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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 자료를 즉각 체출 할 것을 지시한 7월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 기무사 정문 앞 모습.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 자료를 즉각 체출 할 것을 지시한 7월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 기무사 정문 앞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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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전역을 앞둔 김아무개씨는 갑작스런 호출로 대대장실에 불려갔다. 영문을 모르고 찾아간 그곳엔 대대장과 함께 사복 차림의 두 남성이 있었다. 두 남성은 자신들의 소속을 "기무사"라고 소개했다. 대대장은 "이분들과 잘 이야기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피했다.

두 남성은 김씨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김씨는 "어떤 서류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군 생활 동안 다녀왔던 정기휴가 날짜 일부가 적혀 있었고 그 기간에 내 정보를 들춰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들이 서류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고, 당황했던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서류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오마이뉴스>가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더불어민주당)인 민홍철 의원실을 통해 기무사에 질의한 결과, 실제로 기무사가 김씨의 이메일·통화 내역을 들춰본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기무사는 군사법원으로부터 영장 및 허가서를 발부받았으므로 정당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기무사 답변서에 따르면, "(기무사는) 2016년 7월 27사단 보통군사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검증 영장(이메일) 및 통신사실확인자료요청 허가서를 발부 받아 집행 후,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2017년 1월 당사자에게 관련 내용을 통지"했다. 기무사가 김씨의 이메일과 통화 내역을 들춰본 뒤 이를 김씨에게 사후 통지한 것이다.

기무사의 영장 청구 사유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기무사는 "법원에서 판결한 이적단체에 가입·활동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를 진행했다"라며 "이후 2016년 12월 '혐의 없음'으로 (내사를) 종결했다"라고 답변했다. 기무사는 "김씨가 가입·활동했다는 이적단체"로 A단체를 지목했는데, 김씨는 "입대 전 대학 학생회에서 활동한 적은 있지만, A단체에 가입한 적은 없다"라고 반박했다.

"광범위한 수사권 행사, 기무사 권한 남용"


기무사가 육군 27사단 군사법원으로부터 발급받은 김씨의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 기무사가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 김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기무사가 육군 27사단 군사법원으로부터 발급받은 김씨의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 기무사가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 김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 민홍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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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기무사의 행위를 "사찰"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기무사 요원들을 만나기 전에도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왔다"고 떠올렸다.

"상병 때였나. 친했던 간부 몇 명이 내게 와서 '너 밖에 있을 때 데모했었냐'고 묻더라. 그러면서 기무사 요원이 찾아와 '김 상병이 군대 내에서 북한 관련 발언한 적이 있냐'고 물어왔단다. 그 이후 특별한 불이익은 없었으나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꺼리게 됐고, 별 것 아닌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더라."

김씨처럼 입대 전 학생회 활동을 이유로 기무사의 사찰을 당한 사례는 2016년에도 공개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들이 '백야사업'이라는 기무사의 공식 업무라는 것도 지난해 폭로됐다.

전문가들은 "구체적 혐의가 없음에도 입대 전 활동을 이유로 장병을 사찰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내놨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정책기획팀장은 "분명한 범죄행위의 증거가 확보되거나 군대 안에서 의심스러운 행동을 포착해서 정식으로 수사를 개시한 것이면 몰라도, 특정 단체에 연루됐을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정보를 들춰보는 것은 큰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군 법무관 출신의 김정민 변호사도 "군사법원도 기무사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기무사가 청구한 영장은 꼼꼼한 검토 없이 대체로 쉽게 발부된다"라며 "학생운동 전력을 반국가단체 행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공안 사건을 만들어보려는 심산이다, 그래서 운동권 출신 장병이 들어오면 밀착감시해서 뭐라도 뽑아내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송상교 변호사도 "민간인 시절의 행위까지 엮어 광범위한 수사권을 행사하는 건 기무사의 권한을 남용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기무사 대공수사권 폐지해야"

남영신 국군기무사령관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왼쪽 앞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 국방위 출석한 남영신 기무사령관 남영신 국군기무사령관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왼쪽 앞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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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는 "백야사업은 2016년 말 폐지됐고, 이후 장병 대상 수사를 진행한 사실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 "백야사업이 폐지됨에 따라 관련 자료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행 기무사 체제, 나아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해편(解編, 풀어서 다시 지음)' 지시에 따라 탄생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기무사 후신) 체제에서도 이 같은 일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핵심 쟁점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도 존속되는 기능인 '대공수사권'이다.

김정민 변호사는 "예전에 청명계획(1989년 당시 보안사가 반정부인사 검거 명단을 만든 작전명)이 폭로되면서 보안사가 기무사로 바뀌지 않았나, 하지만 이후에도 사찰 작업은 계속됐다"라며 "장병을 상대로 한 백야사업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언제든 혐의를 광범위하게 적용해 영장을 받고 (사찰 피해자) 주변을 다 훑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지적했다.

김형남 팀장은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는 사례다, 미국과 영국만 봐도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이 따로 있지 않나"라며 "기무사가 첩보를 통해 범법 행위를 확인할 경우 수사권을 지닌 헌병에게 사건을 넘기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갖고 있으니 아무나 찍어서 무분별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와 수사하는 행위는 분리돼야 한다, 정보기관이 과도한 권력을 가져선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도 기무사의 대공수사권 문제가 거론된 바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무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보기능과 수사기능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라며 "기무사에서 수사기능을 분리해 헌병이나 군 검찰로 이전해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대통령령)'에는 대공수사권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수집·처리 업무 대상이 '첩보'에서 '정보'로 바뀌었는데, 국방부는 "확인된 정보만을 취급함으로써 정보활동의 책임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태그:#기무사, #사찰, #안보지원사령부, #대공수사권,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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