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로우 웨스트> 포스터.

영화 <슬로우 웨스트> 포스터. ⓒ 더 픽쳐스


1870년 미국의 콜로라도 깊숙한 곳, 16살 짜리 소년 제이(코디 스밋 맥피 분)는 애인 로즈를 찾으러 멀고 먼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로즈는 제이의 귀족 친척을 실수로 죽인 아버지와 함께 도망쳤다. 신대륙에서 제이가 처음 마주친 건 마을을 잃고 피신 중인 듯 보이는 원주민들 그리고 인디언 사냥꾼이다.

발사되지도 않는 총을 가지고 다니는 제이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 그때 나타난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인디언 사냥꾼을 죽이고는 제이에게서 돈을 받고 '서쪽'으로의 여정을 함께 한다. 미국 서부는 제이에게 희망과 착한 마음이 가득한 곳이고, 사일러스에겐 돈에 눈 먼 악당이 튀어나와 칼을 꽂는 곳이었다.

이 둘의 여정은 쉬운듯 쉽지 않다. 느긋하기 짝이 없는, 느릿느릿한 속도와 분위기이지만 가는 곳마다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마주친다. 인디언, 인디언 학살자, 현상금 사냥꾼으로 보이는 백인, 굶어 죽기 직전의 스웨덴계 가족, 학자 같아 보이는 독일계 사기꾼, 그리고 한때 사일러스가 몸 담았던 현상금 사냥꾼 패거리까지. 어려움을 뚫고 제이는 로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저 생존하는 게 목적인듯 보이는 사일러스는 어떨까.

'아름다운' 웨스턴 영화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 더 픽쳐스


영화 <슬로우 웨스트>는 독특한 웨스턴 버디 로드 영화이자 성장 영화다.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르를 한데 모은 것 자체가 충분히 독특하지만, 장르의 정통 문법에서 조금씩 빗겨나가는 재미도 있다. 영화는 파격의 길을 택했다는 측면에서도, 폭력과 고통이 상존하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택했다는 측면에서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일관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려 한다.

그건 다분히 허무맹랑하고 대책 없는 제이 덕분일 것이다. 그는 "생존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고, 총칼보다 책을 더 소중히 여긴다. 또 남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상황에서도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고, 보편적인 죽음이 일상화된 곳에서 죽음과 사랑을 동일시 한다.

실제였다면 진작 죽음을 면치 못할 게 분명한 제이는, 아름다운 동화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이 웨스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 눈에 띈다. 그리고 영화 또한 제이를 중심에 두고 제이의 여정과 그로 인한 성장을 보여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성장하는 주인공은 제이가 아닌 사일러스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일러스의 성장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 더 픽쳐스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변화가 수반된다. 생각해보면 맹목적으로 사랑과 희망에 대한 찬가를 고수하는 제이에게 성장이 필요할까? 물론 폭력과 고통이 지배하는 곳에서 가장 필요없는 것들일지 모른다. 여기서 우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백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는 총칼로 '침공'해 무차별로 빼앗고 죽였다. 미국 서부 개척은 곧 과거 수백 년 동안 자행된 학살의 반복이다. 그렇기에 사일러스는 제이와의 여정으로 당연하지만 당연해서는 안 되는 자신의 길을 수정한다. 생존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곳에서 생존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다. '당연히' 제이의 성장 스토리라고 생각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사일러스의 성장 스토리라고 생각하니 많은 것들이 보인다.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볼 필요도 있다. 총칼을 앞세운 무단 통치로 기반은 다질 수 있지만 강력한 저항이 따르는 법이다. 이후엔 필수적으로 문화 통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총칼 대신 사랑과 희망으로 서부를 개척해야 하는 것인가. 영화는 제이를 통해 그래야 했었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역사적 배경까지 섭렵해 성장 주체의 반전을 시도한 영화는, 그 때문에 새로운 논란에 휩싸일 여지도 있어 보인다.

삶과 죽음의 얇팍함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영화 <슬로우 웨스트>의 한 장면. ⓒ 더 픽쳐스


영화에서 삶과 죽음은 제이와 사일러스의 여정에 늘 함께 한다.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삶은 짧고 죽음은 길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곳에선 삶은 길고 죽음은 짧은 것 같다. 그저 살아가는 것뿐인 생존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인데, 모든 죽음이 하나 같이 허망하거니와 순간이다.

<슬로우 웨스트>의 죽음은 그래서 전혀 '슬로우'하지 않다. 빠르고 간결하며 피가 난무하는 파티가 벌어지지 않는다. 대신 두 주인공마저 웃음 짓게 하는 죽음도 있다. 그런 죽음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데, 그런 죽음들은 이곳의 선입견을 바꿔버리기에 충분하다. 죽음을 불사하는 개척정신과 문명을 확대시키려는 탐험정신의 위대함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의 얄팍함은 삶의 얄팍함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이곳에서의 삶을 규정하는 생존 또한 얄팍하기 그지없다는 걸 말한다. 얄팍한 생존을 그저 영위하기 때문에 삶이 길어보인다. 이 영화의 대리인 제이가 곳곳에 흔적을 내고 영향을 끼치고 남은 이들에게 부여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진짜 삶이다. 다시금 이곳에 삶이 뿌리내리는 건 굉장히 느릴 테지만, 반드시 이룰 것이다. 그 주체와 방법과 방향까지 영화가 제시하진 않는다. 혹은 못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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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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