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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자학당에 설치된 ‘공자’ 동상.
 중국 공자학당에 설치된 ‘공자’ 동상.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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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공자학당과 공자학원이 있기에, 한국 사람들도 중국이 공자를 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중국이 왜 공자를 띄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중국어를 보급하고 중국 문화를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공자학당을 만들었다면 사실 중국에는 공자학당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외국에 세운 공자학당보다 중국 내에 세운 공자학당이 더 많다. 그러니까 중국 정부가 중국에서도 공자를 띄우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서는 공자학당뿐만 아니라, 학교·공공건물 심지어 호텔 입구에도 공자 동상을 세우고 있다. 특히 중국 초·중·고·대학교 등 모든 공식 교육 기관에 공자 동상이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처음으로 알게되는 역사 인물은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이 아니라 공자일 것이라 예상된다.

공자와 마오쩌둥

 ‘타이얼주앙’ 운하 갑문 유적지 교육기관에 걸린 공자와 마오쩌둥.
 ‘타이얼주앙’ 운하 갑문 유적지 교육기관에 걸린 공자와 마오쩌둥.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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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중국 산둥성 자오주앙시에 있는 '타이얼주앙'이라는 운하 유적지(세계문화유산)를 방문했다. 타이얼주앙은 경항운하(중국 북경에서 항저우까지 연결한 인공 운하로 길이가 1442km다)의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수위 차가 커서 10여 개의 갑문이 설치된 지역이다. 그래서 경항운하를 이용하는 배들이 이곳에서 갑문을 모두 통과하려면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에, 운하 중간 경유지 도시로 발전했다.

이곳에는 운하 갑문 건설 후 거주하는 인구가 많아 교육기관도 발달했는데, 그 교육 기관 건물에 공자와 마오쩌둥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런데 공자와 마오쩌둥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상을 주장했기에,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같이 있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면 공자는 유교를 만들어 세상에 알린 사람이고, 마오쩌둥은 중국에서 공자의 유교를 없애려고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화혁명(1966~1976)을 일으킨 마오쩌둥은 공산주의 사상을 제외한 기존의 사상과 제도를 모두 부정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공자의 유교였다. 그래서 유교 사상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유교를 상징하는 구조물을 파괴했다.

문화혁명 시기 행동대원이었던 홍위병은 중국 곡부시 공자 기념관 공묘에 있는 건물과 비석을 파괴했다. 그래서 현재 공묘에서 볼 수 있는 비석은 깨진 돌덩이를 다시 붙여놓은 것이다. 깨진 돌덩이가 잘 붙지 않으면, 철사로 묶어 놓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공자의 무덤이 파헤쳐지기도 했다.

중국 곡부시 공묘에 있는 공자 무덤 앞 깨진 비석 모습 .
 중국 곡부시 공묘에 있는 공자 무덤 앞 깨진 비석 모습 .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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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식인종 사상"이라고 바판한 루쉰

루쉰(1881~1936)은 소설 <아Q정전>으로 유명하다. <아Q정전>이 중국 사람 개개인의 성격을 비판한 소설이라면 <광인일기>는 중국 유교 사상을 비판한 소설이다.

루쉰이 살았던 시기는 중국이 서구세계의 침략 앞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던 시대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자 중국 사람들은 중국의 패망 이유를 그 동안의 통치이념이었던 공자 사상, 즉 유교에서 찾았다.

<광인일기>에서 유교 사상은 '정신적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라고 표현된다. 여기서 식인종으로 표현되는 중국 사상은 중국의 낡은 사회, 그중에서도 사회 계급 구조와 가족제도를 지탱하는 유교의 도덕적 위선을 말한다.

루쉰은 <광인일기>에서 유교 책 글자 행간에 '식인(食人)'이라는 두 글자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런 식인종 유교 사상이 중국 사람의 생각을 잡아먹어서 중국 사회가 헤어날 길 없는 구조적 병폐에 갇힌 암흑세계가 됐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유교 사상을 부정하고 없애려고 한 마오쩌둥은 그 이론적 기반을 루쉰의 소설에서 찾았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평하면서 "루쉰은 중국 문화혁명의 최선봉 장수였으며, 위대한 문학가, 위대한 사상사, 위대한 혁명가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루쉰이 말하는 방향이 바로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고 추켜세웠다.

