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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노동조합, 법조인 등이 "디엔에이법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디엔에이법 즉각 개정 및 위헌적 DNA채취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지난 4일 대검찰청 앞에서 진행했다.

이들은 검찰에게 "노동조합, 사회단체 활동가에 대한 DNA 채취 과정에서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다분히 존재하며, 위헌적으로 채취된 모든 DNA 신원확인정보를 즉각 삭제 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정부와 국회에 "디엔에이법의 위헌적인 조항 개선을 위한 개정안 즉시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4일 디엔에이법의 즉각 개정과 위헌적인 DNA채취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4일 디엔에이법의 즉각 개정과 위헌적인 DNA채취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신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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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DNA 채취를 이미 당한 당사자들이 모여 대검찰청 민원실에 '데이터베이스에서 활동가 당사자들의 DNA신원확인 정보를 삭제 해 줄 것'을 요구하는 민원을 접수하였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모인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에 대해 기발부된 DNA 영장 집행의 즉시 중단 및 이들에 대한 이후 영장 청구 또한 중단되어야 하며,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른 사건 청구인의 정보는 물론 위헌적으로 채취된 모든 DNA 신원확인정보를 즉각 삭제할 것을 요청하였다. 뿐만 아니라, 2019년 입법시까지 유보된 조항에 대해서도 정부와 국회가 위헌적인 조항을 개선하기 위한 개정안을 즉기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4일 대검찰청 민원실을 통해 DNA신원확인정보를 삭제와 관련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
 지난 4일 대검찰청 민원실을 통해 DNA신원확인정보를 삭제와 관련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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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지난 2011년 4월 검찰이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용산 철거민들에게 DNA 채취를 위해 출석하라는 안내문을 보냈다. 이들 중 일부는 감옥에서 이미 DNA를 채취 당하기도 했다.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점거파업에 돌입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재개발로부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점거 농성을 했던 용산 철거민들은 국가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당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했던 정당한 행동이었다. 오히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됐던 경찰이 자행한 국가폭력의 희생양이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긴급개입 성명을 통해서나 국제인권단체의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진 바다. 용산도 마찬가지였다. 강제적 철거에 맞서 주거권을 지키려다 망루에 올랐으나, 무자비한 국가폭력의 고통을 다독일 틈도 없이 철거민 십 여 명이 강제로 DNA를 채취 당했다. 

이에 같은 해 6월 DNA채취 대상이 되었던 용산 철거민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 했다. 하지만 2014년 8월 헌법재판소(2011헌마28 등)는 5:4로 이 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DNA 감식시료 채취 대상범죄는 재범의 위험성이 높아 DNA 신원확인정보를 수록,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DNA 신원확인정보의 수집·이용은 심리적 압박을 줘 범죄예방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보안처분의 성격이 있지만, 처벌적인 효과가 없는 비형벌적 보안처분으로 소급입법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개인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압박은 단순히 처벌적 효과가 없다고 해서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2012년 쌍용차·용산 DNA채취규탄' 기자회견
 "2012년 쌍용차·용산 DNA채취규탄" 기자회견
ⓒ 진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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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DNA 채취를 당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사례를 통해 DNA 채취 이후 당사자가 얼마나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는지 확인 할 수 있다. 당사자는 채취 이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외부에서 자신의 DNA 흔적을 남기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게 됐다고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때면 수저를 꼭 닦고 나오고, 담배꽁초도 주머니에 담아뒀다가 집에와서 한꺼번에 버리는 등 감시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당시 해당 판결에 반대의견을 제시한 4명의 판사는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대상자에 대한 DNA 감식시료의 채취는 이러한 입법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해당 사건에 있어서도 '재범의 위험성에 대하여 전혀 규정하지 않고, 특정 범죄를 범한 수형인등에 대하여 획일적으로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게 하여 침해최소성의 원칙에 어긋나고, 재범의 위험성을 규정하지 않는 이 사건 채취조항들로 인한 수형인의 불이익이 채취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에 비해 결코 작지 않아, 해당사건의 채취조항들은 과도하게 청구인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상범죄들 중 상대적으로 죄질이 경미한 경우, 재범위 위험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고 장기간 정보의 보관시 유출, 오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대상범죄의 경중 및 그에 따른 재범의 위험성에 따라 관리기간을 세분화 하는 등 충분히 가능하고 덜 침해적인 수단을 채택할 수 있고, 장기간 보관과정에서 정보의 유출, 오용등의 문제 발생시 대상자가 실제 입는 불이익이 적지 않아 대상자가 사망한 후에야 정보를 삭제하는 것은 과도하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에 대한 DNA 채취 요구는 그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다. 2016년에는 노사분쟁 중 공장을 점거했다는 이유로 구미 KEC지회 노동자 48명이 DNA 채취를 당했고, 2017년에는 노점상 활동가들이 노점상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약 20여분 아울렛 매장 안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쳤고, 이에 집행유예 판정이 났음에도 DNA 채취를 당했다. 2018년 올해까지도 희망버스에 참가했던 사회단체 활동가 및 유성 노동자, 학내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던 학생들에게도 DNA 채취를 요구했다. 

