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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부모 사이에서 화두가 된 사건이 있습니다. 서울 모 여고의 '쌍둥이 자매' 논란입니다. 이 학교의 보직부장인 교사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 딸들에게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돼 서울시교육청이 특별감사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건이야 아직 진실을 알 수 없지만, 최근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부모가 자녀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선생님에게 부탁해 시험지를 빼돌리거나 성적을 조작하는 등의 부정행위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개인의 노력에 의해 성적이 상승해도 그 노력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그만큼 학교나 개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게 대한민국의 현실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교육 현장에 만연한 '도덕불감증'이 문제의 원인 아닐까요.

도덕에 무감해지는 세상

서울의 유명 자사고에 아이를 보낸 직장 선배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아이가 워낙 알아서 잘했고, 혼자 목표 삼아 자사고까지 입학해서 대학 입시에는 신경을 안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대거 모여 있는 그 학교에서조차 주말에는 많은 아이들이 교칙을 어기고 집에 가는 외출증을 끊어 인근 카페에서 개인 과외를 하거나 학원을 다녔다고 하더군요. 집에 가는 외출은 가정에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만 허가되는 일이었다고 해요.

또 전공과 관련한 어려운 책을 부모가 대신 읽고 독서록 실적을 올려주고, 아이는 전문가가 써준 요약본으로 공부한 다음, 대학 면접에서는 읽은 척하며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내내 과외나 학원 한 번 안 보내고 아이가 혼자 책을 읽고 공부를 하게 놔둔 그 선배는 아이가 고3에 접어들어 수시 원서를 작성하면서 늦은 후회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진작부터 아이의 시간을 관리하고 입시전략을 짜게 도와줄 걸이라고요.

선배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 주요 대학 진학에 실패한 요인인 것 같다는 가슴 아픈 조언(?)을 해주며, 아이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선배 자신을 탓했습니다. 이게 정말 부모를 탓해야 할 일인가는 차지하고서라도 가까운 주변의 사례를 보면 옛날에 비해 요즘의 입시는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보다 부모의 재력과 운이 더 큰 영향을 미치게끔 변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이벤트 하나를 위해 성적에 들어가는 수행평가를 부모가 자녀 대신 해주거나,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하지도 않은 일을 스펙으로 포장해 자소서 등을 꾸미게 하며 부모도 아이도 왜 도덕성에 무감각해지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이런 스펙 만들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대학 레벨 올리기에 성공하는 경우 스펙을 만든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기 바쁩니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자녀의 학습에 관한 학교 안팎의 도움은 사실상 도덕이라는 선을 넘은 지 오래 같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이벤트 하나를 위해 성적에 들어가는 수행평가를 부모가 자녀 대신 해주거나,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하지도 않은 일을 스펙으로 포장해 자소서 등을 꾸미게 하며 부모도 아이도 왜 도덕성에 무감각해지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대학 입시라는 이벤트 하나를 위해 성적에 들어가는 수행평가를 부모가 자녀 대신 해주거나,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하지도 않은 일을 스펙으로 포장해 자소서 등을 꾸미게 하며 부모도 아이도 왜 도덕성에 무감각해지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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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명문학과 출신이라고 좋은 회사 취직이 보장되는 시대도 지났습니다. 힘들게 공부해 봐야 대기업에서 일정 직급 이상 오르기가 옛날보다 더 힘들어졌습니다. 입시 공부가 대학에 들어가는 데 필수 요소인 것은 맞지만 학교의 공부가 사회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인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나라는 대학 입시라는 그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고등학교에서 성적으로 줄 세우기 경쟁을 시킵니다. 그 경쟁에서 남을 누르고 올라서기 위해 부모가 나서서 부정행위를 아이에게 권하는 모습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닐 테죠.

그런 곳에서 1등을 한들 그 아이는 행복할까요? 반대로 성적이 신통치 않거나 혹은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성적을 바닥에 깔더라도 부모에게 등 떠밀려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아이들은 행복할까요? 공부가 인생의 최우선인 것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의 입시 제도는 이대로 유지되어야 하나요?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꾼들 사교육은 더욱 발 빠르게 입시제도에 맞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비용을 증가시킵니다. 성적이 급상승한 모 여고의 쌍둥이 자매 부모는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면서 성적이 늘었다고 변명했고, 아이들의 전인교육을 강조하는 모 의사의 아이는 영재학교에 입학하면서 대치동의 학원을 다녔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사교육이 늘어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엄마표 학습'이 설 자리가 없다

공부가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그 과정에서 도덕성을 내려놓은 부모를 보며 공부하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걱정스럽습니다. AI(인공지능) 시대에는 공부만으로 대기업 등의 번듯한 직장에 자리잡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하죠.

하지만 저나 남편은 학창시절 공부 이외에는 특별히 경험해본 것이 없어서 결국 공부로 대학을 갔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20년에 가까운 맞벌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결국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보다 공부가 좀더 쉽다고 포장해서 가르치는 중이죠. 정확하게는 아이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기 전까지는 공부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고, '국영수'를 공부하는 것이 음악, 미술, 운동 같은 예체능 분야보다 부모의 재력을 덜 필요로 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부정행위가 가득한 대한민국의 학교, 입시제도 앞에서 허무해지고 맙니다. 학원의 힘을 덜 빌리고 선행학습도 안 하는 대신 아이에게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애쓰며 지내온 지난 노력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의 구성은 매우 알차고 진도도 빠르지 않고 수준도 높지 않습니다. 이런 학교 교육에서 70~80점만 받아도 충분히 잘하는 거예요. 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친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직업을 얻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어선 안 됩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죠. 복습으로만 학습 중인 우리 아이들을 두고 언제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할 건지 묻는 이웃이 많은 걸 보면, 학교의 속도로 배우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의사와 청소부가 학부모 공동체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지역사회의 발전을 두고 토론·대화한다는 외국의 사례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가 무시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학 졸업 유무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의 격차가 큽니다. 그 소득의 격차가 사회적 지위나 발언권과도 깊게 연결돼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려고 하죠.

꼭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공부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원하는 일을 하며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괜찮은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태그:#70점엄마, #엄마표학습, #입시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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