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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대중가요, 영화, 게임 등 모든 문화 콘텐츠 산업의 중흥기였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승부', '걸어서 하늘까지', '질투', '여명의 눈동자'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드라마들이 있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꼽는다면 단연 '모래시계'가 아닐까.

'모래시계'는 격동하는 현대사의 현장을 담아낸 작품이다.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조리를 조명했다. 작품을 통해 최민수, 박상원, 고현정은 톱스타의 입지를 굳혔고 이정재, 이승연, 김정현, 홍경인은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했다. '모래시계' 효과로 작품 배경이었던 강원도 정동진은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정동진역에 하루 한 번만 서던 열차가 하루 수 십 대로 늘어나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도 '모래시계'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버지는 "모래시계 하나? 모래시계!('모'자에 악센트를 준 경상도 사투리로 '지금 모래시계 하고 있니?'라는 뜻이다)"라고 하시며 황급히 구두를 벗으셨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 보시지 않았던 아버지의 반응이 이 정도였다. 당시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날에는 거리가 한산했다고 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귀가를 서둘렀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귀가시계'가 될 정도로 '모래시계'의 인기는 대단했다.

  80년대 시대 상황을 현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모래시계(1995.01.09. ~ 1995.02.16. 24부작)>
 80년대 시대 상황을 현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모래시계(1995.01.09. ~ 1995.02.16. 24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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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64.5%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마지막 회는 압권이었다. 당시 12살이었던 나는 지금도 한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형 집행을 앞둔 태수(최민수 분). 시종일관 넘치는 카리스마를 뿜어온 태수도 죽음 앞에서 떨고 있었다.

"나… 떨고 있니?"

전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마디였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이 대사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인 김태형 작가는 <트라우마 한국 사회>에서 현재 30대인 80년대생을 '공포 세대'라고 정의했다. 경쟁과 사교육, 왕따 현상 속에 자라난 세대에게 공포 트라우마가 깊이 내재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공포 세대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으나 일찍이 세상에 대한 공포를 체감하며 자란 세대다. 이들은 90년대 화두였던 '세계화' 열풍으로 개인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 속에서 자랐다. 사교육이 과열되면서 80년대생들은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엄친딸(엄마 친구 딸)'과 끊임없이 개인의 경쟁력을 비교당해야 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들은 스스로 패배자라 여기며 자괴감을 느꼈다.

특히 97년 IMF 때는 부모 세대가 겪은 공포를 자녀들도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부모 세대는 일자리를 잃고, 사업에 실패하며 거리로 내몰리기도 했다. 80년대생들은 공포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또한 '이해찬 세대'로서 입시 공포도 맛보았다.

"대부분의 공포 세대는 부모에게 저항하는 대신 고문에 가까운 '0교시, 야간자율학습, 학원, 그리고 다시 수업으로 이어지는 공부기계의 삶'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즉 그들은 일류 대학 진학, 나아가 개인적 성공과 출세를 최고의 목표로 삼는 인생관을 받아들였고 부모가 그려주는 인생길로 묵묵히 걸어갔던 것이다."
- 김태형 작가의 <트라우마 한국 사회> 중에서

공포 세대는 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은 자기 혐오감에 빠졌다.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하고 불안해했다. 시장의 논리가 대학을 집어삼킨 상황에서 공포 세대는 무력했다. 대학에서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부 학과가 폐지되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자기 철학을 구축해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공포 세대는 각종 스펙 쌓기에만 열중했다. 대학의 낭만 따위는 개나 줘버린 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대학 졸업만 해도 여러 기업에서 환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터지며 담뱃값이라도 아껴야 하는 '호랑이 담배 끊는 시절'이 도래했다. 취업시장은 점점 얼어붙었다. 공포 세대는 "나… 떨고 있니?"라는 대사를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아왔다.

아 니가 니가 니가 뭔데
도대체 나를 때려
왜 그래 니가 뭔데

힘이 없는 자의
목을 조르는 너를
나는 이제 벗어나고 싶어
싶어 싶어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갔어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다 가져갔어

- '전사의 후예' (H.O.T 노래 중)

최근 희망제작소에서 실시한 '시민희망 인식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서 30대가 전 연령대 중 가장 비관적인 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는 현재 삶의 만족도, 정신 신체의 건강, 경제 상태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평균보다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희망 수준도 낮았다. 희망제작소는 "30대는 집단 우울증을 의심할 만큼 모든 항목에서 만족도가 낮다"라고 평가했다.

대한민국 30대는 정말 집단 공포증과 우울증에 빠진 것일까? 내게 두려움과 상실감으로 다가왔던 서른 살을 넘긴 지 몇 해가 흘렀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통해 공포와 우울 속에서도 가끔은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20대에 바라본 직장 생활이 '터널 끝의 빛'이었다면 30대에 체험한 직장 생활은 '터널 속의 터널'이다.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선배들을 볼 때 직장 생활의 앞날이 빤히 보인다. 5년 후, 10년 후 내가 선배들의 자리에 있는 것도 두렵지만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현실이 더 두렵다.

  대한민국 30대는 정말 집단 공포증과 우울증에 빠진 것일까?
 대한민국 30대는 정말 집단 공포증과 우울증에 빠진 것일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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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세대는 두려움으로 인해 안정을 추구하고 무력하게 순응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 눈치 보며 살아가는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한 신문에 실린 소방학교 교육생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장 유익했던 교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육생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고소공포증이라고 생각했던 공포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관님께서 '누구나 높은 곳에서는 다 무섭다. 그것은 고소공포증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말씀에 용기를 얻었고 고층 건물에서 로프 하강, 헬기레펠(상공에 떠 있는 헬기에서 줄을 이용해 하강하는 것) 교육 때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첫발이 무섭지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마음가짐을 얻게 됐고 앞으로는 어떤 높이에서도 겁먹지 않는 용감한 소방관이 될 수 있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 공포 세대라는 말 뒤에 숨지 말자.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땅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특히 30대가 느끼는 공포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우리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 땅에 태어나 첫 발을 내디뎠다. 출산시 산모와 태아는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생명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고귀한 용기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용기 있는 자들이다. 공포의 하루하루를 극복하며 생존해 있지 않은가? 인생은 궁극적으로 죽음이라는 공포를 견디며 살아가는 여정이다. 죽음을 직시할 때 더욱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있듯이 공포를 발판 삼아 마음껏 비상하는 30대가 되자. 대한민국 30대는 더 이상 공포 세대가 아니다!


태그:#공포세대, #대한민국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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