특히 구미 KEC 노동자 이미옥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시 DNA 채취 과정에서 느꼈던 공포와 수치심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고, 이는 결국 국가가 자행한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DNA 채취 당시 '소명의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채취를 거부 할 시 체포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고 했다. 

박김영희 활동가(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여전히 이동권 투쟁,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및 시설 폐지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간절한 투쟁에 예비 범죄자 낙인을 찍은 것"이라며 활동가들에 대한 검찰의 DNA 채취를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당사자들은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이루어지는 DNA 채취 요구에 대해 "노동자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노동조합이 범죄 집단이 아닌데도 마치 범죄 집단이나 테러 단체라도 되는 듯 강조하려는 것이 적폐이며 이런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상대로한 DNA 채취는 결국 활동가들을 '재범의 우려가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이들의 활동을 제약한다. 특히, DNA같은 민감 정보를 당사자의 의사 청취 및 불복 조항도 없이 강제하도록 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디엔에이법'은 무엇이며, 왜 문제일까?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2016헌마344 등)는 디엔에이감식시료채취와 관련 "채취대상자가 자신의 의견을 진술하거나 영장발부에 대하여 불복하는 등의 절차"가 부재한 현행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디엔에이법)은 지난 2010년 7월 강력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겠다는 이유로 재정되었으나, 법의 집행 과정에서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까지 집행 범위가 확대되었다.

디엔에이법 제5조 '수형인등으로부터의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의 조항'에 보면 "검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죄 또는 이와 경합된 죄에 대하여 형의 선고, 보호관찰명령, 치료감호선고, 보호처분결정을 받아 확정된 사람(이하'수형인')으로부터 디엔에이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범죄는 '살인, 강도, 강간, 방화, 폭행' 등 재범의 우려가 높고 사회 안전을 현저히 해칠 수 있는 경우들이다. 흔히 말하는 강력범죄의 처벌에 따라, 이들의 재범을 막기 위함은 물론 재범이 발생 했을 때 빠르게 범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이다.

