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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수사관들이 1974. 10. 3. 적법한 구속영장 없이 피고인을 차량에 태워 보안사 조사실로 연행하였고, 구속영장은 연행일로부터 9일이 지나 집행되었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피고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백을 강요하며 주먹과 발 등으로 피고인의 온몸을 때리고 특히 구둣발로 피고인의 무릎을 밟는 등의 폭행과 가혹행위를 하였고, 재심대상판결의 공동피고인인 진두현, 박기래를 조사하면서도 이들에게 구타, 물고문, 전기고 등 폭행과 가혹행위를 하였다."

이동현의 재심개시 결정문 중 일부
 이동현의 재심개시 결정문 중 일부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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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제23형사부(재판장 김태업)는 1일 이른바 '통혁당재건위사건'으로 알려진 진두현, 박기래 등의 공범이었던 이동현씨에 대한 재심개시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 재심개시결정문에 기재된 '인정사실'은 위와 같은 불법감금과 고문이었다. 특히 고문에는 구타 뿐만 아닌 물 고문, 전기 고문 등의 잔혹 행위가 행해졌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재판부는 보안사(지금의 기무사령부)의 또다른 불법을 지적했다.

이동현의 재심개시결정문 중 일부
 이동현의 재심개시결정문 중 일부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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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 군인이나 군속이 아닌 (민간인 신분의) 피고인에 대한 혐의는 군법회의가 예외적으로 일반인에 대하여 재판권을 가지는 구 군형법 제1조 제4항에 정한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안대 수사관은 민간인을 수사할 수 없다. 보안대 수사관은 대한민국 군인, 군속 등이 범한 죄를 다룰 수 있으며, 특별히 민간인을 수사하는 경우는 요새, 기지 또는 군 진영 내의 간첩죄 등에 제한된다. 그런데 피고인은 민간인 신분으로 군시설이나 군 진영에서의 활동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보안대는 민간인을 수사했다.

그럼 당시 재판부는 수사권이 없는 보안대의 수사를 왜 지적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보안대 수사관들과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짬짜미'가 있었던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군에서 민간인을 수사할 수 없으니 보안사는 민간수사기관의 명의를 빌리기로 한다. 그것이 바로 중앙정보부 수사관 명의라는 것이다. 다시 재심개시결정문을 보자.

나아가 중앙정보부 사법경찰관이 마치 피고인에 대한 수사에 입회한 것처럼 수사 서류가 작성되어 있기는 하나 취급기관인 보안사가 피고인을 연행하여 조사한 것일 뿐 중앙정보부 사법경찰관의 기명날인은 수사권한을 가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수사권한이 없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민간인을 수 일에서 수십 일간 불법으로 가두어 놓은 채 물 고문과 전기 고문 등 온갖 폭력적 수단을 사용해 자술서와 진술조서를 만들어 '완전한 간첩'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류에 모든 수사관의 명의는 안기부 수사관 명의를 도용하는 것이다.

그런 재판으로 인해 두 사람이 사형을 당했고, 또 두 사람이 20년 가까운 징역살이를 해야 했으며, 또 한 사람이 10년 감옥생활 도중 사망했다. 그리고 여러 명의 공동 피고인들이 직업을 잃고 감옥에 가야 했다. 그리고 그들 뒤에 남겨진, '간첩 마누라', '간첩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단 수많은 가족들과 친척들은 또 어떠랴.

이렇게 간첩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류를 조작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로서 구 형법 제123조에 정한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를 구성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기무사는 민간인을 사찰하고 계엄을 검토하는 등의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이러한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가졌던 무소불위의 공권력에 취해버린 그들 조직의 관행이었던 것이다. 과거를 정리하고 스스로 새로운 토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명칭과 조직을 축소하는 요식적 행위보다는 지금도 당시의 피해로 울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 통혁당 재건위 사건

1975년 3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
 1975년 3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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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0월 1일 발생한 사건이다. 민주수호동지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던 재일교포 진두현과 한국에서 활동했던 박기래, 김태열, 그리고 군인이었던 강을성 등이 보안대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통해 '통일혁명당 재건위'라는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으로 진두현, 박기래, 강을성, 김태열 등이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중 진두현, 박기래 만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강을성, 김태열은 모두 사형이 집행되었다



태그:#지금여기에, #인권을먹다, #진두현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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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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