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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8.22 07:30수정 2018.10.19 11:29
황소가 맛있다. 영화 <워낭소리>에 나온 일하던 소가 황소다. 밭일을 한 소는 질겨서 먹기 힘들지만, 축사에서 얌전하게 키운 수소, 즉 황소는 맛있다는 말이다. 우리 소는 한우지만, 나름의 종류가 있다. 축종별(젖소 제외)로 암소, 황소, 거세우 세 가지다. 거세우는 암소와 비슷한 육질을 얻기 위해 황소를 송아지 때 거세한 것이다.

먹이는 사료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수많은 브랜드가 존재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드라이, 웻 에이징(Wet Aging) 등으로 숙성 방식에 따라 세분화하기도 한다. 축종, 사료, 지역, 숙성법 등에 따라 수많은 한우가 존재한다. 하지만 맛있다고 생각하는 소고기는 열에 아홉은 '1++' 혹은 '1+' 소고기다.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대안으로 소고기 등급제가 도입됐다. 처음 1·2·3 등급제였다가 나중에 '1+'가 추가되었고, 2004년 '1++'를 추가해 지금의 5단계 등급제가 됐다. 5단계 등급제가 되면서 한 해 도축하는 축종별 도축량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2003년도 기준으로, 암소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15만 마리의 황소를 도축했다. 등급제가 정착하면서 계속 줄어들다가 근래에는 한 해 황소 도축량이 1만8000마리에 불과하다.
 
마블링이 많으면 맛있는 소고기라고?
 
고기는 씹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황소 고기를 먹을 때, 딱 맞아떨어진다. 그렇다고 '1++' 고기를 먹을 때처럼 살살 녹지는 않는다. '씹을수록'이라는 말은 황소 고기 맛을 표현하기에 딱 좋은 표현이다.

고기는 씹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황소 고기를 먹을 때, 딱 맞아떨어진다. 그렇다고 '1++' 고기를 먹을 때처럼 살살 녹지는 않는다. '씹을수록'이라는 말은 황소 고기 맛을 표현하기에 딱 좋은 표현이다. ⓒ 김진영


마블링이 적으면 질기고 맛없다는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 블로그나 SNS를 통해 소고기 근육 사이에 하얗게 박힌 사진이 널리 퍼졌다. 등급 높은 소고기를 먹은 날은 포스팅을 해도 마블링이 안 예쁜 소고기를 먹은 날에는 포스팅을 안 했다. 맛없다고 생각하고, 자랑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블링이 많은 고기가 맛있는 고기로 정설처럼 굳어지면서 황소 키우는 농가가 줄었다.

소고기 등급은 소고기 등심 부위 가운데 7번 척추를 잘랐을 때, 등급 판정표의 마블링 사진과 비슷한 모양인가로 결정한다. 높은 등급은 지방이 뭉치지 않고 잘 퍼졌다는 의미다. 소고기는 과연 잘 퍼진 지방이 있어야 맛있을까?. 내 대답은 '노(No)'다. '1+' 이상의 소고기를 먹으면 첫 맛은 좋다. 그러나 먹다보면 무엇인가 빠진 듯 심심한 맛이다.

'소스, 소금, 아니면 한 잔의 소주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어 더 먹어보지만 심심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음식에서 나는 특유의 향이 빠져 있다. 고기를 구우면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향이 있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다른 고기에도 향은 있지만, 단순히 지방과 단백질이 익으면서 풍기는 향이 아닌 구수한 향이 빠져 있다는 말이다.

마블링이 거의 없는 황소 등심을 구웠다. 시각적으로 느끼는 맛의 점수는 빵점 모양새다. 잘 익은 황소 고기를 씹으면 구수한 육즙이 오돌토돌 돋아있는 미각 세포를 자극한다. 이미 지방과 단백질의 탄내가 코를 마비시켰지만, 씹을수록 퍼지는 구수한 향이 코의 냄새 맡는 세포를 자극한다. 고기는 씹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황소 고기를 먹을 때, 딱 맞아떨어진다. 그렇다고 '1++' 고기를 먹을 때처럼 살살 녹지는 않는다. '씹을수록'이라는 말은 황소 고기 맛을 표현하기에 딱 좋은 표현이다.

