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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예견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제가 굳건히 살고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다. 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심판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초석이 되도록 다시 힘을 낼 것이다."

14일 낮12시 서울 서부지방법원 정문 앞, 피해자 김지은씨의 입장문을 대독하는 장윤정 변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굳은 표정으로 김씨의 입장문을 들은 김미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후 "이번 재판때문에 수많은 미투 피해자들이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 수행비서 김씨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아온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변호인단 등이 연대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판결을 규탄했다.

지난 3월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 김지은씨는 직접 뉴스에 출연해 피해사실을 밝힌 뒤 그를 고소했다. 이후 검찰은 안 전 지사가 김씨를 대상으로 2017년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질렀다며 그를 기소했다. 하지만 14일 재판부는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김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안 전 지사의 공소사실을 전부 무죄로 판단했다(관련 기사 : "위력 행사 없었다" 안희정 비서 성폭행 혐의 무죄).

미투(성폭력 고발) 사건 중 1심 선고가 이뤄진 사실상 첫 번째 사안에 전부 무죄 판결이 나오자 공대위는 강하게 반발했다. 선고 직후 법원을 나서는 안희정 전 지사에게 이들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었음을 인정하라"라고 소리쳤다.

공대위 "재판 과정 자체가 위력이었다"

안희정 무죄 판결에 분노하는 여성단체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자 1심 선고공판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 안희정 무죄 판결에 분노하는 여성단체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자 1심 선고공판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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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무죄 판결에 분노하는 여성단체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자 1심 선고공판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 안희정 무죄 판결에 분노하는 여성단체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자 1심 선고공판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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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호인단의 정혜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피감독자 간음죄(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의 입법취지와 강간에 대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던 상황을 두루살핀 대법원 판례 흐름과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형법 303조는 강자의 지위에 있는 자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 약자인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면 피감독자 간음죄로 본다. 법원은 이 경우 폭행이나 협박 등이 없더라도 유죄로 인정하고 있다.

또 이 사건에선 피해자가 일관된 진술을 했고, 거기에 부합하는 증언이 이어졌다고 변호인단은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존 법리와 원칙에 의거하더라도 피해자 진술을 의심할 만한 요소는 없었다"며 "피해자의 말을 왜 믿을 수 없는지, 피해자의 말에 부합하는 전직 수행비서들의 말은 왜 배척했는지 등 의구심이 많이 남는 판결"이라고 했다.

재판부의 '성인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재판부는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정조를 지키지 않고 무엇을 했냐'라는 질문을 했다"라며 "재판 과정 자체가 위력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는 '피해자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목을 두고도 재판부가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안태근 검사장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공개한) 서지현 검사처럼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여성도 자신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피해자를 동등한 권력을 가진 사람처럼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는 현실을 반영할 그 어떤 단어나 문장도 없는, 후퇴한 판결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도 "피해자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나에게 없다고 호소한 게 아니다"라며 "가해자가 이를 침해했다고 호소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피해자가)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어서 가해자가 무죄라면,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는 사람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기적의 논리다"라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이번 판결이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침묵을 강요하고 용기 내 피해사실을 고백한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는 사회분위기로 번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들은 "무수한 '위력 성폭력'에 대한 허용 면허인가"라며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자를 보좌하는 여성노동자에게 성적침해, 성희롱, 성폭력을 겪더라도 침묵하라는 언질이 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대위는 검찰의 즉각 항소를 요구했다. 공대위는 "범죄자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며 "1심 판결의 한계를 뛰어넘는 의미 있고 정의로운 사법부의 다음 응답을 기다린다"라고 밝혔다.

안희정 무죄 판결에 분노하는 여성단체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자 1심 선고공판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 안희정 무죄 판결에 분노하는 여성단체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자 1심 선고공판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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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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