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구 모형의 강리도 이미지
▲ 강리도 지구 모형의 강리도 이미지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1402년 한양에서 그린 세계지도에 모로코의 옛 오아시스 도시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면? 현재 그 오아시스의 이름은 타필랄트(Tafilalt), 마을 이름은 리사니(Rissani).

옛날 옛적엔 그곳에 아주 유명한 중세 도시가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이름마저 사라지고 유적만 남아 있습니다. 8세기에 생겨나 1390년대에 사라진 그 도시의 옛 이름은 Sijilmasa, Sijilmassa, Sidjilmasa, Sidjilmassa, Sigilmassa 등으로 표기됩니다. 여기에서는 Sijilmassa라 표기하겠습니다.

우리말 발음은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정수일 역)를 따라 '씨질마싸'라 부르겠습니다. 바로 이 씨질마싸가 강리도에 표기되어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람 있습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서양인도 아닙니다. 카자흐스탄 학자 눌란(Nurlan, 북경대 박사)입니다. 여기 내용은 그의 강리도 지명연구(<Silk Road>14, 2016)를 참고하여 엮어본 것입니다.

먼저 중세의 지리 형세를 봅니다.

모로코 중세 지리 형세
▲ 모로코 모로코 중세 지리 형세
ⓒ 위키

관련사진보기


지도의 녹색 부분에서 씨질마싸(Sijilmassa)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12세기 모로코 출신의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al-Idrisi)가 그린 모로코 지도를 살펴 봅니다. 이슬람 지도의 전통에 따라 남쪽이 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맨 아래가 지중해입니다.

모로코
▲ 알 이드리시 지도 모로코
ⓒ 옥스포드대학 도서관

관련사진보기


붉은 화살표가 오아시스 중세 도시 씨질마싸입니다. 이제 시간을 훌쩍 건너 뛰어 16세기 초반에 그려진 지도를 살펴 보겠습니다.

조상들은 모로코의 존재를 알았다

남쪽이 위를 향한다
▲ 레오 아프리카누스 지도 남쪽이 위를 향한다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이 지도는 레오 아프리카누스(Leo Africanus, 약 1494~1554, 오늘날 스페인의 그라나다 출신으로 모로코에서 오랫동안 거주함)의 지도인데 역시 남쪽이 위로 가 있습니다. 씨질마싸 일대를 별도로 따오면 아래와 같습니다.

모로코 씨질마싸
▲ 레오 아프리카누스 지도 모로코 씨질마싸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맨 아래 바다가 지중해입니다. 붉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보기 바랍니다. SEGELMESSE라 적혀 있는데 씨질마싸를 뜻합니다. 16세기 초의 이 지도를 마지막으로 씨질마싸는 그 이름이 사라질 것입니다.

다음은 18세기 말 독일인이 그린 지도인데 여기에서는 씨질마싸를 찾아 볼 수 없고 그 대신 같은 곳에 타필레트(TAFILET)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씨질마싸
▲ 모로코 일대 고지도 씨질마싸
ⓒ Worldmapsonline.org

관련사진보기


이제 오아시스 중세 도시 씨질마싸(Sijilmassa)의 소재를 강리도에서 탐구해 볼 차례입니다. 하지만 탐구에 뛰어들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인식의 혼란을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조선 건국 10년이 되던 해인 1402년. 우리 선조들이 붓으로 그린 지도에 오늘날의 모로코 지명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그 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첫 번째 지도는 구글에서 지원하는 지도이고 그 다음 지도는 강리도의 모사본(1910, 교토대에서 재현)입니다. 

모로코
▲ 모로코 모로코
ⓒ 구글

관련사진보기


모로코
▲ 강리도 모로코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붉은 네모가 대체로 모로코 일대를 포괄합니다. 보다시피 많은 지명이 들어 있습니다. 대부분 해독되지 않은 채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요. 우리는 지난번 언젠가 <지도와 인간사>에서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를 강리도에서 확인해 본 바 있습니다. 모로코의 Fez 등도 강리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씨질마싸 탐험에 집중합니다.

위의 강리도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붉은 네모 왼쪽 바다는 당연히 대서양이고 바로 위는 지중해입니다. 그러나 강리도의 지중해에는 바다 색깔이 누락되어 있습니다(지중해 입구에 하얀 띠 모양을 보시오).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합니다.

