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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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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을 마지막으로 본 건 2년 전 총선 직전 여의도의 어느 카페였다. 그가 먼저 차 한잔 하자고 연락했다. 나는 늘 그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같이 고민해주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창원으로 내려가는 결정을 이미 내렸었다. 그 선거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안철수 전 의원이 그의 지역구를 빈집털이 한 후, 어쩔 수 없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가 걱정스러웠는데, 그는 내 걱정만 했다. 좀 미안했다. 나는 누가 걱정해주지 않아도 먹고 살고, 그냥 버티는 거, 이런 거는 잘한다. 그때 그는 자기가 제대로 된 자리를 한 번 만들테니까, 나중에 꼭 한 번 같이 일하자고 했었다. 나는 그가 도와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도와드린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는 노회찬의 후원회장을 했었다. 뒤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자리를 주선하거나 하는, 좀 드러나지 않게 움직여야 하는 일들을 주로 해주었다. 그때 노회찬의 선거 조직을 관리하던 사람이 오재영이었다. 오재영(노회찬 의원 정무수석보좌관)은 작년에 과로로 죽었다.

나에게는 오래된 꿈이 있었다. 노회찬을 대통령으로, 이런 거창한 것은 아니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쓰고, 그 책을 버스 광고를 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노회찬 얼굴을 단 버스가 시내를 질주하는 것을 보는 게 내 꿈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었다. 역시 인민노련(인천민주노동자연맹)이었던 이재영(진보신당 정책위 의장)의 눈으로, 그와 같이 독재와 싸웠던 노회찬의 젊은 시절의 삶을 그리는 것,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

50대 에세이를 쓰면서, 그 시절의 기억이 났다. 책을 쓰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노회찬, 이재영 등등, 그런 사람들이 지난번 우리 집 마당에 모였다. 그때 삼겹살을 노회찬이 도맡아서 구웠다. 나는 그 순간을 내 인생에 가장 화려한 순간으로 기억했다. 날이 좋았던, 오늘 같은 여름날이었다.

우리 부부의 친구였던 노르웨이 부부를 노회찬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에 노르웨이 방문을 하면서, 그 노르웨이 부부의 부모, 친척 등 그야말로 노르웨이 사회당 계열의 교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들의 친구는, 이렇게 겹치고 저렇게 겹치고,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도 가장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내 인생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은 빈소 모습.

  노 원내대표는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 김모 씨 측으로부터 5천만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 영정 속 노회찬은 웃고 있었다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은 빈소 모습. 노 원내대표는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 김모 씨 측으로부터 5천만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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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이 먼저 죽었다. 암이었다. 이재영이 죽고, 너무 오래, 너무 길게 울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눈물이 말라버린 것 같다. 이재영이 죽었을 때, 조금 더 바지런을 떨어서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 작업을 진행하지 못한 것을 너무너무 후회했다. 이제 그 얘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 이재영이 떠난 뒤, 나는 몇 년을 울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오재영은 작년에 죽었다. 민주노동당 시절의 두 재영이가 그렇게 모두 먼저 떠나갔다.

그리고 오늘(23일), 노회찬이 죽었다.

우린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의 죽음을 생각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다. 최소한 노회찬과 20년은 더 가끔 만나고, 가끔 시답잖은 얘기하고, 허랑방탕하게 세상을 좀 살아보자는 농담하고... 그럴 줄 알았다.

노회찬을 위해서 공들여 쓴 글이 하나 있다. 꾸리에 출판사에서 노회찬에 관한 책을 내자고 해서, 무조건 나도 돕는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노회찬에 대한 평전을 꼭 쓰고 싶었는데, 이제는 노회찬에 대한 짧은 글 하나밖에 남은 게 없다.

내가 30대에 만났던, 한국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몇 사람들은, 정말로 너무너무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사람을 적게 만나지는 않았다. 극우부터 극좌까지, 정치라면 당연히 아나키즘이어야 한다는 극단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만났다.

2004년 이전, 민주노동당이 아직 원외 정당이던 시절, 그 앞에 서 있는 몇몇 사람들은 너무너무 찬란하고, 소박하지만 후광이 서린,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과 몇 년을 같이 보냈다.

노회찬... 그가 떠났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시기에, 떠올려 보지도 못한 방법으로 떠났다.

나만 혼자 살아남았다

우석훈 박사가 참여한 책 <진보의 재탄생>
 우석훈 박사가 참여한 책 <진보의 재탄생>
ⓒ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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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의 시대는 갔는가? 내가 봤던 그 아름다운 사람들은 이제 한 명도 이 땅에 남아 있지 않다. 대충 살고, 적당히 하고, 술만 열심히 마시던 나만 혼자 살아남았다. 나는 그들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그들처럼 열심히 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기억하면서, 가끔 혼자 슬퍼하는 그런 바보 같은 일만 하게 될 것 같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찬란했던 기억만을 남겨놓고 노회찬, 그가 갔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어쩔거냐... 지나치게 아름다운 사람들, 가끔은 무심하고, 때때로 무책임하다.

노회찬, 그가 도착할 천국에는 잔디밭과 삼겹살 불판, 그리고 그와 같이했던 동지들이 있을 것 같다. 아름답게 들풀이 피고, 친구들의 수다 소리 가득한 그곳, 그곳에서 영원히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에 나오는 대사다.

"좋은 놈들은 이미 다 죽었어..."

진짜 그렇게 되었다. 그들이 지금쯤 노회찬의 천국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우석훈 박사의 블로그 (http://retired.tistory.com/2177)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노회찬, #노회찬의원, #우석훈, #이재영, #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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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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