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국민적 관심사는 어디로 쏠려있을까. 아무래도 러시아 월드컵 여파가 크지 않나 싶다. 극적인 16강 진출에 이어 이란을 격파한 축구 대표님의 활약은 눈길이 갈만 했다. 허나 논쟁이 따라다니는 '이슈'는 손흥민 선수의 '군 면제' 문제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손 선수의 군 면제와 관련해 "운명을 건"이란 헤드라인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말이다. 26일 아마 선수 위주의 대만에 2-1로 패배한 야구 대표님을 향한 비판도 그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메달'을 내세웠지만, 선동열 감독은 프로야구 선수를 주축으로 엔트리를 짰다. 이 역시 선수들의 '군 면제'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날선 비판이 횡행했다. 유일한 분단국가 대한민국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그러는 사이, 낭보가 전해졌다. 여자 카누 남북 단일팀이 지난 25일 200m 종목에서 단일팀 역사상 첫 동메달을 딴 데 이어 26일 주종목인 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역시 종합 스포츠대회 사상 처음이었다. 이날 밤 문재인 대통령도 선수들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이 '진풍경'을 축하했다.

하나 된 한국의 힘 보여준 단일팀 2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 시티 조정·카누 경기장에서 열린 카누용선 500미터 여자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딴 단일팀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하나 된 한국의 힘 보여준 단일팀 2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 시티 조정·카누 경기장에서 열린 카누용선 500미터 여자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딴 단일팀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카르타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시안게임 카누 용선 여자 500m 경기에서 남북단일팀이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단 20일 함께 훈련한 우리팀이 시상대에서 아리랑을 울렸습니다. 참으로 장합니다(중략).

우리 단일팀, 부여군청 소속 김현희 선수, 구리시청 소속 변은정 선수, 전남도청 소속 조민지 선수, 한국체대 장현정, 이예린 선수와 북측의 정예성, 윤은정, 김수향, 차은정, 허수정 선수가 힘차게 노를 저었습니다. 북측 도명숙 선수가 북을 두드려 우리 선수들의 사기를 돋우고 리향 선수가 방향을 잘 잡아주었습니다."


외신 역시 주목했다. 영국 BBC도 이날 "남북 단일팀이 종합 스포츠대회에서 처음으로 역사적인 금메달을 차지했다. 시상식에서 애국가 대신 아리랑이라는 한국의 민요가 울려 퍼졌다"고 보도했다.

헌데 이 역사적인 '진풍경'에 대한 언론이나 여론의 반응은 그 '의미'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단순히 카누가 비인기 종목이어서일까. 지상파의 생중계 편성이 덜해서일까. 그리고 그게 전부일까.

 아시안게임 카누 종목에서 역사적인 동메달을 획득한 남북 단일팀의 도명숙 선수.

아시안게임 카누 종목에서 역사적인 동메달을 획득한 남북 단일팀의 도명숙 선수. ⓒ MBC


아시안 게임 공식메달 집계에 최초로 등장한, '코리아'

"저희가 어렵게 모여서 훈련을 진짜 열심히 했는데 동메달을 따서 진짜 너무 기쁘고요." (김현희, 카누 남북단일팀 남측 선수)
"서로가 마음과 뜻을 합쳐서 민족의 슬기와 용맹을 남김없이 떨쳤다고 생각합니다." (도명숙, 카누 남북단일팀 북측 선수)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한 남북한 선수들의 소감이다. 슬기와 용맹이라니. 북한 선수는 역시나 쓰는 단어 자체가 달랐다. 그러나 남북 선수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함께 흘린 눈물의 의미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카누 남북 단일팀 선수들은 메달 집계에 종합 스포츠대회 사상  최초로 '코리아'란 이름을 올렸다.

토요일이던 지난 25일 이 소식을 전진 배치한 MBC <뉴스데스크>는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한 달 남짓한 합동 훈련으로 일군 빛나는 성과"라며 "시상식엔 푸른 한반도기가 올라갔고 공식 메달집계엔 한국과 북한이 아닌 '코리아'가 등장했다"고 전했다.

 남북 단일팀의 메달 획득으로 2018 아시안게임 공식 메달집계에 한국과 북한이 아닌 '코리아'가 등장했다.

