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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6.20 09:03수정 2018.06.20 11:16
6월은 닭 수난기의 시작점이다. 치맥과 배달 앱 유행으로 닭 수난기가 예전만큼 계절을 타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6월부터 9월까지 가장 많은 닭을 잡는다. 본격적인 휴가철인데다, 치맥을 부르는 프로야구도 달아오른다. 불볕더위에 야간 활동도 활발해지지만, 뭐니뭐니 해도 초복·중복·말복의 '삼복' 영향이 가장 크다. 한 해 소비되는 닭의 40% 이상이 6~9월에 집중된다. 그 가운데서도 초복이 걸쳐있는 7월쯤에 정점을 찍는다.

닭의 평균 수명은 15년 가량. 우리가 먹는 닭의 수명은 길어야 한 달이다. 한 달이면 백숙용 닭 1kg짜리로 큰다. 900g 정도의 치킨용 닭은 그보다 덜 키우고, 600g 안팎의 삼계탕용 닭은 보름이면 생을 다한다. 사육 기간이 짧다보니 육질이 연하다. 육질이 연할지는 몰라도 맛이 들기 전이다. 그런 닭들을 염지해서 튀기거나, 매콤한 양념에 끓이거나, 갖은 한약재로 맛을 보충해 먹는다. 치킨·닭볶음탕·백숙 등으로 말이다.

토종닭 백숙엔 마늘 몇 쪽만 넣으면 된다

토종닭은 질겨서 푹 삶아 먹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삶아서 맛있으면 튀기거나 구울 때 더 맛있다.

토종닭은 질겨서 푹 삶아 먹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삶아서 맛있으면 튀기거나 구울 때 더 맛있다. ⓒ 김진영


토종닭은 육계보다 조금 더 산다. 우리맛닭, 한협 3호 등 개량한 토종닭은 두 달 조금 넘게 키운다. 재래 토종닭은 6개월 정도 지나야 겨우 도계(屠鷄) 중량에 도달하지만, 개량한 토종닭은 외래 육계(肉鷄)와 품종 개량을 한 덕에 사육 기간이 빨라졌다. 쫄깃한 재래 닭의 DNA를 물려받아 육질이 쫀득쫀득하다. 두 배 더 산 덕에 그나마 살과 뼈에 맛이 들어 국물이 구수하다.

육계보다 씹는 맛이 좋고 잔 냄새가 없는 토종닭 계열로 백숙을 할 때는 마늘 몇 쪽만 넣으면 된다. 맛이나 향을 더하고자 하면 엄나무나 옻 등 부재료를 취향껏 넣으면 된다. 부재료를 안 넣었다고 맛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롯이 닭 맛을 즐길 수 있다. 청리닭, 연산오계, 고센닭, 제주 재래닭, 현인닭 등이 대표적인 재래 닭으로 맛이 좋지만, 사육 기간이 길어 키우는 농가가 많지 않다.

토종닭은 질겨서 푹 삶아 먹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삶아서 맛있으면 튀기거나 구울 때 더 맛있다. 토종닭을 튀긴다고? 질겅질겅 껌 씹는 질감이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몇 해 전 서교동 중식당 진진에서 제주 재래닭으로 튀김을 한 적이 있다. 재래닭의 퍽퍽한 가슴살이나 안심이 육계 다리살보다 탄력이 더 좋았다. 씹는 맛도 있거니와, 씹히듯 하다 어느새 이빨 압력에 굴복하고 속살에 품고 있던 육즙과 구수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일본 구마모토 출장 때 인생 닭구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아마쿠사 다이호'라 불리는 토종닭으로 만들었다. 아마쿠사 다이호는 6개월 정도 지나면 무게 7~9kg, 키가 1 미터 가까이 크는 대형종이다.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살짝 소금간만 해서 구워준다. 씹는 맛, 감칠맛 어느 것 하나 뒤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우리나라 청리닭 숯불구이를 먹은 뒤로는 인생 닭구이가 바뀌었다.

오래 전부터 전남 순천·구례와 경남 하동에서는 닭을 숯불구이로 먹었다. 물론 다른 지역처럼 백숙이나 볶음탕도 있지만, 섬진강 주변에 숯불구이가 유독 많았다. 구례 옆 남원만 가더라도 닭구이를 판매하는 곳이 없다. 그러나 섬진강 줄기따라 올라가다보면 닭구이 전문점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시원한 강변 옆도 좋고,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곳도 상관없다.

토종닭 쓰는 것은 매한가지라서 양념 격인 풍광만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닭 한 마리를 주문하면 식당에 따라 다르지만 가슴살이 육회로 나오고 나머지 부위는 고기와 뼈로 분리해 나온다. 뼈는 나중에 육수를 우려내 죽을 쒀준다. 감칠맛 가득한 죽도 좋지만, 따로 밥을 시켜 먹어보면 궁합이 기가 막힌다.

올해의 복달임은 토종닭 구이로

오래 전부터 전남 순천·구례와 경남 하동에서는 닭을 숯불구이로 먹었다. 물론 다른 지역처럼 백숙이나 볶음탕도 있지만, 섬진강 주변에 숯불구이가 유독 많았다.

오래 전부터 전남 순천·구례와 경남 하동에서는 닭을 숯불구이로 먹었다. 물론 다른 지역처럼 백숙이나 볶음탕도 있지만, 섬진강 주변에 숯불구이가 유독 많았다. ⓒ 김진영


숯불 위로 양념하지 않은 다릿살을 먼저 굽는다. 닭 껍질에서 떨어지는 기름에 불꽃이 일어나고 이내 식탁 위 접시에 불향 가득한 닭고기가 올려진다. 한 점 먹는 순간, 왜 지금까지 닭을 끓여 먹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구운 살코기 사이에 껍질이 몇 점 놓여 있다. 껍질을 먹고나니 이제까지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었는지 자괴감까지 들었다.

닭구이 맛이 열냥이면, 껍질이 아홉냥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다. 구운 닭 껍질의 씹는 맛이 압권이다. 닭다리살을 다 먹을 즈음, 가슴살과 날개구이가 나온다. 가슴살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숯불에 빠르게 구운 덕분이다. 칼집을 넣어 속살까지 잘 구운 날개를 먹으며 신을 원망했다. 왜 닭 날개를 두 개만 만들었는지. 뼈까지 쪽쪽 빨아먹고 나면 죽이 나온다. 불판 위에 피던 맛의 향연이 사그라지는 숯불과 함께 끝났다.

일본도 잘 자라지 않는 토종닭을 퇴출하고 잘 크는 육계를 선호하다가, 최근에는 토종닭을 복원하고 있다. 경제성도 중요하지만, 맛 또한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토종닭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성만이 아닌 맛의 관점에서 새로운 품종을 육종하고 있다. 백숙용과 볶음탕용 등 끓이는 용도에서 벗어나 토종닭을 구이용으로 포장한 것도 나오고 있다. 집에서 프라이팬에 기름 살짝 두르고 굽거나 야외에서 숯불에 굽기 편하게 만들었다.

치킨은 기름에 바싹하게 튀긴 옷과 그 안에 있는 고기의 조합이 입맛을 유혹한다면, 토종닭 구이는 오롯이 닭 맛으로 유혹한다. 토종닭은 퍽퍽한 가슴살마저 쫄깃하다. 삼계탕이나 백숙은 많이 먹어봤겠지만, 토종닭 구이를 경험한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삼계탕 대신 쫄깃한 토종닭 구이로 복달임을 하면 어떨까 싶다. 토종닭은 삶는 것도 맛있지만, 구우면 더 맛있다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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