황소와 무의 궁합은 백년해로 한 부부 못지 않다. 다디단 겨울 무가 제격이지만 연일 폭염에 단맛이 듬뿍 든 무를 원하는 것은 욕심일 뿐. 그저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농부들에게 감사하며 무를 나박나박 썰었다. 끓는 물에 썬 무를 넣었다. 한 시간 정도 핏물을 뺀 황소 고기를 넣고 한소끔 끓였다.

간장 향을 더하는 것도 좋지만 오롯이 육향을 즐기려고 소금만으로 간을 했다. 지난해 겨울 제주도 서귀포에서 맛봤던 인생 뭇국보다 맛있다. 화학조미료(MSG)를 따로 넣지 않아도 충분히 맛이 난다. 부족한 감칠맛을 구수한 육향이 채워주기 때문이다.

제주의 '흑우', 충북 제천의 '화식우'
 
제주 흑우는 멸종 단계까지 갔다가 근래에 복원됐다. 흑우는 제주의 오름과 오름 사이를 오가며 풀을 먹으며 성장한다.

제주 흑우는 멸종 단계까지 갔다가 근래에 복원됐다. 흑우는 제주의 오름과 오름 사이를 오가며 풀을 먹으며 성장한다. ⓒ 김진영


마블링을 멀리 하면 다양한 소고기 맛을 즐길 수 있다. 제주 흑우는 멸종 단계까지 갔다가 근래에 복원됐다. 흑우는 제주의 오름과 오름 사이를 오가며 풀을 먹으며 성장한다. 도축하기 몇 개월 전부터 풀과 사료를 함께 먹여 살을 찌운다. 고기 색은 일반 한우보다 짙은 적색을 띤다. 적절한 지방과 씹는 맛이 좋다.

충북 제천에는 화식우가 있다. '화식(火食)'은 말 그대로 끓인 음식, 예전처럼 여물을 끓여 먹인 소를 뜻한다. 가마솥에 여물을 끓이지는 않는다. 볏짚, 콩깍지, 옥수수 등을 자동화 기계에 넣고 삶는다. 먹이 분배도 여물 실은 차로 이동하며 자동으로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육질이 부드럽고 맛있는 향이 난다.

경기도 연천과 전남 장흥에는 풀만 먹여서 키우는 소도 있다. 이 소고기도 씹는 맛이 일품이다. 흑우든, 화식우든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마블링 잘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과 마블링이 없어도 전혀 질기지 않고 맛있다는 것이다.

지방이 근육 안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1++' 소고기를 맛있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필자는 황소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입맛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 다양한 소고기가 있음에도 우리는 등급만을 보고 맛을 예단한다. 황소는 '1++' 등급의 소고기와는 다른 맛과 향이 있다. 맛없는 게 아니라 다른 맛이다.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다. 우리 주위엔 다양한 소고기가 있다.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새로운 소고기를 맛볼 수 있다.
 
충북 제천에는 화식우가 있다. '화식(火食)'은 말 그대로 끓인 음식, 예전처럼 여물을 끓여 먹인 소를 뜻한다. 지금은 가마솥에 여물을 끓이지는 않는다. 볏짚, 콩깍지, 옥수수 등을 자동화 기계에 넣고 삶는다.

충북 제천에는 화식우가 있다. '화식(火食)'은 말 그대로 끓인 음식, 예전처럼 여물을 끓여 먹인 소를 뜻한다. 지금은 가마솥에 여물을 끓이지는 않는다. 볏짚, 콩깍지, 옥수수 등을 자동화 기계에 넣고 삶는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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