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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간 직장에 외국인이 몇 명 있다. 영어를 못하지만 워낙 낯을 안 가려서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일단 출근 전날에 번역 어플의 도움을 받아 인사말과 간단한 대화 내용을 준비한다. 출근해서 외국인과 마주치면 전날 준비한 내용을 토대로 자신감 있게 대화하면 되었다.

문제는 암기한 것 이외의 대화 주제가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딴청을 피운다거나, 종종(아니 많이)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what"을 되풀이 한다는 불상사가 생긴다는 점 뿐.

하지만 영어를 못해도 우리에게는 '바디 랭귀지'라는 비공식적 만능키가 있다. 번역 어플과 바디 랭귀지로 한 주를 버티고 한 달을 버텼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외국인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프랑스인 J와 인도네시아인 M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J가 물었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어디에서 일했어?"
"너의 꿈은 뭐야?"


초 단위로 질문이 쏟아졌다. 원래 생각이 많고 진지한 성격이어서 대답도 알차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영어가 안 따라주니 버퍼링 걸린 것처럼 버벅 거리기 시작했다.

"Um.. I want to.. 그러니까.."

J와 내가 소통을 못하자,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M이 중간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하며 바쁘게 통역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 통역해주는 사람도 재미와 보람이 있지, 계속 반복되니 지쳤나 보다. 어느 순간 통역을 멈추고 묵묵히 밥만 먹었다. 결국 영어를 못하는 나 때문에, J와 M도 밥 먹는 내내 거의 한 마디도 안 했다.

하루는 J와 M을 만나기로 했는데, 대화할 때 말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약속시간인 12시 30분을 못 알아들었다. 게다가 프랑스인 J 특유의 프랑스식 영어 덕분에 더 혼란스러워서 점심 먹고 만나는 걸로 이해하고 있었다.

결국 7월 뙤약볕에서 그들을 20분 동안 기다리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핸드폰도 안 보고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그들을 만나러 뛰어가는 길에, 정말 온갖 이모티콘과 수사를 동원해서 사과했다. 게다가 만났을 때도 "Sorry"만 연발할 뿐, 왜 그랬는지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다. 충격적인 나의 영어 실력에 나 스스로 할 말을 잃었다. '죽기 살기'로 영어를 익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영어 유머를 이해 못해서 나만 웃지 못하는 날들

외국인과 함께 일한다는 것
 외국인과 함께 일한다는 것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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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나를 싫어할 뿐,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 가끔 사무실에서 매일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마인드와 철학을 가진 사람인지 너무 궁금한데 물어볼 수가 없다.

일단 물어봐도 문장이 온전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영어가 대충 들리긴 하는데, 그 영어 문장이 한국말로 무슨 뜻인지 완벽하게 모르는 격이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뜻인지 몰라 혼잣말로 천천히 되뇌면, 늘 J가 다시 영어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발음해서 말해준다. '나는 너랑 대화하는 게 즐겁다'라고 말해주면서 격려하는데, 솔직히 영어 못 하는 한국인과 대화하는 게 뭐가 즐겁겠는가.

때로는 진지한 대화도 하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우리들 사이에는 매일 똑같은 영어회화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가끔 그들이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며 깔깔거릴 때가 있다. 나도 영어 유머를 이해하고 싶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말 속도도 너무 빨라서 알아듣지 못하고 훅 지나가 버린다. 그러면 세심한 J가 나에게 또 말을 건다.

"Are you Understand?(이해했니?)"

고맙긴 한데, 이 순간이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다.

그래도 영어는 매력 있는 언어이다

평소에 외국인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국식 영어 발음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미국식 영어 발음을 따라하려고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글로벌한 환경에 노출되면 미국식 영어 발음이 항상 최선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나라별, 사람별로 영어 발음이 굉장히 다양하다. 이집트인의 발음을 들을 땐 그 사람의 발음에 익숙해져야 하고, 프랑스인의 발음을 들을 땐 그 사람의 발음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 사람들도 표준 영어 발음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마다 다양한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사람들이 표준 영어 발음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식 영어 발음을 구사하면, 의사소통이 좀 더 정확하고 편리할 수는 있다. 많은 이들이 미국식 영어 발음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직장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영어를 배울 때 발음에 크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사람마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발음도 제각각이다. 무엇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 그러한 환경에 노출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영어'라는 만국 공용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신기한 건 저마다 본인의 개성이 담긴 영어로 대화하는 데도 서로 그 뜻이 통한다는 점이다. 그 모습을 볼 때 희열을 느낀다. 영어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최고의 도구였다. 당연히 배울 가치가 있는 언어였다.

외국인 친구를 둔다는 건, 새로운 세상 하나가 나에게 오는 것

한 사람이 나에게 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있다. 단순하게 한 사람이 오는 게 아니라 그의 생애 전체가 나에게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실감했다.

꽉 막히고 닫힌 사고 방식을 가진 한국의 직장 상사들을 봐 오다가,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 친구들의 신선하고 열린 사고 방식에 매료되었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왜 중요하다고 하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외국 문화권의 사람들과 있을 때 내 가치관이 더 깊고 넓어지는 걸 느꼈다. 그들과 대화할 때 더 행복했고, 삶의 의미를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이 통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인이라고 하여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하여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의 친구를 사귄다는 건 확실히 장점이 더 많다. 그리고 바디 랭귀지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여 대화할 때 더욱 깊은 교감이 가능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욕구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외국어, 그중에서도 영어를 익혀라. 가장 돈이 적게 들면서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태그:#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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