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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위안부나 룸싸롱의 도우미도 아닌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달에 한번씩 들리는 그를 위해 개사곡에 맞춰 춤을 연습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 안아드릴 때 '회장님 한번만 안아주십시오라는 말은 삼가라', '한번만이라는 게 회장님께서 기분 나쁘실 수 있기 때문', … 장미꽃, 학 접는 것, 이런 건 기본이고요. … 관리자가 나와서 회장님이 오신 것을 미리 알리면서 살이 찐 승무원이나 외모가 틀어진 이런 분들은 회사에 들어가지 말고 바로 퇴근하게 하거나 아니면 지하 식당을 통해서 회사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뿐이 아니다. 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은 기존 기내식 공급업체인 LSG가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1600억 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 매입 요구를 거절하자 일방적 계약 해지를 하고, 새로운 하청업체를 들이며 '기내식 대란'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갑질과 압박에 시달린 기내식 포장 하청업체 화인CS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사는 항상 집에서 걷지 않고 뛰어다녔다." 사택노예들은 "근로계약서 상 휴게시간은 10시간이지만 잠시 자리를 비우면 꾸지람을 듣기 때문에 야간 4시간 잠자는 것 외에 휴게 시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 경비 업무는 기본이고, 애견관리, 조경, 청소, 빨래 등의 일을 했고, 2014년부터 연차휴가는 단 한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 매년 생일마다 소속 직원들은 비공식적으로 '생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한다. … 선물과 재롱잔치 등 이벤트를 준비한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의 황제 갑질 사례다.

대한항공직원연대 회원들이 지난 6월 1일 오후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갑질근절 문화캠페인 게릴라 홍보를 하고 있다.  브이포벤데타 가면을 쓴 직원들이 갑질근절 스티커, 배지, 네임태그 등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 대한항공직원연대, '갑질 근절' 게릴라 홍보 대한항공직원연대 회원들이 지난 6월 1일 오후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갑질근절 문화캠페인 게릴라 홍보를 하고 있다. 브이포벤데타 가면을 쓴 직원들이 갑질근절 스티커, 배지, 네임태그 등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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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되는 '갑질'

조양호 회장의 큰딸 조현아는 이미 감옥도 갔다 왔지만 여전히 슈퍼갑이다. 작은 딸 조현민은 아버지뻘 되는 이들에게도 폭언과 욕설을 일삼았고, 어떤 인사 기준도 없이 1년에 3-4번 팀장급 직원을 바꾸는 인사 전횡도 쉽게 했다. 이들 일가는 제주 칼호텔에 갑자기 들린 후 별실이 차 있어 일반석으로 안내했다고 유리그릇을 식당 간부를 향해 집어 던지기도 했단다.

조현민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불법으로 진에어 등기임원에 올랐다. 그는 미국 국적자로 국적항공사 등기임원에 외국인의 참여를 막고 있는 항공법을 위반했지만 국토부 등은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큰아들 조원태는 2000년 경찰관을 치고 뺑소니를 하다 잡힌 전력이 있고, 70대 할머니에게 폭언과 폭행한 전력이 있다. 일등석 기내 모니터의 게임 화면이 끊긴다고 비행 관련한 경고방송을 틀지 못하게도 했다.

이들이 공항을 이용할 때는 조망을 위해 78번 게이트 전체가 비어 있어야 했고, 게이트와 비행기 연결통로에 본사와 하청업체 임원들이 도열해 있어야 했다. 총수 일가와 정재계 VIP들의 수하물은 '프리패스'로 보안검색도 하지 않고 통과되었고, 타 국가 출입국에도 같은 기준을 마련해놔야 했다. 이들 일가는 해외 휴가 시 제반 비용을 고객사 접대비 등 명목의 회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해외지점에서 일하던 직원의 임무는 회사 업무와 무관하게 9년 동안 조현아, 조현민 자매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명품이나 생필품을 한국으로 배송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관세도 세관 신고도 부과되지 않았다. 명백한 밀수인데도 관세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 세관 등은 짬짬이 모르쇠였다. 대한항공 기내면세점 운영업체인 싸이버스카이는 오너 3세의 편법 재산증식과 일감몰아주기 회사였다. 대한항공 삼남매가 이 회사의 지분 각각 33.3%를 가지고 있는데 내부 거래비중이 81.5%였다.

칼피아(대한항공+국토부)의 본산인 국토부 항공과는 일찍부터 대한항공 출신으로 채워져 '대한항공 파출소'라고 불리고 있다. 땅콩회항 당시 국토부 감독관이 수사 자료를 대한항공에 유출하기도 해 논란이 됐다.

아시아나항공 노조 조합원들과 직원연대 소속 직원 등이 지난 7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오죽하면 이러겠니'라는 주제로 집회를 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 조합원들과 직원연대 소속 직원 등이 지난 7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오죽하면 이러겠니'라는 주제로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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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라는 치외법권지대


도대체 이들은 누구일까.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전세계 어떤 독재자가 이런 제왕적 호사와 특권과 폭력의 일상을 누리며 사는 것일까. 대통령도 연임이 안 되는 나라에서, 누가 그들에게 사회적 부를 독점하며 세습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준 것일까.

