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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군인인 삼촌이 7살 조카의 버릇을 고친다며 2시간 가까이 때려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올해 초에는 8개월 된 아이를 엄마가 때리고 방치해 숨졌으며, 2월에는 아버지가 부부 싸움 끝에 생후 10개월 아이를 던지고 밟아 숨지기도 했다. 이러한 살인 행위가 부모 또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아동학대는 성인 간의 폭력과는 다르다. 약한 아이와 강한 양육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그 끝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시달리고, 죽어간다. '이상한 정상 가족'에 나오는 통계를 살펴보자.

'2016년 출생아 수는 인구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안 302명의 갓난아기가 길바닥과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 같은 기간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334명, 거의 하루 한 명꼴로 아이를 버리고 해외로 보낸 셈이다. 영유아에 국한하지 않고 18세 미만의 아이들로 시야를 넓혀보면 부모에게 버림받아 시설, 위탁가정 등으로 간 아이들은 4,503명, 하루 평균 12명 이상이었다. 같은 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아이는 한 달 평균 세 명꼴이었고,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경우는 하루 평균 51건이었다. 아동학대의 80% 이상은 집에서 일어났다. 한편, 같은 기간 사교육비 지출은 역대 최고를 찍었다. (중략)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삶의 질 종합지수'에서 지난해(2016년) 10년 전보다 후퇴한 유일한 항목은 '가족·공동체' 영역이었다...' - p.8

<이상한 정상 가족>의 작가 김희경은 2010년부터 6년간 국제구호개발단체인 '세이브 더 칠드런'의 권리옹호부에서 아동인권 형성을 위해 일하는 중 아이들의 수난사를 지켜보았다. 아이들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학대에서 해외입양, 과도한 사교육, 이주아동에 이르기까지 아동인권 침해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았다. 작가를 통해 알게 된 우리 사회는 생각 이상으로 폭력적이고 학대와 편견은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내 것인 너를 위한 친밀한 폭력, 체벌

이상한 정상가족
 이상한 정상가족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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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육과 체벌 그리고 학대. 이들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우리는 대부분 어릴 적 부모나 교사에게 맞아본 경험이 있다. 거짓말을 하거나 쪽지 시험에서 많이 틀렸거나 떠들어도 맞았다. 맞고 싶지 않았지만 때리니 맞아야 했다. 나쁘다는 생각 없이 때리고 맞았다. 첫 아이가 4살 무렵, 버릇을 잡아야 한다는 주변의 말에 그 여린 손바닥을 매로 때리기도 했다.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작가는 말한다. 수많은 경험적 연구는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고 되레 폭력의 내면화를 통해 뒤틀린 인성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체벌은 부모가 애초 아이를 체벌할 때 의도했던 목표의 달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 26p


어떤 경우에 체벌과 학대가 발생할까? 과보호와 방임, 두 경우에 모두 일어난다. 둘 다 아이를 독립적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소유물로 바라본다. 과보호의 상황에선 부모의 과잉교육열과 지나친 간섭이 정서적, 신체적 학대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방임의 경우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치하다가 툭하면 스트레스와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적당한 거리와 존중을 유지하지 못해 두 극단이 생겨나는 것이다.

책은 해답을 제시한다. 끔찍한 학대와 훈육 목적의 체벌은 밀접한 관계라 국가가 체벌을 금지하면 학대도 줄어든다고. 스웨덴은 1979년 세계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법으로 금지했고, 핀란드는 1983년 부모를 포함한 모든 이의 완전 체벌금지 원칙을 실현했다. 아이들도 성인들과 똑같은 정도로 모든 종류의 폭력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하려면 우리 역시 가정 내 체벌금지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 간의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는 이유가 무엇이든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보호와 교양 목적의 징계'라는 말로, 상대에게 의도적인 해를 끼쳐도 된다고 법이 허용하는 유일한 대상이 아이들이다. 아이도 한 개인으로서 자율적 존재이고 어른처럼 생명과 신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이를 법의 언어로 반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 56p.


자녀 살해 후 부모 자살

신문 기사에 종종 '일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작가는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힘없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선택권이 있었을까? 우리 사회는 가족을 운명 공동체로 바라보는 강박이 있단다.

내 아이들의 인생이 따로 있다고 바라보는 인식이 희박하여 자신과 자녀의 자아를 분리하지 못하고 부모가 세상을 버릴 때 데리고 갈 정도의 처분이 가능한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생을 끝낼 때 자녀를 거두는 것이 끝까지 책임을 지는 부모의 태도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며 '선 성장, 후 분배' 정책을 실시했다. 복지와 교육, 의료, 부양 등 거의 모든 사회 문제를 가족이 맡았으며 의료가 사회적 복지의 영역으로 많이 옮겨가는 현재도 양육 부양의 책임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다. 생존의 책임을 떠맡은 핵가족이 위기 상황을 마주하면 안전망이 없는 이 사회에 아이만 두고 세상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정 안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상가족이 살아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 그 자녀에게 이어지는 차별, 세상의 편견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아이를 버리는 엄마들, 2016년에도 하루에 한 명씩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 등 정상가족을 벗어난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보며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왜 우리 사회의 가족은 개별성을 존중하지 못할까? 왜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할까? 원인은 우리 사회의 발전 과정에 있었다. 그리고 해답은 다른 나라를 거울삼아 찾아낼 수 있다.

스웨덴의 중요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개인적 삶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개인 삶의 질은 집단적 책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거기에서 정부의 역할이 크다는 문화적 믿음이 강하다. - 221p.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세부적인 해결책이 궁금하다면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권한다. 단지 선거에 참여하는 것만이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여 변화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는 선진 시민의 자세를 가져야 할 때이다.


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2017)


태그:#아동학대, #체벌, #훈육, #가족, #비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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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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