둘째, 강리도의 아프리카에는 중앙에 거대 호수가 그려져 있습니다. 붉은 네모 오른쪽의 아래에 보이는 물결은 거대 호수의 일부입니다. 이 의문의 거대 호수에 대하여는 다음에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토대학의 모사본은 매우 선명하여 눈이 시원하지만 한 가지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한자 지명을 잘못 베낀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15~16세기의 다른 필사본과 비교해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제 씨질마싸를 강리도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노란 화살표는 지중해 입구
▲ 강리도 류코쿠대본 노란 화살표는 지중해 입구
ⓒ 류코쿠대

관련사진보기


노란 화살표는 지중해 입구
▲ 강리도 교토대본 노란 화살표는 지중해 입구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위의 두 지도 중 첫번째는 일본 교토 류코쿠(龍谷) 대학 본입니다. 통상 강리도라 하면 이 지도를 가리킵니다. 두번째 지도는 1910년 교토대에서 만든 모사본이다. 두 지도에서 황색 화살표는 지중해 입구를 가리킵니다. 이제 붉은 화살표에 집중해 봅니다. 류코쿠대 본에는 '細只里土麻思'이라 적혀 있고 교토대 본에는 '細已里上麻思'이라 적혀 있습니다. 전자가  옳습니다(강리도의 다른 판본에도 細只里土麻思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土를 빼고 읽어봅니다(土는 땅이라는 뜻으로 발음과 상관없이 넣은 것 같다). 중국어로 '씨즈리마쓰'입니다. 바로 '씨질마싸(Sijilmassa)'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리적 위치도 실제와 흡사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듣도보도 못한 이곳을 태종 2년에 우리 선조들이 세계지도에 적어 놓았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곳 씨질마싸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12세기 이슬람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씨질마싸'는 모든 나라에서 여행자가 방문하는 수도다. 건물들이 웅장하고 정원과 과수원과 들로 둘러싸여 있다. 요새는 없지만 여러 형태의 궁전, 저택, 건축물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강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나일강만큼 큰 강으로 사막의 동쪽에서 흘러나온다. 주민들은 그 물을 이집트인들처럼 농업용수로 활용한다. 작물이 풍요롭다….모든 종류의 과일이 많이 난다. 특히 매우 작은 초록 데이트는 당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주민들은 또한 목화, 커민(미나리과 식물 - 필자), 양방풀 나물, 헤너(염료로 사용하는 식물 - 필자)등을 재배한다. 이들 작물을 북아프리카 지역과 그 너머로 수출한다. 건축물은 매우 아름다우나 최근의 변란으로 인해 많이 허물어졌다. 주민들은 개와 도마뱀을 먹는데 그들은 이 때문에 몸이 건장하다고 여긴다. -Bidwell, <Morocco> 137쪽(필자 번역)


우리는 또한 14세기 모로코 출신의 위대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1377)의 여행기 속에서 씨질마싸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도착한 곳은 씨질마싸(Sijilmasah)시다. 대단히 아름다운 도시로서 대추야자가 많이 난다. 대추야자가 많이 난다는 면에서는 바스라(Basra, 강리도에 지명이 나온다)와 비슷하나 씨질마싸의 것이 더 좋다. 특히 이란(Iran)이라는 대추야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종이다. 나는 그곳에서 법학자 아부 무함마드 알 부쉬리의 집에다가 여장을 풀었다. 그가 바로 내가 중국 지방의 깐잔푸에서 그의 형제를 만나봤다고 한 그 사람이다. 두 형제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는 나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나는 거기서 낙타 한 마리를 구입하고 4개월분의 사료를 장만해가지고 753년 1월 1일(이슬람력,1352년 2월 18일) 아부 무함마드 얀드칸-그에게 알라의 자비를-이 향도한 대상(隊商)과 함께 길을 떠났다. 대상 중에는 씨질마싸 상인들과 기타 사람들이 포함되었다." - <이븐 바투타 여행기 2> 389쪽(정수일 역)


세월이 흘러 16세기 초에 레오 아프리카누스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도성은 허물어져 있고 사람들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처럼 시간 속으로 사라진 씨질마싸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0년 전 미국 테네시 주립대학 역사학 교수 로널드 메시에(Ronald Messier)가 유적을 발굴하면서 부터였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발굴은 1402년 한국인이 그린 세계지도에서 그 지명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세계지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리적 시야가 넓을 때 그 국가 민족이나 문명은 흥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리적 시야가 좁아질 때 쇠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예외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측면에서 강리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큽니다. 세계 인식과 지리적 시야를 초광역적으로 넓힌 강리도의 탄생에 뒤이어 불과 50년 이내에 대마도가 정벌되고 육진이 개척되었으며 측우기와 한글이 창제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시야의 넓고 좁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늘 너머 모로코까지 지리적 시야를 넓혔던 강리도가 "후손들이여, 지금 그대들의 시야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분단선 아래에 갇혀 있지는 않는가?" 묻고 있는 듯 합니다.

류코쿠대본
▲ 강리도 류코쿠대본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태그:#강리도, #모로코, #오아시스, #시질마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