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시락 이야기

18.06.22 12:3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오늘도 야근이다. 그래서 아내는 잠시 전 밥을 지었다. 그제 지은 밥이 남아있어서 그걸 싸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결사반대했다. 가뜩이나 야근도 힘든데 밥이라도 방금 지어 따듯한 걸 먹어야 된다는 논지였다.

"역시 내 마누라가 최고여~!"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밥을 새로 짓자면 전날이나 이틀 전에 지은 탓에 고두밥(아주 되게 지어져 고들고들한 밥)이 된 밥을 비닐에 싸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그리곤 야근할 적에 가지고 가서 경비실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덥혀서 먹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가 고장 나는 바람에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하여 이제는 아예 밥통에 밥을 넣고 김치까지 싸서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다.

도시락 밥통은 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녀석은 무려 20년 이상이나 우리 가족과 같이 살고 있는 셈이다. 오늘 싸 가는 도시락은 이따 밤 8시경에 먹을 것이다.

반찬이라곤 김치 한 가지뿐이지만 물이 있기에 강다짐(밥을 국이나 물 없이, 또는 반찬 없이 그냥 먹음)으로 먹는 것보다는 한결 낫다. 너무도 일찍 어머니를 잃은 탓에 엄마 젖도 충분히 먹어보지 못했다.

나를 길러주셨던 같은 동네서 혼자 사셨던 유모할머니께서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이고, 불쌍한 것~ 너는 엄마 젖을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픈 걸 못 참는 겨!" 그건 평소 배고픈 걸 못 참는 나를 보고 하신 걱정이셨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서 소풍을 갈 때면 급우들의 도시락이 자못 호화찬란했다. 엄마까지 따라 와 사이다와 초콜릿까지 먹여주는 모습을 보자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왜 나에겐 저런 엄마가 없는 것일까......'

평소 술을 자주 마신다. 술을 많이 먹는 사람들의 공통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건 안주를 잘 안 먹는다는 사실이다. 술을 더 마실 욕심에 그러는 것인데 아무튼 그러다 보니 술이 깬 이튿날엔 배가 고파서 새벽부터 눈이 떠진다.

전날 먹지 못한 밥을 소나기밥(보통 때에는 얼마 먹지 아니하다가 갑자기 많이 먹는 밥)으로 먹는 이유다. 아들은 지난봄에 결혼하였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어야 하거늘 회사에서 얼추 만날 출장으로 관계사 파견근무를 나가고 있단다. 7월 말까지 계속된대서 아들이 무척이나 피곤해한다는 건 상식이다. 새아가가 이를 걱정하는 문자를 보낸 바 있다.

그래서 "아가, 힘들겠지만 네 남편 밥 굶기지 말거라!"고 당부했다. "아버님, 염려마세요. 맛난 것 자주 해주고 있으니까요." 쥐코밥상일망정 사랑하는 마누라가 만들어 주는 밥과 반찬이 제일이다. 오늘 밤에 먹을 도시락의 쌀밥엔 아내가 찹쌀까지 섞어줬기에 더 맛있을 게 뻔하다.

덧붙이는 글 | 없음



태그:#도시락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