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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내용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몸이 기억하는 문장, 아니 노래다. 2016년에 시작해 2017년에 사그라든 촛불집회 현장에서 모두가 듣고 따라 불렀던 그 노래.

헌법이 없었다면 우리 역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분노조차 할 수 있었을까. 그 때문이었을 거다. 헌법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제라도 헌법을 제대로 알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었던 것은.

<세계인권선언>(글/그림 제랄드 게를레, 역자 목수정, 문학동네)을 옮긴 목수정씨도 그랬나 보다. 15년째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작가 목씨는 말한다. '벽장에서 그 온기를 다하고, 잊히고' 있는 것 같아 보였던 세계인권선언이 '인류가 쌓아올린 신성한 권리들이 심각하게 위협 당할 때 일제히 울리는 사이렌처럼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걸' 보았다고.

'2002년 인종차별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정당이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올랐을 때', '2015년 1월 주간지 새를리 에브도의 언론인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만평을 실었다는 이유로 테러를 당했을 때'다.

글/그림 제랄드 게를레, 역자 목수정
 글/그림 제랄드 게를레, 역자 목수정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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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줄 알았던 자유와 평등, 박애'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메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가는 깨닫는다. "세계인권선언이 없었다면 나는 분노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1948년 12월 10일, 제3회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계인권선언이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거다.

그리하여 썼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 세계인권선언'에 대해, 가장 쉬운 언어로 엄선해서.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읽기 쉽게 만들었다. 아름답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고, 풍자스럽기도 한 다양한 일러스트를 보는 건 덤이다.

목씨가 이 책의 번역을 시작할 무렵 일어난 촛불정국이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도 1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정권의 출범이 바로 인권이 존중되는 이상 사회의 실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지난 3월 유엔인권이사회가 제시한 인권 수칙 가운데 97개 권고에 대해 새 정부가 불수용 의사를 밝힌 것을 그 근거로 들면서.

'세계인권선언' 내용
 '세계인권선언' 내용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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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내용 중
 '세계인권선언' 내용 중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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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 페이지에 세계인권선언문을 소개하고 이어 그와 관련한 카를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 빅토르 위고,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의 유명 인물들이 말하거나 쓴 내용을 모아 실었다. 이 책에, 김구, 김대중, 노무현, 나혜석, 김산, 류은숙 등 우리 역사적 인물들을 넣어 편역한 것도 '세계인권선언이 우리의 현재를 비춰 보게 하는 거울의 역할을 더 충실히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거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인권선언>을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렴풋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책 앞뒤 면지에 가득차 있는 '한국 시민 99인의 인권선언'도 인상적이다. 그중 묵직한 울림을 주는 10대들의 인권선언 몇 개를 소개해 본다.

"놀아도 놀아도 또 놀고 싶어요. 어린이는 충분히 놀고 쉴 권리가 있어요."
"불편한 교복 치마 말고 생활복 바지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는데 주민들이 싫어한다고 학교가 기각해 버렸어요. 그럼 유아복처럼 꽉 끼는 셔츠는 주민들이 좋아해서 그대로 두는 건가요?"
"나는 봄에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싶은데, 엄마가 미세먼지 많다고 못 놀게 해요.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요."
"저는 대한민국의 고3. 남들이 말하는 찬란한 스물을 위해 잠시 잿빛이 된 열아홉이에요. 하지만 저의 머리색은 이미 매우 찬란하답니다. 회색, 하늘색 등을 거쳐 지금은 보라색이거든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저에게 학교를 안 다니냐고 묻습니다. 여자애가 발랑 까졌다며 손가락질하기도 하죠. 하지만 제가 제 머리색조차 결정할 수 없다면 무엇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전 당당히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권리라라고요."



세계인권선언 - 그리고 인권의 역사를 만든 목소리

제랄드 게를레 외 그림, 목수정 옮김, 문학동네(2018)


태그:#세계인권선언,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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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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