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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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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동의 없이 일방적 개편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상황 모면용 발언일 뿐이다. 국민연금 개편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망가뜨려 놓고 그 부담은 국민이 지라고 하니 반발이 이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16일자 사설 "국민연금 운용본부라도 서울로 옮기고 외풍 차단해야"의 서두다. 보수언론의 국민연금 흔들기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날 <조선일보>의 '국민연금 때리기'는 거침이 없었다.

지난 13일 "노후 소득 보장을 확대해 나가는 게 우리 정부 복지 정책의 중요 목표 중 하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잠시 움츠리는 듯했던 <조선일보>가 16일 하루 맹공을 퍼부었다. 사설을 필두로 '경제포커스' 칼럼과 사회/경제 기사 등을 쏟아내다시피 했다.

[경제포커스] 갓난아기에게도 '빚 폭탄' 떠넘길 건가
"정부, 국민연금 수익률 7.26% 전망… 실제 수익률은 잘해야 1%대 초반"
국민연금 국가 지급 보장하면 수백兆 '국가 우발 부채' 증가 논란
"文대통령,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빨리 인선하겠다'더라"


대부분이 '논란'과 '비판', '우려'를 담은 논조였다. <조선일보>는 광복절 휴일이던 15일에는 "국민연금 개편안 욕먹자… 與 또 '사회적 논의기구 만들자'", 앞선 14일에도 "위기의 국민연금, 中 커피빈 투자 실패로 730억 손실 우려"란 기사로 비판적 논조를 유지했다.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해 차근하게 설명하는 문답 형식의 14일자 "60代 은퇴자, 국민연금 못 내도 불이익 없다" 기사는 차라리 희귀하다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연일 계속되는 <조선일보>의 국민연금 때리기에 제동을 건 이가 나타났다.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작문 솜씨도 이 정도면 천재급"이라며 제대로 꼬집은 이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다.

<조선일보> 비웃은 서울대 이준구 교수, 왜?

"신문을 읽다가 이 제목을 보고 혼자 한참 웃었습니다. 이 제목이 말하고 있는 두 가지가 모두 사실과 아주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문 솜씨도 이 정도면 천재급이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출신이자 미시경제학과 재정경제학의 권위자인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 그는 지난 13일과 15일 양 일간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민연금의 진실'이란 장문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국민연금과 관련해 정부를 맹비난 중인 <조선일보>의 논조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장문의 글이었다.

이 교수가 "사실과 동떨어졌다"고 지적한 <조선일보>의 "작문"은 지난 13일자 "난파 위기 국민연금.. 국민 지갑만 터나"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기사는 "정부, 보험료 올리거나 수령 시점 늦추는 등 엉뚱한 카드만"이란 부제를 달고, "사령탑 운용본부장의 부재는 1년", "5월까지 수익률 0.49%" 등과 같은 팩트를 무기 삼아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의 대책을 힐난하고 있었다.

"635조원이나 되는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점을 5년 이상 늦출 수 있다. 정부는 기금 운용을 책임진 기금운용본부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는데도 이런 문제부터 풀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의 추가 부담을 늘리거나 연금 수령 시점을 더 늦추는 해법만 찾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교수는 어떤 근거로 반박에 나섰을까. 이 교수는 첫 번째 글에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군불을 때고 있는 '국민연금 고갈 사태'는 절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그러면서 5년 마다 돌아오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과 1988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시킬 당시부터 안고 있던 포퓰리즘 성 국민연금제도의 태생적 문제점, 국민연금의 자금 조달 방식 등에 대해 전문가로서 제기할 수 있는 상식적인 물음과 제도의 본질적 세세하게 설명했다. 먼저, 개괄은 이랬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대책의 논의과정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민의 불만을 최대한 부추기려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책임감 있는 언론이라면 국민으로 하여금 국민연금제도의 기본성격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정확한 인식 없이는 건전한 대안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테니까요."

거칠게 요약하자면, 정부가 국민 지갑만 털려 한다는 보수언론의 문제제기는 틀렸다는 것, 또 마치 현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 역시 옳지 않다는 반박이었다. 왜 그럴까? 

"진실은 그게 아니고, 정례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점은 국민연금 재정전망을 새로 평가해본 결과 저출산,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기금 고갈 예상시점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빨라진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걸 갖고 어떻게 갑자기 국민연금이 난파 위기에 빠졌다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이것이 위기 상황이라면 이 정부 들어와서 그런 문제가 새로 발생한 게 아니고 1988년 출범 당시부터 안고 있던 문제인 셈인데요. 우리의 국민연금제도는 당시 정권의 포퓰리즘 때문에 출범 당시부터 재정건전성에 문제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국민 연금 개편안,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국민연금 재정압박의 문제는 '인재'(人災)가 아니다."
"보험료를 더 내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에 보험료율 인상, 보험료 납부기간 연장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국민연금이 제일 수익률이 높은 연금상품이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나중에 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은 없다."
"국민연금에 일반재정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다."
"미국의 경우 연금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은 2035년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올린 두 번째 글에서는 좀 더 쉽게 국민연금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줬다. 하나하나 <조선일보>와 보수언론, 경제지들의 호들갑에 대한 명징한 반박이었다. 특히 이 교수는 그 보수언론이 목을 매다시피 하는 미국 사례를 들어 불안에 빠진 국민들을 안심시키고자 했다. 두 번째 글을 아래와 같이 끝맺으면서 말이다.

"내가 굳이 이 (미국의) 통계를 인용하는 이유는 너무 위기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2057년에 기금이 고갈된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 거의 4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 세월만 허송한다는 가정하의 얘기입니다. 40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 고령화 + 저성장이란 근본적 장애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밝혀질 수 있습니다. 그때는 그때대로 적절한 대응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때 가서 연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비관론에 빠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보다 20년이나 더 긴 여유를 갖고 있는 우리가 더욱 조급하게 굴 필요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이준구 교수가 이러한 논리로 보수언론 혹은 <조선일보>와 각을 세운 것은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 2015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관련 지출은 선진국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우리나라가 거덜 날 지경이면 그 나라들은 벌써 국제적 거지가 돼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역시나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이 재정 압박의 원인을 두고 '복지' 탓을 하는 것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이 교수는 또 "복지 프로그램은 그 본질상 무상일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정부·여당·보수언론들이 구태여 '무상'이라는 말을 앞에다 붙이는 건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러한 이 교수의 말을 2018년 버전으로 바꿔보면 이쯤 되지 않을까.

"야당과 보수언론들이 '국민연금 때리기'에 나서는 건 국민연금 개편안을 통해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말이다. 이 교수 역시 첫 번째 글에서 "요즈음 신문을 열면 국민연금제도에 관한 기사가 지면을 온통 도배하다시피 할 때가 많습니다"라며 "보수언론은 이를 틈타 정부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구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5년 마다 돌아오는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한 갑론을박, 있을 수 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만큼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언론,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언론이 그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한 납작하고 기울어진 정보만을 유포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준구 교수의 반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기억하자. <조선일보>를 비롯해 국민연금으로 정부 때리기에 매진 중인 그 '언론'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안에 국민연금이 찬성하고 이후 수 천 억의 손실을 봤을 때, 그들이 어떤 논조로 국민을 호도했었는지를.


태그:#국민연금, #이준구,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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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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