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5일 세종시 종합청사 교육부 정문 앞에서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17일 발표 예정인 2022 대입제도 반대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15일 세종시 종합청사 교육부 정문 앞에서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17일 발표 예정인 2022 대입제도 반대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선희

관련사진보기


"1987년에 엄마는 어디에 있었어?"

상대평가의 경쟁 지옥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병들어 가고 때론 죽어 가는지 가까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이자 교사인 나는 8.15 광복절 휴일, 가히 살인적인 불볕더위에 세종시를 향해 시동을 걸어야 했다. 13일에 보내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긴급문자는 영화 < 1987 >을 보고 난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이 물어온 두 아들의 질문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골 깊은 교육 병폐의 가장 중심에는 상대평가라는 주범이 도사리고 있다. 교사이자 학부형이고 아이들의 대변인이기도 한 나는 다각도에서 면밀히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수도 없이 싸워야 했던 상대평가 시스템은 아이들의 인권을 위협하고 학교와 교사, 학생, 학부형의 상호 갈등과 불신구조를 부추겼다.

분명한 주범이 존재하지만 피해자 집단인 교사, 학생, 학부형은 서로를 향해 화살을 돌리곤 해왔다. 나 또한 그 화살을 동지들이나 자녀의 학교에 쏘아대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학교 현장에서 지켜본 개혁과 후퇴의 공허한 악순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주범은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저 피해자들끼리 책임을 주고받는 무모한 전쟁뿐이었다.

도저히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 없었다

두 남자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없었다. 놀아도 놀아도 부족한 어린 시절을 차마 학원에서 보내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업 문제로 터져 나왔다. 큰아이도, 둘째 아이도 어려워진 학교공부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더 좀 하라고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한창나이의 아이들이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좁은 교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꽤 고역임을 알고 있는 현장의 교사이기에.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작은 아이는 자유학년제 기간 동안 시험 없이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 초등학교 때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난 것을 보면서 지난 정부의 가장 큰 교육성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여름방학을 앞두고 아이는 수학이 어렵다고 토로해 왔다. 학교공부가 어렵게 느껴질 때는 의논하기로 약속하고 일체의 보충학습을 하지 않는 중이었다. 어떻게 어렵냐고 물으니 개념설명 단계까지는 잘 이해가 되는데, 단원평가를 보면 너무 많이 틀린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수업은 수월한데, 평가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 과거에는 학부형으로서 교사에게 화가 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교사들이 왜 가르친 것보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는지. 교사도 자율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 사회의 상대평가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것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보충학습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가정학습, 학원, 과외, 공부방 등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방학동안 쉬면서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이가 뒤늦게 전달해준 1학기말 성적표에 담임 선생님이 적어 주신 가정통신문을 보게 되었다.

"귀여운 인상에 늘 미소를 짓고 인사하는 예의를 갖추고 있는 학생으로 학급 행사에 긍정적인 자세로 열심히 참여합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높으며 매사 긍정적인 마인드로 임하는 장점이 있는 학생으로 호기심이 왕성하며 궁금한 점은 반드시 해결하려 하는 탐구적인 특성이 강한 학생입니다. 재치가 있고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생각이 창의적이며 바른 수업 태도를 지니고 있어 수업에 충실한 학생입니다.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으니 많은 칭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이 글로 표현하신 아이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예의, 공동체의식, 긍정 마인드, 호기심, 탐구욕, 재치, 창의성, 바른 학습 태도, 성실, 발전적인 변화'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때로 어떤 교사에게는 속 터지게 느린 아이로 보여질 때도 있었지만 모든 학습내용을 학교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남으로써 호기심과 탐구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넉넉한 여가는 넉넉한 마음을 길러주었을 것이고 그것은 예의와 공동체 의식, 재치와 창의성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그것들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아는 나로서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선생님의 글을 보니 너는 참으로 훌륭한 학생이야. 문제를 많이 틀린다고 위축될 필요 없어. 다만 너무 어려운 단계에 이르면 호기심을 지키기 어려우니 수업을 더 열심히 듣고 막히는 내용은 반드시 바로바로 복습하도록 해보자."

성장 돕는 평가로 학교교육 책임지고 싶다

2022 대입제도반대 기자회견에서 상대평가의 폐해를 설명하는 필자
 2022 대입제도반대 기자회견에서 상대평가의 폐해를 설명하는 필자
ⓒ 김선희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겸임 근무한 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 7개 반을 지도했다. 그중 한 반이 '모둠별 음악감상 라디오 제작하여 발표하기' 활동에서 놀라운 흥미도를 보였다. 그야말로 취향 저격이었던 것이다. 6차시에 걸친 수업에서 단 한 명도 딴짓을 하지 않았고 결국 모두 평가기준에 만족하는 결과를 보였다.

게다가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아이들이 대다수였던 그 반 아이들은 거의 모든 수행평가 영역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 그래서 결국 A, B. C 세 등급으로 나뉘는 학기말 성적에서 33명 모두 80점 이상에 도달함으로써 A를 받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기호를 파악하여 심혈을 기울인 수업의 성과가 전원 만족으로 이어지자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특히, 아이들이 음악을 즐기는 태도가 매시간 더 급증하여 교사로서의 보람을 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평가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성적관리위원회를 소집하고 사유서를 요구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평가에 만족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더니, 그렇다면 평가기준을 잘 못 세웠다는 것이다. 모두가 잘하는 평가기준은 변별력이 부족한 평가 도구로, 교사의 전문성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A4용지 세 쪽에 달하는 사유서를 통해 음악교욕의 본질적 목표를 어필하며 성적관리위원을 설득할 수는 있었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이 정도의 사례는 23년간의 교사생활 동안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학교 측을 십분 이해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상대평가 시스템의 같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학부형들은 원한다. 학교 교육이 내 아이의 학업을 온전히 책임져 주기를... 그것이 충족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의 문을 두드리는 심정은 학교에 대한 배신감으로 얼룩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학교는 학부형의 요구에 응답하기 어렵다. 사회로부터 반드시 실패자를 정해 놓은 평가기준을 강력히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역시 수행평가 계획 지침에 등장하는 문구를 보며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각오하게 된다.

