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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건축구조를 지닌 구산동 도서관마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건축구조를 지닌 구산동 도서관마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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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태워버릴 듯 맹렬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서 알리는 폭염특보, 폭염경보가 일상이 되다보니, 산으로 바다로 가지 않아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곳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도서관이나 동주민센터, 북카페, 서점 등에서 책과 함께 휴가를 보내려는 시민들이 많다. 이를 '북캉스', '북스테이'라고 하는데 책을 뜻하는 영어 단어 '북'에 '바캉스'를 결합해 만든 말이다. '호캉스'라 하여 호텔에서 편안하게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2015년 서울 은평구에 생겨난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은 동네 사람들에게 폭염 속 단비 같은 곳으로 북캉스 또는 무더위로부터 '도피(도서관 피서)'하기 좋은 곳이다. 공공도서관이지만 딱딱하고 엄숙한 관(館)의 느낌이 나지 않아 좋다. 이름처럼 정답고 친숙한 '마을'을 지향한다. 주택가 골목에 있었던 오래된 다세대주택들을 헐지 않고 재활용해 만든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이 최적의 북캉스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건, 이곳만의 열린 공간구조 덕택이다.

특이한 건축구조, 열린 공간이 많은 도서관
 
열람실이 따로 없는 도서관.
 열람실이 따로 없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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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곳곳에 마련된 독서 공간.
 도서관 곳곳에 마련된 독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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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어도 눈치 보지 않는 도서관, 엄마들이 도서관에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도서관, 깔깔거리며 만화책도 보는 도서관, 악기도 연주하고 영화도 보는 신나는 도서관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도서관마을에서 만나고 함께하며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 도서관 소개글 가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마을마당이라 불리는 1층 로비다. 5층까지 뚫려있는 높다란 천정은 크지 않은 공간을 훨씬 넓게 느끼게 해준다. 다양한 전시회와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야트막한 계단에 앉아 책을 읽다보면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한 수십 개의 사각형 창문으로 햇살이 비춘다.

흰 벽면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이 쓴 '書三讀(서삼독)'이란 한자와 설명글이 눈길을 끈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하는데 먼저 글자를 읽고, 다음으로 필자를 읽고, 마지막으로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란다.

도서관에 흔히 있는 독서실 같은 답답한 분위기의 열람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도서관 구석구석에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공간이 많다. 복도, 창가, 계단 밑, 구석진 공간 등이 모두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타고도 손쉽게 서고에 접근할 수 있다.

다세대주택 안에 있었던 방 55개로 다양한 크기의 공간을 만들어 열람실, 모임방, 동아리실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웃고 떠들고 얘기하는 일이 금지된 도서관의 통념을 깨는 공간이기도 하다.

2016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 서울시건축상 대상을 받을 만하다. 대학을 포함 학교나 학원이 취업이나 입시에만 집중하다보니, 해가 갈수록 동네 도서관이 지식·정보·교육·문화의 중심기관은 물론 동네 공동체 역할까지 하고 있다.

북캉스에 잘 어울리는 '만화의 숲'
 
도서관안에 있는 작은 만화 도서관.
 도서관안에 있는 작은 만화 도서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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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숲.
 만화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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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를 골라 정기적으로 상영한다.
 좋은 영화를 골라 정기적으로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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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서관은 단순히 입시공부를 하거나 책만 읽는 곳이 아니다. 소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다채로운 강연, 흥미로운 드로잉(연필, 잉크, 크레용 등을 이용해 그린 그림) 수업도 참여할 수 있다. 북캉스 중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시집에서 추리소설까지 부지런한 도서관 사서들이 추천한 책들이 도서관 1층에 비치중이다.

어느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도서관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도서관에 머무는 건 기차여행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저마다의 여행(낮잠, 멍 때리기 포함)을 즐기고 든든한 차장 혹은 도서관 사서가 편안한 여행을 도와준다. 그래서일까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책 읽기를 좋아한다.

북캉스에 가장 어울리고 재미있는 공간은 2층~4층에 걸쳐 있는 '만화의 숲' 코너. 2층은 어린이용, 3층과 4층은 성인용인 작은 만화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도 만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주민 의견에 따라 만화 도서관을 만들었단다.

예술성과 문학성을 갖추어 어른들의 만화라고 불리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도 많다. 만화책에 푹 빠진 아이들을 보는 일도 즐겁다. 무언가에 몰입중인 순수한 아이들은 바라보는 이도 깨끗하고 단순하게 해준다. 만화의 숲은 다른 자료실처럼 밤 10시까지 만화에 실컷 빠질 수 있다.
 
다채로운 도서관 풍경.
 다채로운 도서관 풍경.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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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르는 수고를 덜어주는 도서관 사서의 추천 책.
 책 고르는 수고를 덜어주는 도서관 사서의 추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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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곳에서 고른 5권짜리 만화책 <신들의 봉우리>를 읽고 있는데, 겨울 산 이야기라 무더위가 한결 덜 덥게 느껴졌다. 북캉스엔 평소에 읽기 힘들었던 시리즈로 된 책 읽기 좋다. 이외에도 시집이나 SF소설 같은 잘 읽지 않았던 책이나 만화책, 그래픽노블 같은 그림책도 좋겠다. 도서관 정기 간행물실엔 미술, 사진,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잡지들이 있으니 자신만의 취미를 찾아보는 것도 뜻 깊겠다.

▶ 교통편 : 서울전철 6호선 구산역 3번 출구 - 도보 10분
▶ 문의 : 02-357-0100
▶ 누리집 : www.gsvlib.or.kr

덧붙이는 글 | 8월 중 여러 번 다녀 왔습니다. 서울시 '내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구산동도서관마을, #북캉스, #만화의숲, #공공도서관,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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