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 라이

▲ 라이 라이 ⓒ 라이


<뷰티풀 라이>(2015)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이슈로 떠오른 난민을 소재로 한 영화다. 비록 감성적으로 미화를 많이 하고 있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영화는 난민의 삶 못지않게, 이들을 '받아들이는 자'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야기를 담으려 해 주목된다.

줄거리는 크게 세 갈래로 구분된다. 첫째, 남수단에서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생사를 오가는 피난길에서 살아남아 케냐의 난민캠프에 도착하지만 10여년의 시간을 희망도 절망도 없이 보낸다. 둘째, 이들 중 선택을 받은 극히 일부가 마치 로또에 당첨된 듯 꿈에 그리던 미국 사회로 유입되지만 여전히 그들은 '이방인'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영화는 그들과 접촉한 뒤 변화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는 이들 중 한 명이 케냐의 난민캠프에 남겨진 형제를 찾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의 핵심은 바로 두 번째 부분에 담겨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잃고, 치타의 사냥물을 빼앗아 연명하면서 난민 캠프에 도착한 뒤 생존만을 위한 삶을 이어나간다. 주변에는 굶어죽은 시신과 묘비 없는 묘지가 즐비하다. 하지만 여기에 쉽사리 몰입되지 않는다. 마치 외신 뉴스나 한 구호 단체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이보다는 한 시사프로그램이 최근 성남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길고양이 사체를 모자이크 처리해서 내보낸 영상이 나에겐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윤리적 공감도, 시간과 공간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네 명의 아이들은 마침내 미국 땅에 도착한다. 이들을 맞이하는 난민 지원 기관의 공무원과 지원 센터의 직원들은 사무적인 일처리에 몰두한다. 사실 영화는 기독교적 정서를 곳곳에 담고 있다. 아이들은 피난길에서도 손에 든 성경을 놓지 않고, 케냐의 난민 캠프에서도 기도를 잊지 않는다. 예배당에 선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힐 수도 있다는 기세지만, 정작 난민과는 단 한 순간도 같은 방에서 지내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게 난민들은 공적인 업무 처리 대상일 뿐이다. 취업을 도와줘 고맙다며, 오렌지를 사 가지고 간 한 난민 출신 아이는 '미리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내쫓긴다.

영화에서 미국인과 수단의 난민은 타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난민의 취업을 돕는 여직원에게 아프리카는 모두 하나일 뿐이다. 국가 정책에 따라 수용된 '아프리카 나라' 출신들 말이다. 한국인이나 일본이나, 그들에겐 그저 동양인이다. 이는 남수단 난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각각 제 나름의 성의를 표시한다. 난민들은 미국사회 첫 가이드인 여직원에게 최대한의 존경을 표시한다. '혼자 사냥하지 말고 당신도 훌륭한 남편을 만나 부족한 삶을 채우라'는 '건방진' 작별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을 수용하는 센터의 직원은 치타의 사냥물을 훔치던 아이들에게 손수 만든 세련된 푸딩을 선물한다. 물론 아이들은 이것이 음식인지, 치타의 배설물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한 난민의 손목에 난 문신 같은 거친 상처가, 동생을 삼킨 사자의 이빨 자국이라는 말이, 미국청년에게는 '유머'가 된다.

미국 사회에도 소외계층은 존재한다.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젊은 난민은 유통기간이 지나 버리는 쓰레기통을 기웃대는 한 늙은 백인 여성에게 가장 최근에 버린 신선한 제품을 권한다. 그리고 난민과 미국인의 공감대는 가족에서 출발한다. 지식 없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민들에게는 케냐에서 실종된 형이 있고 미국에 도착하면서, 법에 따라 강제로 다른 주에 강제 분리된 여동생이 있다. 미국 여성에게는 암으로 죽은 자매가 있다. 수평선이 비로소 교차점을 찾아가는 지점을 영화는 이렇게 설정한다.

영화에서 <뷰티풀 라이>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난민 아이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배우게 되는 거짓말의 과정 정도로 볼 수 있다. 진심 없이 미소를 짓는 법, 그리고 평생 해 보지 못한 주방 일에 대해 능숙하다고 말하는 것이 면접 기술이 된다. 그런데 미국 사회가 베푼 시혜 속에서도 아이들은 수단의 하늘과 배고픈 석양을 그리워한다. 또 다른 의미는 '뷰티풀한 거짓말'이다. 영화에서는 9.11테러 이후, 전세계인에게 보여주던 '뷰티풀한 정책'이 중단된다. 케냐 난민 캠프의 미국 비행은 중단된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

우리 속담이다. 아마 사람간 소통이 가장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거둔다'라는 말에 모순이 있다. 일방적인 시혜의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소작농을 다루는 지주의 그림자가 은연중 녹아 있다. '나는 너와 살면서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이 모두 베풀었다'는 권위 의식이다. '내가 너를 거두니, 너는 나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일방 통행이 엿보인다. 그런데 1950년대에는 우리도 난민이었다. 영화 <뷰티풀 라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많이 해야하는 '거짓말'에 대한 난민과 미국 사회의 고민을 담고 있다.

뷰티풀 라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