"모두가 만점 받지 않도록 계획하라. 각 급간에 해당하는 학생이 1명 이상 나올 수 있도록 기준안을 세워라."

그러나 국가정책의 보호 없이 과연 나는 얼마나 오래 싸울 수 있을까? 반드시 실패자가 있어야 안심하는 기준, 그게 바로 절대평가의 얼굴을 한 상대평가다. 그래서 아무리 교육을 개혁해도 상대평가 시스템을 걷어내지 못하면 교사의 자율권이 침해받을 수밖에 없으며 책임교육을 하고자 해도 도저히 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더 많은 학생에게 실패자 낙인찍는 평가

모든 학생들은 학교생활에서 성공하고 싶어 한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아이는 생각이 없어요"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생각이 없는 학생을 만나본 일이 없다. 모든 아이들은 발전하고 성취하고 싶어 한다. 학교교육을 통해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십수 년 전 시골의 자그마한 중학교에서 초임 시절 3년을 보낸 내가 일산의 한 고등학교로 전출하면서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그야말로 교실 붕괴를 경험한 것이다. 새벽 한두시까지 학원차를 타고 순회한 아이들이 교실에서 반항하거나 엎드린 모습을 보이며 교사들과 빈번한 갈등을 빚었다.

특히 선행학습이 가장 성행한 수학, 영어 교과 선생님들의 고충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영어를 가르치던 동료교사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학생도 교사도 집단우울과 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학교란 무엇인가'를 수도 없이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결혼과 함께 다른 시도로 전근한 뒤로 중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올해 16년 만에 다시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3월에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과거의 모습과 달랐다. 학교수업에 열정적이었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의지를 불태웠다.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을 중시하는 달라진 입시정책의 결과라고 생각되어 너무나 기뻤다. 한마디로 학교가 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1차 지필고사와 6월 모의고사를 보고 나서 아이들의 학습의욕은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 시험을 치고 나서 아이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정답률이나 점수가 아니라 등급이었다. 그리고 80%가 넘는 학생들이 '좋은 대학은 틀렸구나'라고 낙담했다. 3학년 1학기까지 앞으로 많은 기회가 남아있음을 설명했지만 선배들을 통해 무수히 겪어왔던 나름의 현실이라는 분석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등급을 낙인 찍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했다.

큰아들도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3개 학년 동안 꾸준히 노력해서 점차 성적이 향상되었지만 과거 성적의 부진으로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아들은 3월부터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나중에 후회하기 싫었던 것이다. 일부 과목에서는 97점, 93점 등의 높은 성적을 받는 등 크게 향상된 결과를 보였는데, 아들은 낙담했다. 자신보다 더 잘 본 아이들이 많아서 만족하는 등급이 나오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바로 상대평가이다. 아이들을 억지로 공부하게 하거나 더는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올가미이다. 이 주범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개혁이 이루어져도 우리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서운 것은 실패자를 정해놓은 평가시스템이 그대로 사회의 성공시스템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촛불정부의 교육공약은 내 가슴을 뛰게 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개혁인가.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두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보태어 염원했던 정부가 아이들의 희망을 이렇게도 맥없이 저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8월 17일 대입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세종시 종합청사 교육부 앞에서 4일간의 비상행동으로써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9가지 요구에 주목했으면 한다. 이를 통해 현 정부가 대통령 선거시 공약한 대로 이 살인적인 상대평가의 덫을 걷어내고 아이들과, 학부모와, 학교를 살리는 정책을 선택할지, 기득권과 교육계의 여러 이해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며 외면하게 될지, 똑바로 지켜보고 예리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8월 15일 세종시 종합청사 교육부 정문 앞에서 2022대입제도 반대 1인 시위에 참가중인 필자 모습
 8월 15일 세종시 종합청사 교육부 정문 앞에서 2022대입제도 반대 1인 시위에 참가중인 필자 모습
ⓒ 김선희

관련사진보기


※ 2022 대입제도 종합안 속에 담겨야할 9대 요소들
【요구 1】 수능 평가방식은 전과목 9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정시 수능 전형에서는 절대평가 체제 속에서 한시적으로 백분위와 표준점수를 대학이 자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제공함.
【요구 2】 정시 수능 비중은 현행을 유지함.
【요구 3】 수능 시험범위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라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고1 공통과목+통합과목 중심'으로 정해야 함.
【요구 4】 진로선택과목인 기하와 과학Ⅱ를 수능 과목에 포함하는 것은 2015 개정교육과정이 페기되는 것을 의미하기에 절대로 수용해서는 안됨.
【요구 5】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은 폐지하거나 절대평가 등급을 활용.
【요구 6】 학생부 6개 비교과영역(수상경력, 자격및인증, 소논문, 자율동아리, 봉사활동, 독서활동) 대입 미반영하고 자기소개서는 폐지.
【요구 7】 면접은 교과지식을 묻는 구술고사를 폐지하고 학생부 기반 면접만을 허용
【요구 8】 2019학년도부터 고교 내신은 '고1 상대평가+고2·3 절대평가'로 전환해 성취평가제를 부분 도입하고,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2022학년도부터는 전학년 성취평가제로 전환해야 함.
【요구 9】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기 직전인 2021년까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자사고·특목고 근거 조항을 폐지해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해야 함.



태그:#대입제도, #상대평가, #대입제도반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2 대입제도 종합안
댓글1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