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인포스터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인포스터

▲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인포스터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인포스터 ⓒ 판시네마(주)


01.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했던 <셰이프 오브 워터>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다음으로 주목 받은 사람이 있었다. 프랑스 출신의 자비에 르그랑 감독. 그는 양육권이라는 의미를 가진 < Custody >(국내 개봉명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작품으로 감독상에 해당되는 은사자상과 신인 감독상에 해당하는 미래 사자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의 장편 연출 두 번째 작품 만에 거둔 의미 있는 수상이었다.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마더!>, <다운사이징>, <서버비콘> 등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함께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하면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소위 작은 영화로 불릴 법했다. 비슷한 처지의 사무엘 마오즈 감독의 <폭스트롯> 역시 강력한 경쟁자였으니 이 작품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02.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혼한 부모의 양육권 다툼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버린 한 아이와 그들을 지켜줄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서는 아빠를 거부하려는 의사가 명확한 데도 아이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부모의 상황과 처지, 법률적 근거에 의해 아이의 처분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심리와 아이가 겪을 수밖에 없는 폭력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법률이 정한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엄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가정 폭력에 내몰린 피해자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영화는 자신의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소년 줄리앙(토마 지오리아 역)의 부모가 양육권 공판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엄마인 미리암(레아 드루케 역) 측은 남편이 딸을 폭행한 사실을 근거로 그에게 양육권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아빠인 앙투안(드니 메노셰 역)은 스스로가 자식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온 사실과 사회적 평판이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양육권을 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줄리앙은 자신의 부모가 이혼해 더 이상 그 사람과 함께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행복하며, 실제로 그 사람이 엄마를 괴롭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 판시네마(주)


03.

이 공판만 두고 보자면, 상충하는 각자의 입장이 뚜렷하게 부딪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아빠인 앙투안을 가정 폭력을 일삼는 인물로 설정한 뒤에 나머지 가족들이 겪게 되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 등을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표현해 나간다. 막다른 상황에 놓인 앙투안의 분노가 커질수록 아들인 줄리앙에게 가해지는 폭력 또한 커져가고, 마치 관객들이 그 상황에 놓인 것처럼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극 중 아버지의 비뚤어진 모습을 그리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단순히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만든 이로 그리는 게 아니라, 양육권 공판에서 말한 사실과 그의 실체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자신의 가정뿐만이 아니라 부모에게까지 드러내는 폭력성과 유약한 아이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치밀함. 그리고 어떻게든 가족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탐욕에서 비롯된 거짓 감정까지.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어진 그가 본색을 드러내는 마지막 시퀀스에서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다.

04.

이 작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폭력의 대상은 아이인 줄리앙이다. 영화가 그를 폭력의 주요 피해자로 삼는 것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가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의미로 보인다. 마치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줄리앙이 폭력을 겪음으로써 부정적인 일들이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엄마는 줄리앙을 남편의 곁으로 보내는 것만으로도 미안함과 죄책감, 불안감에 휩싸인다. 또한 이런 상황이 이제 18살이 되어 양육권의 범위를 곧 벗어나게 되는 누나 조세핀(마틸드 오느뵈 역)에게도 여전히 끊어지지 않은 연결 고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용이하다는 점 또한 줄리앙이 폭력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원인이다. 끊어낼 수 없는 혈연 관계는 물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수직적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약자의 위치에 놓이고, 이 구조는 줄리앙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그가 11살 소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사 간 집을 말하라'며 윽박지르는 아빠에게 엄마가 위태로운 거짓말로 잘못된 집을 알려주고 차에서 뛰어내려 도망까지 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항해 보지만 끝내 그가 버텨낼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누나의 생일 파티장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던 줄리앙의 모습을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아빠라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가해지는 두려움의 정도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 판시네마(주)


05.

앙투안의 폭력은 단순히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온 구성원을 옭아매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엄마의 무력함은 과거 지속되어 온 폭력에 대한 잔상과 지금 당장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것이 함께 뒤섞여 발현된다. 줄리앙을 협박한 남편이 결국 집을 찾아냈을 때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그녀의 모습은 분명 어린 아들이 보여주었던 두려움 이상의 것이었다. 이미 과거에 학습된 폭력의 발현이다. 줄리앙이 엄마가 시키지도 않은 거짓말까지 해가며 아빠를 속이려고 한 것 역시 이미 영화 속 시점보다 더 먼 과거에서 봐왔던 폭력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적인 장면 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양육권 공판을 통해 줄리앙의 누나 마틸다도 폭력의 피해자였음이 드러난다. 마틸다 역시 앙투안의 폭력이 만들어낸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하고 울음을 참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다 아빠가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불안을 지우지 못하던 모습. 자신은 곧 성인이 되어 양육권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폭력은 쉽게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06.

세 사람의 모습으로부터 공통적으로 암시되는 것은 외부로부터 한번 시작된 폭력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된 폭력은 그 순간 대상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마음 속 깊은 곳에 웅크린 채 다시 뛰쳐나올 순간만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때가 되면 직접적인 폭력이 없이도, 유사한 상황의 경험만으로도 이번에는 안에서부터 처절하게 괴롭힐 수 있도록.

한번 시작된 폭력은 그렇게 쉽게 멈추는 게 아니다. 가해자가 진심 어린 반성을 한다고 해서, 수백 번의 사과를 건네온다고 해서,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피해자가 된 이의 길고 긴 고통 속에서 그 폭력의 뿌리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끝나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 또한 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다.

07.

그 흔한 OST도 없이 조용히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의 무게는 영화의 여운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잠시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관객이 그 상황에 놓여 있다가 구조된 이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안도감으로 인한 피로감과 같은 감정.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 전 자신이 마주한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반발적 심리가 함께 느껴진다.

이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관에서 직접 마주하는 이 작품의 무게는 훨씬 더 무겁다. 한 편으로는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를 떠올리게 한다. 어른들의 일 속에서 아이의 마음과 같은 것은 뒷전이 되어버리는 상황 말이다. 물론 이 글에서도 영화에서도 피해자는 아이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지만 아이에 대한 시선으로만 제한한다면 말이다.

밝게 느껴지던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마지막 모습과는 달리 무니의 모습이 그리 희망적으로 느껴지지는 못했듯이 줄리앙의 미래 역시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밝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참고 견뎌내는 일, 아이들의 시간에서만큼은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 그 누구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영화 무비 아직끝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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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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