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광화문 인사이드'는 청와대,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정보'가 있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청와대 전경
 청와대 전경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일주일 전, 청와대 관련 제보를 받고 기사를 썼다. 한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 직원과 청와대 일자리수석실 소속 행정관이 통화하던 중 행정관이 반말·고압적 언사 등을 한 게 문제라는 취지의 기사다. 공공기관인 탓에 취재원은 기사화를 망설였으나, 기자는 당시 녹취를 들은 뒤 기사를 써야겠다고 판단했다. 직원에게 "나랑 장난하느냐", "이러면 원장(사장)과 통화할 수밖에 없다"는, 행정관의 문제적 발언을 듣고 나서다(관련 기사: "이 양반이 지금 나랑 장난하나" 청와대 행정관 고압적 언사).

이 사안은 애초 이 행정관이 해당 공공기관의 약 4000만 원짜리 용역 사업을 문제 삼으면서 불거졌다. 이 행정관은 기관이 해당 사업을 진행하면서 입찰 관련해 ㄱ업체와 ㄴ업체를 다르게 대우해 한 업체를 들러리 세웠다고 봤고, 이에 문제를 지적하고 더 조사하려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불공정 계약'이라는 것. 반면 이 과정을 진행한 기관 직원 A씨와 노조위원장은 "법에 충실한, 원칙에 따른 계약이었다"고 반박했다.

9분 36초의 통화... "통화내역, 주고받은 문자 다 한번 볼까?"

다음은 행정관과 직원A씨가 나눈 9분36초 통화의 앞부분이다. 행정관에 전화를 건 A씨가 "제가 다 말씀드리겠다"며 민망한 듯 웃자, 행정관은 이 웃음에 기분이 크게 상했던 것 같다. 이후 행정관은 통화 중 고성을 지르거나 하진 않았지만, "제가 뭘 어떻게 해야겠느냐?"는 직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장시간 침묵하거나 대화 중 자주 한숨을 내쉬는 등 불쾌함을 강하게 드러냈다. 당시 통화를 잠시 들여다보자.

직원 A씨: 네 행정관님. 그, 말씀을…. 하하, 제가 다 말씀을, 말씀 다 드리겠습니다.
정 행정관: 지금 장난하세요?

직원 A씨: 하…. 죄송합니다.
정 행정관: 지금 웃음이 나와? 저와 장난해요? 할 일 없어서 거기랑 통화하는 줄 알아요?

직원 A씨: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팀장이 안 계셔서.
정 행정관: 웃음이 나오냐고. 제가 할 일 없어서 전화를 계속하는 줄 아느냐고, 지금. 웃음이 나오냐고.

직원 A씨: 네 죄송합니다. 어쨌든 제가 실례했으면 너무 죄송합니다.
정 행정관: 이 양반이 대접을 해주니까 지금 나랑 장난하고 있어?


청와대 행정관은 그 뒤에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원장뿐 아니라 도(경기도)하고 통화할 수밖에 없다"라거나 "이젠 실실 웃고 그러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상대의 문자·통화내역 및 기관 예산까지 거론했다. "그쪽(A씨)이 통화한 내역, 주고받은 문자 다 한 번 볼까요?", "그 원의(기관) 사업 한번 다 떠들어볼까?"라는 등 발언이 그것이다. 본인은 사안의 배경을 다 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겠지만, 과연 상대도 그렇게 받아들였을까.

왜 일자리수석실이 이런 일을? 

지방자치단체 관련법에 따라 이 공공기관은 경기도 산하 기관이지 청와대 소속이 아니다. 수사권이 없는 청와대 행정관이 지자체 산하 이 공무원의 통화나 문자 내역을 들여다볼 법적 근거나 권한도 없다. 해당 행정관은 이 기관이 불공정하게 계약했을 가능성, 즉 타 업체에 '갑질'을 했을 수도 있어 조사하는 중이었다고 해명했지만, 통화 중 행정관의 말투는 조사보다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의 협박 또는 훈계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 행정관이 속한 일자리수석실은 지방자치단체 업무를 하는 곳이 아니다. 일자리수석실은 문재인 정부가 신설한 곳으로,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새 정부 국정과제 1순위인 일자리를 담당하는 곳"이자 일자리 정책 지원 및 점검이 주요 임무인 부서다. 행정관의 말처럼 실제 갑질 근절이 목표였다면, 이는 자치·지방분권을 담당하는 자치발전비서관 또는 공공·민간 부패를 감시하는 반부패비서관실 업무에 가깝다.

애초 문 대통령이 불공정한 적폐로 '갑질'을 꼽으며 "(사회 속) 뿌리 깊게 만연한 '갑질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상대를 무시하거나, 인격적 모독을 가하거나,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하는 것은 바꿔야 한다"고 말한 회의도 지난 4월 말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였다. 다시 말해 이 경기도 산하기관을 조사·문책하는 일이, 고용정책 점검·수립이 주 업무인 일자리수석실 소속 행정관이 할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뿐만 아니다. 당시 행정관은 직원과 한 통화에서 "민원이 정식 접수됐다"고 했지만, 기자와 한 통화에선 말이 달랐다. "개별적으로 받은 제보"였다는 것. 이에 기자가 '그것도 정식 민원으로 볼 수 있느냐' 묻자, 그는 "문제삼으면 할 수 없지만, 저는 민원으로 봤다"고 말했다. 게다가 용역사업 계약에서 떨어진, 직접 당사자인 ㄴ업체와도 이 행정관은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통상 '갑질'은 상대적으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의 위치인 을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일컫는다. 청와대 일자리수석실 행정관과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 직원의 이 통화에서 갑과 을을 굳이 나눈다면 누가 갑일까. 안 그래도 야당들이 '문재인 정부의 만기친람'이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이는 이때, 청와대 소속 행정관이라면 이런 불필요한 논란이 불거지지 않도록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태그:#청와대, #일자리수석실, #경기도 산하기관, #행정관 갑질 논란, #청와대 행정관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