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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노회찬 의원 부고.
▲ 노회찬 정의당 노회찬 의원 부고.
ⓒ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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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의 큰 별이 졌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지난 23일 오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진보정치에 평생을 바친 노회찬 의원의 믿고 싶지 않은 서거 소식에 인천의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고 노회찬 의원은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2년 부산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뒤 1973년 경기고에 진학했다. 경기고 1학년이던 1973년 박정희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하고 배포했다.

노 전 의원은 군복무를 마치고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중도에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1982년 서울기계공고 부설 영등포청소년직업학교(현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을 취득 했다.

그 뒤 서울, 부천,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첫 직장은 기아자동차였는데 대학생 신분이 드러나 해고됐다. 그 뒤 여러 공장을 다니며 노동자들과 교류하고, 정치 서클을 조직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회찬은 1982년부터 각종 시위를 주도하고 불온문서를 배포한 혐의로 수배됐고, 긴 수배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어받아 7~9월 '현장에는 민주노조'라는 슬로건을 내건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됐다. 당시 노회찬은 인천, 부천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단체들을 연합해 인천민주노동자연맹(약칭 인민노련)을 출범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노회찬 전 의원은 진보정당 창당에 헌신했다. 1997년 국민승리21을 창당하고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내세워 대선을 치렀다. 비록 30만 6000표를 얻는데 그쳤지만, 이는 훗날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연결되는 밀알이 된다.

국민승리21은 1999년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노회찬은 이때 정치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2000년 1월 30일 창당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 때 10석을 배출했고, 노회찬은 비례 8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줄곧 진보정치에 몸담고 전보정치를 개척했고, 지난 23일 생을 마감했다. 진보정치의 큰 별이 졌다.

한국당 정유섭 "사람이 맑다 보니... 아쉽고 아쉽다"

인천에서도 진보정치의 큰 별이 스러진 데 대한 애도가 가득했다. 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은 "정말 비통한 심정입니다. 좋은 정치인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송영길(계양갑) 국회의원은 1980년대 인민노련(인천민주노동자연맹)에서 활동하던 노회찬 의원과 인연을 언급하며,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송 의원은 학생운동으로 구속됐다가 1985년 석방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인민노련에서 노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송 의원은 "영정사진을 보니 눈물이 쏟아지네요. 1986년 처음 인천에서 만나 32년 동안 친형처럼 서로 신뢰하고 좋아했는데. 그 아픔을 혼자 다 짊어지고 이렇게 가시다니. 지선이 누나는 어떻게 하라고. 제 아내가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이었는데… 회찬형 바보 같은 형. 워싱턴에 가서도 특파원들에게 시달리고 돌아와 누구한테도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다 짊어지고 가다니… 형을 그냥 보낼 수가 없는 비통한 마음입니다."라고 했다.

민주당 박찬대(연수갑) 의원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더니 당신의 높은 기준이 스스로를 버리게 했나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했다.

노 전 의원의 부인 김지선 여사와 여성운동을 함께한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은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소식… 슬프고 먹먹합니다. 고 노회찬 의원의 마지막 공식 발언은 삼성 백혈병 산재와 KTX 승무원 복직에 대한 서면 발언이었다고 하지요. 그동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 의원이 해온 노고를 기억합니다. 모두 계속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노 의원을 추모했다.

자유한국당에선 정유섭(부평갑) 국회의원이 노회찬 의원을 추모했다. 그는 "노회찬이 세상을 스스로 등졌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후배고 동료의원이지만 냉철한 사회인식과 뚜렷한 정치철학을 가진 존경했던 사람이다. 너무 사람이 맑다 보니 스스로가 용서되지 못한 모양이다. 아쉽고 아쉽다. 한국 정치가 너무 험하다. 그의 죽음을 두고도 인터넷에 악플이 달리는 걸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참 모질다. 언제까지 진영논리로 남의 불행에 부채질할 건가. 노회찬 죽음을 계기로 우리 정치행태가 상생과 협치로 바뀔 것을 희망한다. 그를 애도하며 명복을 빈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시민사회단체도 노회찬 의원이 서거를 애도했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고 노회찬 의원은 우리 사회의 진보정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오셨다. 우리 사회 진보정당의 초석을 마련했으며, 항상 노동자 서민들의 벗으로 살아오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맨 앞에서 일해 오셨다. 고인이 꿈꾼 세상을 우리가 기억할 것이며, 고인의 뜻은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이어질 것이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정의당 인천시당(김응호 위원장)은 비통한 마음을 추슬러가며 장례절차와 조문을 안내하고 있다. 정의당 인천시당은 수도권이기에 인천에 별도로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고, 서울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김응호 위원장이 상주를 맡아 조문객을 맞이 하고 있다. 아래는 고 노회찬 의원의 장례일정이다.

■노회찬 원내대표 부고 및 장례일정 안내
- 장례식장: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연세장례식장-특1호실
- 7월 23일(월) 17시: 조문 시작
- 7월 25일(수) 10시: 입관
- 7월 26일(목) 19시: 추모제 (장례식장 1층 영결식장)
- 7월 27일(금) 09시: 발인
- 7월 27일(금) 10시: 국회 영결식
- 7월 27일(금) 13시: 화장(서울 원지동 추모공원)
* 장지: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회찬, #정의당, #인천, #진보정치, #인민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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