨 말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여행은 길 위에서 탄생했다가 시간 너머로 사라진다. 그러다 나의 사유, 문장에 의해 부활하고 종이 위에서 다시 죽는다. 하지만 그게 책으로 묶여 독자를 만났을 때, 여행은 마치 물을 준 꽃처럼, 독자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난다.
 
"너무 재밌어서 밤새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과 함께 눈 쌓인 산을 한 발 한 발 함께 걷는 느낌이었어요. (벼랑을 지나갈 땐 어찌나 심장이 콩닥거리던지) 이 책을 읽고 히말라야라는 작은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책을 덮고나니 정말 네팔행 비행기를 끊고 싶어지네요."

"상투적인 표현하고 싶지 않은데…. 손에 땀을 쥐게 하네요. 제가 소설을 읽은 건가요? 이거 실화 맞지요? 왜 이렇게 긴박하고 뭉클하죠? 저도 당장 히말라야로 떠나고 싶네요."

"위트 넘치는 소설 한 편을 읽은 느낌이다. 읽는 내내 긴 여행을 바로 곁에서 함께하는 듯 실감이 나고, 순간순간의 유머와 위트에 웃음이 툭툭 터졌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히말라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데. 어쩌다 펼쳤고 단숨에 읽었다. 주변에 가 보라고, 안 가더라도 이 책은 읽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 교보문고 온라인 리뷰 중

나의 여행은 글을 통해 독자를 만났고, 그들에게 작은 울림을 줬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쪽지를 보낸 한 독자는 내 글을 읽고 60의 나이에 처음으로 네팔행 비행기를 끊었다고 했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움직였다니. 그냥 움직인 것도 아니고 히말라야로 보냈다니. 세상 그 무엇보다 짜릿한 일이다.

그 짜릿함이 나를 다시 책상 앞에 앉힌다. 골방에 갇혀 고심하고 자판을 두드리게 한다. 그렇게 내놓은 나의 책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담요 하나를 나눠 덮고, 친구와 함께 밤새 속내를 털어놓는 애틋한 기분일 것 같다. 그러니 읽어주시라. 나는 계속 쓰겠다.

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 우리는 히말라야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

이수지 지음, 위즈플래닛(2018)


태그:#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히말라야, #히말라야 여행, #히말라야 트레킹,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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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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