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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공동취재단 신나리 기자]

"일부러 화려한 걸 썼어. 이렇게 반짝거리면 멀리에서도 나를 잘 알아볼 수 있을 거잖아."

은색과 검은색이 김종삼(79) 할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반짝거린다. 남측 이산가족과 동반 가족은 197명, 북측 가족이 쉽게 찾기 바라는 마음에서 골라 쓴 중절모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21일 오전, 남북 이산가족들이 개별상봉을 시작했다.

개별상봉은 단체상봉과 달리 남측 가족의 숙소인 외금강호텔에서 가족끼리만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방 안에서 함께 점심까지 먹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단체상봉보다 1시간이 긴, 총 3시간여를 가족끼리만 볼 수 있다.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유관식(89) 할아버지가 딸 유연옥(67)과 사진을 보고 있다.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유관식(89) 할아버지가 딸 유연옥(67)과 사진을 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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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상봉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마다 있었다. 다만, 두어 시간 개별상봉 후 단체로 식사했던 것을 이번에는 가족끼리의 식사로 변경했다. 속절없이 떨어져 지낸 수십 년의 시간 사이에 가족끼리 함께하는 1시간이 더해졌다.

유관식(89) 할아버지도 개별 상봉을 기다렸다. 어제(20일) 딸(유연옥·67)과 사촌을 만난 뒤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이른 아침 속초에서 출발해 금강산까지 이동, 오후 내내 단체상봉과 환영만찬 등 적잖은 일정을 소화했지만 피곤할 줄도 몰랐다. 할아버지는 "소원이 풀렸지 뭐, 밤에 피곤해서 꿈도 꾸지 않고 아주 잘 잤어"라며 환하게 웃었다.

"오빠 왔네, 왔어"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오전 북한 외금강호텔에서 열린 개별상봉에 참석하기 위해 북측 상봉단이 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 개별상봉 도착한 북측 가족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오전 북한 외금강호텔에서 열린 개별상봉에 참석하기 위해 북측 상봉단이 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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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1일 북측 상봉단이 객실 내 개별 상봉을 위해 외금강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1일 북측 상봉단이 객실 내 개별 상봉을 위해 외금강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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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9시 40분, 남측 가족들이 먼저 모였다. 총 89가족인 남측 이산가족들의 숙소는 금강산호텔과 외금강호텔 두 곳. 개별상봉은 외금강호텔에서만 진행돼 금강산 호텔에서 묵었던 가족들은 외금강호텔로 이동했다.

남측 가족들이 챙겨온 선물은 대한통운 트럭에 실려 왔다. 지원인들이 호텔 방 앞에 이들의 선물을 챙겨 놨다. 이들은 남측 이산가족들이 호텔에 도착하자 "환영합니다"라며 반기기도 했다.

남측 가족들이 모인 지 15분 후, 북측 가족들이 도착했다. 버스 5대가 외금강호텔에 속속들이 모였다. 응급차 한 대도 함께 도착했다. 휠체어에 탄 백발의 할머니는 북측 보장성원의 도움을 받아 별도 장애인용 계단을 이용했다.

북측 가족들의 손에도 선물로 보이는 것들이 들려 있었다. 한 남성은 '개성고려인삼'이 적힌 것을 들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장을 보관할 때 쓰는 항아리를 노란봉지에 넣어왔다.

가족들과는 별도로 북측이 공식적으로 준비한 선물도 있었다. 종이봉투 안으로 백두산 들쭉술, 대평곡주가 보였다.

개별상봉은 외금강 호텔 1층에서 8층의 객실 곳곳에서 이뤄졌다. 오전 10시 15분에 모든 가족이 방으로 들어갔다. 앞서 한 북측 가족이 도착하지 않아 남측 가족이 "왜 안 오냐"고 연신 묻기도 했다. 이내 엘리베이터에서 북측 가족이 내렸다. 남측 가족은 "오빠 왔네, 왔어"라며 그제야 웃음을 보였다.

이날 남북 이산가족들은 개별상봉과 객실에서의 오찬을 마치고 나서 다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다. 이후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이 예정돼 있다. 저녁은 온정각 서관에서 남측 가족끼리 하게 된다.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작별상봉을 한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함께 점심을 먹고 사흘간의 만남을 마무리해야 한다.

북측 인사의 질문... "문 대통령 지지율은 왜?"

이날 개별상봉 전, 외금강호텔에서 기자들을 만난 북측 관계자들은 남측 취재진에게 여러 이야기를 쏟아냈다. 주제는 다양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미국 정세, 종업원 집단 탈북까지 언급했다.

행사 지원을 위해 나온 북측 보장성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왜 떨어지고 있는가"라고 남측 기자에게 물었다. 이어 "(기자) 선생이 보기엔 앞으로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 같은가"라며 "뭘 해야 지지율이 오를 것 같냐, 언제 오를 것 같냐" 등을 물었다.

미국의 태도를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한 북측 보장성원은 "계단식으로 조금씩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나라도 있지 않냐"라고 되물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1일 오전 북측 상봉단이 객실 내 개별 상봉을 위해 외금강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1일 오전 북측 상봉단이 객실 내 개별 상봉을 위해 외금강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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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오전 고성 외금강호텔에서 북측 봉사원들이 객실에서 상봉 중인 이산가족을 위해 중식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오전 고성 외금강호텔에서 북측 봉사원들이 객실에서 상봉 중인 이산가족을 위해 중식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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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 북측 보장성원은 지난 13일 남북고위급회담에서 3차 정상회담을 9월 안에 평양에서 갖기로 한 것을 두고 "그날(정상회담 날짜)이야 다 나와 있지요, 남측 당국이 알고 있으면서 말을 안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당시 고위급회담에서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남측 취재진에 "(정상회담) 날짜가 다 돼 있다"라고 말했다.

종업원 집단 탈북을 언급하는 보장성원도 있었다. 그는 남측 취재진에 "이제 상봉하고 여종업원 문제를 연계해서 상봉이 된다, 안 된다, 그런 말은 쑥 들어간 거 아니겠습니까, 그 문제는 그냥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남측 취재진에 "이렇게 (상봉) 행사하니 얼마나 좋으냐"라고 물은 보장성원은 "상봉 정례화가 시급하고 규모도 확대돼야 한다"라는 남측 취재진의 답에 "지금 우리 시설에서는 100명 정도 이상은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 문제해결은 남측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가 "남도 북도 할 일이 있다"라며 같이 웃음을 짓기도 했다.


태그:#이산가족, #금강산,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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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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