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메인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메인포스터

▲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메인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메인포스터 ⓒ 씨네룩스


01.

하나의 직업이나 수식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분야에 걸쳐 재능을 발휘하는 이들은 물론, 하나의 분야에서도 다양한 계열에 독보적인 족적을 남길 만한 성과를 거둔 이들. 여기에는 선천적인 재능의 여부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고 있는지가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인물은 조금 특별하다. 음악이라는 영역에 제한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음악이 존재하는 모든 영역에 있어 누구도 선뜻 따라하기 힘들 정도의 업적들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02.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는 그런 그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이 그의 음악적 재능과 업적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약간의 괴리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서 설명한대로, 이 작품은 그의 삶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이 음악과 다르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한 개인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기에, 작품이 지향하는 바와 감독의 의도에 따라 어떤 부분이 중심이 되어 표현되느냐는 충분히 달라질 수가 있다는 뜻이다.

처음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때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반핵을 지지하는 반핵활동가이자 환경 문제에 관심을 쏟는 환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원전사고로 폐허가 된 후쿠시마 일대를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이 카메라 속에 담기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No Nukes' 운동과 동시에 아베 정권의 전쟁법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으며, 다양한 환경 보호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 씨네룩스


03.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촬영이 계속되던 지난 2014년, 류이치 사카모토가 갑작스레 인후암 3기 판정을 받으면서 원래의 제작 방향이 완전히 수정된다.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이 작품의 대상이자 중심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문제다. 자신이 겪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암 투병을 하는 동안 그가 음악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버렸고, 냉정하게 말해 얼마나 더 음악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정적으로 그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모든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요청으로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활동을 재개하기 전까지 1년여의 시간 동안.

04.

이 작품이 가장 밀접하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삶의 위기 속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어떤 변화를 느꼈고, 또 자신의 음악 속에 담아내고자 했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었던 악기가 내는 소리와 전자 음악의 협업을 과감히 내려놓고,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리와 음을 구성할 수 있는 소리의 근원적이고 가장 순수한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이를 위해 다소 파격적이고 난해한 시도들도 결코 멈추지 않는 모습. 류이치 사카모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에둘러 가는 법이 없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는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클래식만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대학 교육에 반발하며 류이치 사카모토가 어린 시절 YMO라는 그룹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아카데미에서 동양인 최초로 음악상을 수상하게 해 준 <마지막 황제>의 곡을 맡았을 때는 일주일 만에 40여 곡을 완성해 보이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 씨네룩스


05.

물론 앞서 이야기한대로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신의 직업적인 뿌리부터 음악과 함께한 인물이기에 그의 발자국을 따라온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음악적 요소에 빠져들게 될 법한 부분들도 있다. 특히, 초반부에 나오는 'Merry Christmas Mr.Lawrence'라는 곡의 연주 장면은 숨을 멈추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다. 반전 집회를 위해 마련된 장소에서 연주를 하는 장면이다. 무대 위로 등장한 그가 날씨가 춥다면서 그럴 경우 편하게 뛰어다니며 감상해도 된다고 하는데, 음악이 연주되고 난 뒤에 움직이는 관객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음악 하나로 그 공간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그의 모습은 순수하다 못해 영적으로 보일 정도다.

짧게 등장하는 부분이지만, 그가 참여했던 다양한 작품들이 흘러가는 장면 역시 그의 음악이 등장했던 작품들을 사랑해왔던 이들에게는 또 다른 선물이 될 수 있다. 최근의 작품들인 <남한산성>,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투병 이후 완성한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그 이전의 작품들 사이에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음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06.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가 8년 만에 선보이는 신보 < ASYNC >에 대한 이야기도 일부 담겨있다. 이 부분으로 인해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의 의도가 곡해될 여지가 있지만, 그의 일생에 있어 < ASYNC >라는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이번 앨범이 8년 만에 나온 앨범임을 고려하면, 다음 앨범은 또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앞으로 얼마인지도 이제는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쩌면 이번 앨범이 마침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의 타이틀 말미에 있는 'CODA'는 그런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꼬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된, 악곡 혹은 악장 끝에서 만족스러운 종결을 선사하는 부분.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 스틸컷 ⓒ 씨네룩스


07.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는 이미 많은 수식어로 불린다. 작곡가이자 음악감독, 반핵활동가이자 환경운동가, 아시아의 거장이자 아카데미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최초의 동양인. 골든 글로브 상과 그래미 상을 함께 수상한 인물. 그리고 이제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암 투병이라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복귀한 그는 현재 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 속 류이치 사카모토는 실망한 듯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한다.

"건강이 나빠지고 난 뒤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일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미 두 손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그는 열정적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 뒤에 남을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정 그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달 개봉을 앞둔 <류이치 사카모토 : 에이싱크>라는 타이틀의 앨범 발매 기념 공연 실황 작품과 10월까지 관람이 가능한 < 류이치 사카모토 : Life Life > 전시가 이 작품과 더불어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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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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