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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끝난 6.13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냥 치러지는 선거는 없다. <오마이뉴스>는 이정우 더좋은자치연구소 연구실장과 함께 광주전남지역 화제의 당선자를 만나보았다. 이 실장은 kbc광주방송 ‘시사터치 따따부따’에서 깊이 있는 시사비평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정우가 만난 세번째 당선자는 이보라미 전남도의원과 김기천 영암군의원이다. [편집자말]
영암군 학산면 김기천 선거사무소 앞에서
 영암군 학산면 김기천 선거사무소 앞에서
ⓒ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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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제2선거구(학산면·미암면·서호면·군서면·삼호읍) 유권자들은 정의당의 이보라미 후보를 도의원으로 선택했다. 간단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특별하다. 이 의원은, 정의당 소속으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역지역구 당선자이다.

사실상 같은 지역구(삼호읍 제외, 영암군 다 선거구)에서 정의당 소속 김기천 후보도 기초의원으로 당선됐다. 기초의원 2인을 뽑은 선거구인데 3위와 15표 차로 신승했다. 이보라미 의원도 133표(0.77%)를 더 얻어 어렵게 승리했다.

"우리가 했던 많은 노력 중에서 하나만 빠뜨렸어도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가진 게 몸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실제로도 그렇구요, 정말 죽어라 뛰어 다녔습니다."(김기천)

이보라미 의원과 김기천 의원은 스스로를 '우리'라고 표현했다. 둘은 '러닝메이트'처럼 함께 선거운동을 했다. 이 의원만의 지역구인 삼호읍을 제외하고는 항상 같이 다녔다. 김 후보는 지역구 내 자연마을 120곳을 모두 다섯 번씩 찾아 다녔다. 김 후보의 부모님이 또 세 번씩 찾아 갔다. 이 길의 팔할 이상을 이 후보가 함께 했다. 당선되고 나서도 둘은 함께 120곳을 모두 찾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의원님 도움이 컸습니다. 이보라미 의원이 했던 것처럼 저도 잘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지역민들이 무슨 말인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믿어 주었습니다. 4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도 (이 의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신뢰가 컸습니다."(김기천)

이 의원은 같은 지역구 재선(2006·2010, 민주노동당) 기초의원으로 8년 동안 일했다. 그 후 2014년에 정의당 옷을 입고 도의원에 출마했는데 낙마했다. 4년의 공백기를 거쳐 두 번째 도전에서 당선된 것이다.

"제가 도움을 더 많이 받았죠. 저는 영암에 연고가 전혀 없어요. 김 의원은 이곳 출신에 중학교까지 마치고 객지 공부 갔다가 9년 전에 귀농을 했습니다. 지역민들과 정서적인 유대에서 아주 탁월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이보라미)

초선 영암군의원, 전국 최초로 친환경무상급식 조례 제정

이보라미 전남도의원
 이보라미 전남도의원
ⓒ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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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은 실향민의 딸로 서울에서 자라 대학까지 마쳤다. 대학 졸업 후 인천의 한라중공업 설계 분야 사무직으로 입사했고, 입사 후 2년차 즈음 일어난 파업에 참여하면서 노동조합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회사가 대불산단으로 이전하면서 '회사원 이보라미씨'도 영암으로 이사 와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지역정치에 뜻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노동자들과 돌쇠봉사회를 결성해 한 달에 한 번씩 마을을 찾아 다녔습니다. 농기구 수리도 하고, 칼도 갈아 드리고, 저는 주로 어르신들 머리 염색을 해드리는, 그런 지역활동을 해 오다 지역민들의 실제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출마했습니다."

초선 영암군의원 시절 이 의원은 전국 최초로 친환경무상급식 조례를 제정했다. 단계별 실시가 아닌, 유치원·어린이집부터 초중고교까지 한꺼번에 실시하는 내용이었다. 주민운동본부를 꾸려 4천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관철시켰다.

재선 군의원 때는 영암군이 추진했던 '산수뮤지컬'을 막았다. 월출산 아래 저수지 중심에 무대를 만들어 뮤지컬 공연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농업예산과 복지예산을 줄이면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사업이었다. 토지수용 과정의 위법성이 드러났고, 성공여부도 불투명했다. 전남도에 주민감사청구를 냈다. 감사 결과 투융자심사의 문제점, 지방재정법 위반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산수뮤지컬' 추진계획은 무산됐다.

"의원이 열심히 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의 공감을 얻고 그 분들과 함께 하는 게 더 중요할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추진하든지 주민참여의 틀을 세우고 함께 해 왔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구요."(이보라미)

"(이 의원은) 경청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길을 가다가 주민들이 붙잡고 이야기하면 그 분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미련스럽게 다 듣고 공감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특히 어머니들께서 마음을 크게 주신 것 같아요. 삼호에서 이 의원은 의원이 아니라 '삼호의 딸'입니다. 그냥 딸이죠."(김기천)