남북 단일팀의 메달 획득으로 2018 아시안게임 공식 메달집계에 한국과 북한이 아닌 '코리아'가 등장했다. ⓒ MBC


하지만 같은 날 KBS와 SBS는 이 남북 단일팀의 첫 메달 획득을 단순한 스포츠뉴스로 보도했다. 카누 단일팀이 금메달을 딴 26일에는 MBC와 KBS가 이를 사회 뉴스와 함께 배치했고, SBS는 역시나 스포츠뉴스로 묶어 내보냈다.

뉴스 배치는 각 방송사 보도국의 권한이지만,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낸 이 '진풍경'을 행여 홀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여타 매체들도 대동소이한 형국이다. 여론도 잠잠하다. 북한 선수들의 태도 변화를 감안하다면 특히나 그러하다.

꼭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한반도기가 게양돼서가 아니다. 그 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로 임한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국내 취재진의 취재나 사진 촬영에 적극 임하거나 대화도 스스럼없이 나눴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런데도,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시기 치러진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단일팀을 포함 남북의 평화 분위기를 전할 '뉴스'들이 홀대 당하거나 소홀히 다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시계를 올해 초로 돌려 볼 필요가 있다.  

남북 단일팀 보도,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렸다

"아이스하키를 원래 모르셨던 분들이 통일 하나만으로 갑자기 아이스하키를 생각하시고 저희를 이용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 땀 흘리고 힘들게 운동하는 선수들 생각 한 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월 채널A <특급뉴스>가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과 관련해 인터뷰했던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엄수연 선수의 의견이다. "그냥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라던 한도희 선수의 인터뷰도 그대로 전파를 탔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단일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시점이었다.

 채널A가 지난해 7월 5일 보도한 <23명이 한몸…우린 못 나눠요>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채널A가 지난해 7월 5일 보도한 <23명이 한몸…우린 못 나눠요>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 채널A


하지만 이 인터뷰는 조작과 왜곡에 가까웠다. 이 화면은 작년 7월 5일 <23명이 한몸…우린 못 나눠요>라는 제목으로 채널A가 이미 방송한 화면이었다. 제작진, 앵커 모두 작년 영상이란 언급이나 고지도 전혀 없었다. 당시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논란을 두고 정부와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려는 '악의'가 '인터뷰 조작'이란 '방송 윤리 위반'으로 번진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평창올림픽 당시는 어땠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가 넘쳐났다. 현송월 단장과 여성 응원단에 집중된 보도는 도를 넘었고, 심지어 기자들이 여성 화장실에 따라 들어가거나 셔터를 누르고 그 사진을 그대로 보도했고, 북한 여성 응원단의 숙소 창문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런 보도에 대해 애나 파이필드 미 <워싱턴포스트>은 도쿄 지국장은 이런 트위터 글을 날리기도 했다.

"진짜 역겹다. 이래서 '기레기'라고 하는 것이다(This is really disgusting. This is where '기레기' comes from)."

그때도 틀렸지만, 지금도 맞는 건 아니다. 불과 6개월 전이다.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게 무엇인가.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의 차이인가? 개최국과 참가국의 차이인가? 그도 아니면, 현송월 단장의 참가 유무인가?

오히려, 북한 선수단은 평창올림픽 당시보다 국내 언론과의 접촉과 취재에 훨씬 유화적이고 우호적이란 분위기가 전해진다. 헌데 숙소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던 그때 그 기자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몰카'가 아니라 정식 인터뷰를 요청하고 그런 달라진 분위기를 전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남북 단일팀에 대한 관심 역시 평창올림픽 전후 보수언론의 맹폭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강하다. 아래는 평창올림픽 직전 남북 단일팀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1월 22일자 일간지 사설 제목들이다.

오락가락한 현송월 訪南…北 의도에 끌려다녀선 안된다 (매일경제)
공동입장·단일팀 의미있지만 국민 우려 직시하라 (중앙일보)
현송월 소동 원인 결국 '對北 제재' 여기에 북핵 해결 달렸다 (조선일보)
'평창'이 '평양'에 묻히는 일은 없어야 (서울신문)
현송월에도 설설 기는 文정부와 '평창 구원한다'는 北 (문화일보)


언론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같은 '빅이슈'만을 쫓고, 여론 역시 그런 방향에 휘둘린다면, 그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남북 평화체제가 그러한 '빅이슈'만으로 구축될 리 만무하다. 이제는 일상에서도 남북 간의 거리를 좁힐 준비에 돌입할 때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 단일팀의 사상 첫 메달 획득은 좀 더 부각됐어야 마땅한 '뉴스'였다. 손흥민 선수의 '군 면제'만큼이나 중요한.


남북단일팀 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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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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