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공부한 최초 시리아 유학생 압둘 와합. 그를 통해 '아랍 영화제'를 알게 되었다. 시리아 전쟁으로 다마스쿠스에 고립된 가족을 담아낸 영화 <시리아에서>(2017)를 함께 봤다. 영화관에 들어오기 전에는 시리아에서 벌어진 전쟁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했다. 하지만 총성이 오가는 보통의 전쟁 영화와는 다르게 시작부터 끝까지 수류탄 같은 질문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지금 우리는 부엌에 숨어있고, 이 공간 문 바로 바깥에는 총을 든 남자 2명과 한 여인, 그 여인의 아기가 있다. 남자들은 아기를 해치려 한다. 그녀는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남자들은 역겨운 미소를 지으며 여인을 성폭행한다. 여인은 울부짖는다. 문 안에 있는 우리는 인원수는 더 많지만 총은 없다. 문을 열면 우리 중 누군가가 다칠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묵직하고도 끊임없는 물음은 한낱 개미만큼도 안 되는 존재의 초라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진정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으며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은 감히 떠올릴 수도 없었다. 아기 엄마의 이웃이자 남편이 함께 없는 이 상황에서 가장의 역할을 맡은 여자 주인공, 히암 압바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 <레몬트리>에서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뒤얽힌 감정들을 눈으로 나타내며 나의 선택이 곧 영화속 그녀의 선택이 될 것처럼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국제구호단체 '개척자들'의 리더 송강호, 촬영감독이자 세계여행 에세이집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싶다>의 저자 로드리고. 영화를 함께 본 우리는 자리를 옮겨서 자연스럽게 영화 얘기를 이어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숨을 못 쉴 정도. 집중이 굉장히 잘되는 영화였다. 주인공의 눈동자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빨려들게 했다. 연기가 압도적이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크게 공감하며 보았다."(송강호)

남편을 기다리는 아기 엄마와 아기 영화 <시리아에서> 스틸 컷. 로드리고는 감독이 왜 아기 엄마의 방을 파란색으로 꾸미고, 입은 옷도 다 파란색이었는지. 왜 유독 파란색에 집착하는지 궁금해했다.

▲ 남편을 기다리는 아기 엄마와 아기 영화 <시리아에서> 스틸 컷. 로드리고는 감독이 왜 아기 엄마의 방을 파란색으로 꾸미고, 입은 옷도 다 파란색이었는지. 왜 유독 파란색에 집착하는지 궁금해했다. ⓒ Altitude 100 Production


긴장감은 집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일 때 더 높았다. 하루의 고비를 넘어가는 모습이 저릿했다. 전화연결을 할 때마다 끊어져서 너무 불안했다. 가족 간의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집안의 내력이 보였다. 시리아의 연애 생활도 볼 수 있었는데 남녀 관계가 굉장히 보수적일 거라는 아랍 세계에 대한 편견을 달리 생각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 그곳이 곧 지옥이라고. 영화를 보고 나오니 지옥을 다녀온 것 같다.

로드리고는 영화적으로 너무 완성도가 좋은 영화이고, 호평을 할 점도 굉장히 많지만 다른 분들이 좋게 봤다고 하니 좀 다른 면을 얘기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일반적인 전쟁의 공포를 주는 영화였다. 안타깝게도 영화 안에서는 시리아 배경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인간 본연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서양 사람의 판타지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로드리고)

감독이 벨기에 사람이다. 서양인들의 기준에서 '아랍은 이럴 거야'(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체적인 정서가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춘 것 같다. 시리아를 사용하는 느낌이 들어서 불편했다. 꼭 제목에 시리아가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감독의 세계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고?'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못 읽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민감한 소재를 사용한 것에 비해 무책임한 느낌을 받았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사용하는 느낌. 바깥에서 구경하는 우리들의 포지션은 무엇일까? 영화를 다 보고나서 우리는 편하게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마침 우리는 쌀국수를 먹으며 점심해결을 하고 있었음). 이것 또한 굉장히 불편한거다.

아기 엄마의 방 벽에 걸린 우주 그림에서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인의 심리를 반영한 감독의 의도가 보였으나 의상이나 방 벽지 색 모두 파란색이었는데…. 왜 감독은 파란색에 집착하는 것일까.

"세계관이 있는 영화가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반대로 나는 세계관이 안 읽혀서 편하게 봤다. 끌려가는 일상 단면을 냉정하게 잘라서 그대로 보여주는 것. 주인공과 남편의 전화가 끊겼을 때 '이후 어떻게 됐을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됐다. 전쟁 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하루에 관객인 우리를 끌어들였다고 생각했다."(송강호)

문 안에 있는 사람들 영화 <시리아에서> 스틸 컷. 지금은 부엌에 함께 있지만 나중에 아기와 아기 엄마는 문 밖에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 문 안에 있는 사람들 영화 <시리아에서> 스틸 컷. 지금은 부엌에 함께 있지만 나중에 아기와 아기 엄마는 문 밖에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 Altitude 100 Production


나는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면서 적이 있으면 정의의 사도가 나타나 통괘한 복수를 해주기를, '어떻게 저 강간범을 죽일까?' 이런 식의 영상에 길들여진 천박한 기대심, 정의로운 심판자 부재에 대한 허탈감이 생긴다.

지금 우리는 세계 뉴스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전쟁과 난민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있다. 모르지 않다. 내 집 바로 문 밖의 일처럼 크게 들리지 않고 내 이웃들이 떠들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덜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내 일로 닥치지 않아도 함께 아파했다.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며 가슴 졸였고, 구조하지 못하는 나날 속에서 피 말라했고, 국가의 무책임에 분개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던 남의 자식의 죽음 앞에 울었고, 유가족들을 지지했다. 그렇게 배웠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공유해본 집단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 배움을 조금만 더 확장할 수 없을까. 비행기를 타면 불과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나라들에서 영화 속 문 밖의 여인과 같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다. 침몰하고 있다. 옆방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원룸처럼, 우리는 분단된 나라에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나라에 살아서 더 불안한건지도 모른다. 총을 든 사람들을 피해 문을 열고 먼저 들어왔다.

한번은 로드리고에게 3년간의 세계여행 중 가장 좋았던 나라는 어디였는지 물었다. "꼭 한 나라만 고르자면 '시리아'였어요. 전쟁 전 시리아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죠." 시리아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건물은 무너지고, 아이들은 울고 있는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지구 반대편 한 여행객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었다.

덧붙이는 글 시리아 난민 지원을 위한 철인3종경기 관련 기사 http://omn.kr/rrt6
아랍영화제 시리아 개척자들 레몬 트리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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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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