애시당초 이 법은 성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겠다는 명분으로 제안되었다. 하지만 제정 과정에서 그 채취 대상범죄를 무려 열 한개로 확대하였다. 법의 적용 과정에서도 재범 여부에 대한 판단 없이 '주거침입, 퇴거불응' 등의 이유로 DNA 채취 영장이 발부되었다. 뿐만 아니라 형이 확정되지 않은 형사피의자와 미성년자까지 채취 대상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DNA 식별로 재범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강력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입법 취지에 반하는 마구잡이 채취가 이뤄지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은 DNA 채취는 체포나 구속처럼 인신 구속을 전제로 하지 않기때문에 영장의 발부 및 집행 과정에 있어서 채취 당사자가 이와 관련 의견을 개진하거나 불복할 수 있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 역시 청구인(DNA채취 당사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주요 요지였다. 김태욱 변호사는 "헌법불합치도 위헌의 일종"이라고 강조했으며, 이에 따라 위헌적 방법에 의해 채취된 DNA신원정보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아니라 DNA 정보는 가족검색 기법을 적용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의 소지가 높다. DNA 특성상 가족구성원 한 명의 DNA정보를 통해 가족 전체의 DNA 정보를 추론 할 수 있는 셈이다. DNA는 지문, 홍체 등 다른 생체정보들과는 달리 특정인 한 명의 정보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형제 등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경우 인구사회학적 정보에 대한 추론이 가능해져 학계와 인권단체에서도 높은 우려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 당시에도 언급 되었듯이, DNA 신원확인정보를 기간의 제한 없이 보관하는 것은 채취 당사자가 재범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유지되어 대상자의 침해되는 사익을 증대시키고 유출·오용 등 보관상의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NA감식시료채취영장이 발부된 경우에는 이에 불복할 수 있는 조항은 법 어디에도 없다. 당사자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소명자료를 제출한다고 해도 법에 그 절차가 부재하니 판사가 당사자의 의견이나 소명자료를 확인·고려하여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칠 수 없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한 번 채취되어 데이터베이스에 DNA 신원확인정보가 수록되면,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특별한 이유 없이는 당사자의 사망시까지 자신의 DNA 신원확인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되어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용도로 이용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는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채취 대상자의 신체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의 제한'으로 작용하게 된다.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것은, "채취대상자의 재판청구권을 형해화하고 대상자를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객체로만 취급"하는 것이 된다. 

마구잡이 DNA 채취, 과연 멈출 수 있을까?
 
김태욱 변호사는 이날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DNA 채취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욱 변호사는 이날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DNA 채취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신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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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해당 조항의 영장 발부 과정에서의 위헌성을 인정한 것이지만, "채취대상자의 의견 진술절차와 영장 발부에 대한 불복절차를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과 방법으로 마련할 것인지, 나아가 채취 행위에 대한 위법성 확인 청구절차까지 마련할 것인지 등에 관하여는 이를 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2019년 12월 31일까지 잠정적용 결정을 내렸다. 현행법의 위헌성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법의 공백으로 인해 생길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를 향한 DNA 채취는 개인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 중 단체행동권을 억압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그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효과를 만들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을 예비 범죄자로 낙인찍고 언제든 범죄자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김태욱 변호사는 이런 식의 DNA 채취 영장 남발은 "노동자를 흉악범으로 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파업을 범죄시 하는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형사처벌을 받기 매우 쉬운데 실제로 대상 범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선 분들이 많다"며, "사회적 모순이 겹치며 증폭되어 나타난 것"이 작금의 상태라고 말했다. 

해당 조항의 위헌여부가 있음이 확인 되었고, 이에 따라 영장발부 과정에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드러났지만, 당장 검찰이 영장 청구를 중단할지는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같은 조항에 의해 발부된 영장 집행으로 DNA 채취를 당한 사람들의 경우, 위헌적 영장 집행의 결과이므로 이미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DNA 신원확인정보의 삭제를 요구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법이 개정되지 않았고, DNA 삭제 조항 및 영장청구와 이후 위법성 확인 절차 등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입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회와 정부는 디엔에이법의 위헌 조항 개정 및 인권 침해의 최소화,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 등 재범의 우려가 낮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들의 DNA신원정보 삭제조항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검찰의 주장대로 DNA가 단순히 일련의 숫자 정보로 기록된다 할 지라도, 이를 통해 개인은 물론 유전형질을 공유하는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진보넷 활동가입니다.


태그:#디엔에이법, #헌법불합치,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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