공자 띄우기와 루쉰 지우기

중국 루쉰 고향 ‘샤오씽’에 있는 루쉰박물관에 전시된 ‘중국 민족의 혼' 루쉰 기념물.
 중국 루쉰 고향 ‘샤오씽’에 있는 루쉰박물관에 전시된 ‘중국 민족의 혼' 루쉰 기념물.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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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중국 정부가 공자를 띄우기 시작하자, 루쉰의 위치가 살짝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서 공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내용은 늘어나는데, 루쉰의 소설을 소개하는 내용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중국 어린이 필독서 <증광현문>에는 "운이 다하면 '금'이 '철'로 변하고, 시기가 되면 '철'이 '금'으로 변한다"(運去金成鐵,時來鐵似金)라는 글귀가 있다. 그러니까 유교를 식인종 사상이라고 부정한 루쉰은 운이 다해서 '철'로 변하고, 공자의 유교 사상은 시기가 도래해 '금'으로 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공자의 유교 사상은 중국 문화혁명(1966~1976) 시기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 2000년 동안 수 차례 비판을 받았다가 다시 살아나고, 전성기를 누리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공자의 유교 사상은 <증광현문> 글귀처럼 어떤 시기에는 '금'이었다가 '철'로 변하고, 또 어떤 시기는 '철'이었다가 '금'으로 변하기를 반복한 것이다. 그러면 공자 사상은 중국 역사 2000년 동안 어떤 시기와 상황에서 다시 '금'으로 변했을까?

인(仁)과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

공자는 하늘에 있는 초자연적인 그 뭔가가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어 간다는 생각을 의심했다. 그래서 공자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하늘 신의 존재나 사람이 죽은 후에 혼으로 변해 귀신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믿지 않았다. 공자는 제자가 귀신과 사후 세계에 관해 물었을 때, "사람의 일도 아직 잘 모르는데 귀신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 또 살아생전의 일도 아직 잘 모르는데 죽어서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누구나 잘 모르는 일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 사는 세상일은 사람이 해결해야 하고, 사람이 세상일을 해결하는 이데올로기로 '인(仁)'이라는 사상을 만든다.

필자는 유학자가 아니라서 '인'에 담겨있는 심오한 내용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공자의 논어 글귀를 설명하는 한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과 중국 '바이두백과'를 참고해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공자 사상과 중국 사람이 생각하는 공자 사상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이라고 했다. 극기복례를 하면 공자의 사상 인(仁)을 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사전은 극기복례를 '자신의 의지로 사욕을 극복하고 예법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대어로 바꾸면 욕망을 이기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자는 것이다.

중국 곡부시 공자 기념관 공묘 앞에서 노나라 옷을 입고 춤추는 모습 .
 중국 곡부시 공자 기념관 공묘 앞에서 노나라 옷을 입고 춤추는 모습 .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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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바이두백과에서는 극기복례 단어 설명뿐 아니라, 그 유래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는 주나라의 예법을 따랐는데, 주나라 예법에는 각종 행사 진행 중에 전문 춤꾼들이 춤을 췄다. 그래서 천자의 행사에는 가로 세로 8줄로 총 64명의 춤꾼이 춤사위를 벌이고, 제후 행사에는 가로 세로 6줄로 총 36명이, 대부 직급 행사에는 가로 세로 4줄로 16명이 춤을 췄다.

그런데 공자가 살았던 시대 노나라에서는 제후(왕)가 힘이 없다 보니, 대부 직급의 귀족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64명의 춤꾼을 불러 권세를 자랑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노나라 대부 직급의 귀족이 천자 행세를 한 것이다.

예법을 중시하는 공자는 이러면 사회 질서가 무너져 세상이 혼란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을 억제해서 주나라의 예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극기복례라는 글귀를 <논어>에 남겼다. 주나라의 예법에서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면서 자신이 속한 등급에 따른 규범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중국 사전에서는 극기복례를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등급의 규범을 준수한 주나라의 예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미묘하게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위의 설명들을 종합하면 '자신이 속한 등급의 규범을 지켜 안정된 사회를 이루자',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공자는 사회 안정을 위해 권세 있는 대부 가문에게 자중하라는 의미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에 국가 통치자와 유학자들은 '네 꼬락서니를 알고 찌그러져 있어라'라고 해석하면서 전제 군주의 지위를 높여 사회 구조를 공고히 하는 이론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은 지난해 10월 25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 기자회견 당시 모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은 지난해 10월 25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 기자회견 당시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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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2000년 동안 새로운 국가가 막 건국됐을 때는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국가가 안정됐다고 판단되면 국가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국가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공자가 부상하곤 했다.

최근 중국 정치 흐름에 대한 외신 보도를 보면 '중국 공산당이 권력투쟁 중'이라고 다루는 경우가 잦다. 미국과 중국 '무역전쟁' 여파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외 정책이 역풍을 불렀다는 보도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중국 공산당이 안정돼 이제 그 기반을 공고히 하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다.

[About STORY] 2018년 1월 책 <중국사람 이야기>를 출판했다. 나는 <중국사람 이야기>에서 '중국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라는 사실에 덧붙여, 중국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중국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중국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위양식을 이해한다는 의미를 넘어 미래에 일어날 다양한 상황에서 중국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예측하고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


태그:#중국, #공자, #마오쩌둥, #루쉰,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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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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