주민들이 보이지 않아도 마이크 잡고 유세를 했다. 방안에서 뒤뜰에서 산자락 어느 밭에서 모두 듣고 있었다. 모내기 하는 논으로 걸어 들어가 손을 잡았다. 밭의 잡초를 함께 뽑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전 6시 즈음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장소에서 인사했다. 하루 일이 끝나는 해질녘이면 골목과 논둑을 돌아다니며 마무리 인사를 했다. 어두운 저녘이면 음식접과 술집, 상가집을 찾아 다녔다. 주말이면 성당과 교회를 쫓아다니면서 또 인사를 했다. 둘이 함께 그렇게 뛰었다. 질려버린 경쟁후보들이 하소연 반, 항의 반의 푸념소리를 내질렀다. "어이~ 이 의원님, 참말로 엥간히 좀 합시다", "아야 기천아, 일요일에는 좀 쉬자, 쪼옴~"

심상정 의원의 지원유세
 심상정 의원의 지원유세
ⓒ 이보라미 선거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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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도 당력을 총동원해 지원했다. 심상정, 노회찬, 윤소하 의원이 번갈아 가면서 영암으로 달려와 도왔다. 강기갑 전 의원까지 출동했다. 심상정 의원이 학산면 5일장을 찾았을 때는 인근 교통이 마비됐다. 영암 전체가 들썩거렸다. 조금씩 조금씩 여론의 향배가 정의당의 '러닝메이트 팀'으로 옮겨 오는 게 느껴졌다. 지역 유권자들은 둘을 선택할 이유를, 누구도 아닌 그 둘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 하도 열심히 하니까 고맙고 짠해서…", "지난번에 내가 (이보라미 의원을) 못 찍어줘서 마음이 하도 미안항게…", "둘 다 아조 젊었을 때 참 열심히 살았드만…", "돈도 없는 것 같은디, 거 머냐, 선거비라도 돌려받게 해줄라고…"

"애쓰고 노력해야 표 무서운 줄 압니다"

둘은 승리를 예감했고, 마침내 승리했다. 하지만 살 떨리는 박빙이었다. 김 의원의 경우 재검표까지 하고 나서야 당선을 확정지었다. 이겼더라도 갈 길이 결코 만만치 않은 셈이다.

김기천 영암 군의원
 김기천 영암 군의원
ⓒ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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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고 노력해야 표 무서운 줄 압니다. 표 무서운 줄 알아야 의정활동 더 열심히 합니다. 쉽게 얻으면 일 잘할 수 없습니다. 후보들은 마땅히 더 힘든 선거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뛰었습니다."(김기천)

"우리 김 의원님이 유세를 하도 잘해서 마니아들까지 생겼어요. 유세 하려고 하면 여기저기서 모여들고, 할 줄 알았는데 안하면 왜 안하냐고 따지기도 하고 그랬죠. (그래봤자 시골에서 사람이 몇 명이나 모인다고 ㅎㅎ…(김기천)"(이보라미)

"어렵게 얻은 성과지만 꿈은 더 크게 갖고 있습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유리 지역구뿐 아니라, 우리가 거점 역할을 해서 영암의 다른 곳까지 정의당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요. 그만큼 우리가 도의원, 군의원 일을 아주 잘해야 하는데, 잘 할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이보라미, 김기천)

이 의원은 1987년에 서울 소재 대학교 1학년이었다. 입학하자마자 날마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 살았다. 풍물패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학생운동에 뛰어 들었다. 같은 시기 김 의원은 광주 소재 대학교 2학년이었고, 마찬가지로 최루탄 연기 속에서 살았다. 김 의원은 젊은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차례 걸쳐 3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2018년 현재 이 의원은 삼호중공업 휴직 상태로 지방의원 업무를 수행 중이다. 김 의원은 9년 전 고향으로 와 농민으로 살고 있다. 둘은 정의당 의원이면서 스스로가 노동자이고 농민인 지방의원이다.

"축하문자, 축하말로 가장 많이 들은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주세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주세요, 이런 것이었습니다. 집권여당 강세에도 5번을 선택해주신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탬을 주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만들어달라는 바람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대불공단에 비정규직이 너무 많습니다. 이 분들의 건강, 산재문제에 도움이 되는 의정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교육 때문에 전남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은데 당장에는 고교무상교육과 아침급식을 추진해 보고 싶습니다."(이보라미)


"초보 의원으로서 초심 잃지 않고 해 보고 싶은 일이 세 가지입니다. 이른바 의원사업비를 없애고, 외유성 해외연수도 막고, 의장과 부의장의 업무추진비 상세내역 공개해 의회다운 의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로는 영암농산물자급센터를 설치해서 아이들 급식, 마을단위 급식, 지역에 상주하는 기업, 군부대, 공공기관에 영암 농산물이 올라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지역 농민들은 자신들이 만든 농산물이 지역 밥상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제일로 마음 아픕니다. 그런 일 없도록 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는 작은학교, 마을회관, 골목, 상가, 이런 곳에서 생긴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의원들의 고민거리가 되고 의정의 목적이 되는, 골목까지 따뜻한 생활정치, 지역정치를 해보고 싶습니다. 현재 영암 군의원 8명중 4명 이 민주당, 3명이 민주평화당이고, 1명 정의당입니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만큼 분명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하하~"(김기천)

이보라미 의원 당선의 특별한 의미가 정의당 광역지역구 '전국 유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당선은 오랜 세월 쌓인 신뢰, 경쟁 후보를 압도하는 부지런함의 결과였다. 혼자만이 아니라 둘이, 선거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함께 뛰어 어렵게 틔운 새싹이 그들의 승리이다. 앞으로 4년, 그들이 수확할 열매가 굵고 영양가 높을 것이라는 확신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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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의당, #이보라미, #김기천,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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