이들 일가의 갑질 횡포는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피해를 전가시킨다. 땅콩회항 당시 조현아 부사장 앞에서 무릎 꿇리고 거짓 진술 강요를 받았지만 전모를 폭로한 후 심한 스트레스로 뒤통수에 종양이 발생해 수술을 받아야 했던 승무원이 있다. 각종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업무 성격이었지만 산재 신청을 못하게 하고 위법한 공상 처리를 하게 했다.

새끼발가락에 금이 가도 인사 평가가 두려워 병가도 못내 발가락이 기형이 된 승무원도 있었다. 비행 때마다 면세품 판매 목표액이 부과되어 승무원들은 항공안전을 무시하고 고공 앵벌이에 나서야 하기도 했다. 헌법에 보장된 인권과 노동권, 그 어느 것도 그들의 왕국에서는 무시되었다.

회장 일가에게 노동조합은 당연히 눈엣가시였다. 얼마 전 시의원이 된 권수정씨는 아시아나항공 입사 24년차였지만 조합원이라는 까닭으로 여전히 대리였다. 조합원 신분으로 과장 직급을 단 이는 찾아볼 수 없다. 진급 누락, 비선호 노선 집중배치, 보직해임 등 일상적 탄압이 지속적으로 행해졌던 기본권 탄압 백화점이었다. 근래엔 항공재벌 갑질 근절을 외치며 조직된 대한항공직원연대 운영진 네 명을 지역으로 부당 전보시켰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이런 재벌 오너들의 첩첩산중의 비리와 부정과 갑질을 싣고 무겁게 나르는 비행기가 전세계인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사실들을 대하는 대한민국 법원의 여전한 적폐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는 밀수, 탈세, 배임, 횡령, 특수폭행, 검역법 위반, 약사법 위반, 출입국법위반, 항공사업법 위반 등 열 가지가 넘는 범죄혐의로 10번의 압수수색을 받고, 지난 5월부터 7월 말까지 5번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하지만 5번 모두 기각되었다.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는 도시락 하나를 신고하지 않고 가져 나왔다고 해고가 되기도 했다. 법의 잣대는 과연 공평한가. 경영권은 여전히 인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그들의 손에 들려 있다. 여전히 그들은 치외법권지역에 사는 황제 일가다.

가만히 있지 말자

이런 현대판 왕국에서 온갖 인권유린을 받으며 노예처럼 숨죽여 살아야 했던 두 항공사 직원들이 도저히 참지 못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익명의 SNS 소통방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한 후 '대한항공직원연대노조'를 결성했다.

아시아나항공 직원 1000여 명도 '침묵하지 말자'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을 개설한 후 목소리와 행동을 모아가고 있다. 두 항공사 노동자들은 각각 4차, 3차 집회를 진행하고, 한차례 공동집회도 진행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노조가 설립된 대한항공직원연대에서도 박창진 지부장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대부분이 익명과 가면 뒤에 숨어 활동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가면을 쓰고 광화문 등지에서 진행한 몇 차례 항공갑질격파 집회 및 문화제는 항상사측의 감시와 검열, 탄압과 방해 앞에 놓여 있다. 대한항공 승무원 유은정씨가 사측에 의해 신분과 인사기록 등이 공개되면서 얼마 전 답답했던 가면을 벗어야 했다. 그런 그들이 더 이상은 어떤 탄압이 따르더라도 침묵하거나 참지 말자는 결의로 집단적으로 가면을 벗겠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인간선언이다. 눈물겹다. 8월 24일 금요일, 박근혜라는 특권과 부정을 물리쳤던 서울 광화문 촛불광장에서 말이다.

그러나 정말 가면을 벗어야 하는 이들은 선량한 두 항공사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황제처럼 부를 세습하며 온갖 부정과 비리, 온갖 폭력과 타락, 추악함을 저질러 온 조양호와 박삼구 회장 일가의 흉측한 얼굴들이다. 이미 지나버린 중세의 어느 그릇된 시대를 살며 우리 모두의 현대를 우롱하고 있는 그들의 비열한 얼굴이다. 이 사회를 무슨 동물의 왕국쯤으로 생각하며 포악한 우두머리 행세를 하려는 덩치만 큰 어떤 괴물들의 얼굴이다.

그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의 용기를 응원하며 우리가 함께 슈퍼갑들의 가면을 벗기자. 재벌이라는 특권을 벗기자. 지주회사라는 위장을 벗기자. 그들에 기생하는 관료사회의 기만을 벗기자. 그 일을 자신들의 전생을 걸고 가면을 벗으려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함께 그날 그들이 그간 써야 했던 두려움의 가면을 벗겨주자. 8월 24일 광화문에서 함께 촛불을 들고 항공재벌 일가의 적폐를 걷어내자. 조양호와 박삼구 두 항공재벌들이 가두어 둔 우리 모두의 권리를 구출하자.

갑질문화제 웹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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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한항공, #아시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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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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