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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신암리에서 나온 신석기 시대 '비너스'가 있다. 보통 이 비너스를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견주어 설명하고,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본다. 그런데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설일 수 있다. 그것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기보다는 '구석기인의 생명관'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풀기 위해 빌렌도르프 비너스, 프랑스 로셀의 비너스, 러시아 코스텐키 비너스, 울산 신암리 여인상 해석을 3회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말

아래 조각상은 1908년 오스트리아 다뉴브 강가 시골 마을 빌렌도르프에서 철도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여인상이다. 이 여인상은 보통 세계 미술사를 다루는 책에서 첫 장을 장식하곤 한다. 아주 큰 사진으로 한 면에 실을 때가 많은데,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이 여인상이 엄청 클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높이가 11.1센티미터밖에 안 된다. 그래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볼 수 있다. 물론 사진 아래 설명글에는 이 여인상이 '11.1cm'밖에 안 된다고 분명히 써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여인상의 크기를 엄청 클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것은 사진 크기에 압도당해서일 것이다. 이런 일은 미술 공부를 할 때 자주 일어난다. 미술 책에서 사진을 볼 때는 실제 크기를 짐작하고 봐야 한다. 이것은 미술 공부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석회암에 조각. 높이 11.1cm. 배꼽, 왼쪽 골반 아래, 왼쪽 가슴, 목 아래에 나 있는 구멍과 왼쪽 어깻죽지에 파인 골은 원래 돌에 나 있는 구멍이고 골이다. 구석기인은 배꼽 자리 구멍을 포인트로 삼아 조각을 했다. 아래 발을 보면 설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아마 지니고 다니는 부적이었을 것이다.
▲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  석회암에 조각. 높이 11.1cm. 배꼽, 왼쪽 골반 아래, 왼쪽 가슴, 목 아래에 나 있는 구멍과 왼쪽 어깻죽지에 파인 골은 원래 돌에 나 있는 구멍이고 골이다. 구석기인은 배꼽 자리 구멍을 포인트로 삼아 조각을 했다. 아래 발을 보면 설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아마 지니고 다니는 부적이었을 것이다.
ⓒ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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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이 여인상은 석회암에 조각했다. 다른 돌에 견주어 좀 무른 석회암을 그보다 더 단단한 돌로 비비고 쪼아 조각한 것이다. 아마 석회암 돌에 물을 적셔 조각했을 것이다. 이 여인상은 구석기 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석기 시대 유물인지 알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 여인상이 파묻혀 있던 흙층(흙이 쌓여 있는 순서)을 분석하면 된다. 그 결과 기원전 2만 2000년 내지는 2만 4000년 전 구석기인이 조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선사 시대 유물을 발굴할 때는 그 유물이 파묻혀 있던 흙층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 여인상을 보통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름에 '빌렌도르프'가 붙는 것은 알겠는데, 왜 이 여인상을 '비너스'라고 하는지 말이다. 비너스(Venus)라면 보통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예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구석기인들은 이런 여자 모습을 아름답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조각상에 아름다움의 여신 이름 '비너스'를 붙인 것이다.

 
13.5센티미터. 석회석. 1988년 러시아 돈 강 코스텐키(kostenki) 구석기 유적지에서 찾은 만삭 여자 몸 비너스다. 팔 길이가 짧고, 두 손을 배에 올려놓았는데 끈으로 묶어 이어 놓았다. 이 여인상과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배를 견주어 보면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만삭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배꼽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 코스텐키 비너스(Venus of kostenki) 13.5센티미터. 석회석. 1988년 러시아 돈 강 코스텐키(kostenki) 구석기 유적지에서 찾은 만삭 여자 몸 비너스다. 팔 길이가 짧고, 두 손을 배에 올려놓았는데 끈으로 묶어 이어 놓았다. 이 여인상과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배를 견주어 보면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만삭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배꼽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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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렌도르프 비너스의 중심은 배꼽

구석기 시대 초기 인간들은 단단한 돌연장으로 뼈나 뿔이나 무른 돌에 그림을 그렸고, 작은 조각상 같은 것을 깎았다. 이때 만든 조각상을 보면 조각을 하기 위해 일부러 그에 적당한 돌을 찾고 머릿속에 구상한 대로 조각을 했다기보다는 아주 우연히 발견한 돌, 바로 그 돌 모양에 맞추어 조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유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외국 선사 시대 유물에서는 이런 것을 꽤 찾아볼 수 있다. 빌렌도르프 비너스에서 배꼽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사실 이 배꼽은 비너스를 조각한 사람이 판 게 아니다. 애당초 조각하기 전 석회암 돌에 나 있는 구멍이다. 이 비너스를 조각한 사람은 어느 날 구멍이 나 있는 석회암 돌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 구멍을 본 순간 이 구멍을 배꼽으로 삼아 여자 형상을 조각하면 참 좋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조각상의 중심은 배꼽이다. 이 배꼽에서 시작해 위아래로 조각을 해 나갔던 것이다.

 
머리를 보면 울퉁불퉁 뭔가 아주 세밀하게 조각했는데, 정작 눈 코 입 귀는 조각하지 않았다.
▲ 빌렌도르프 비너스 머리 머리를 보면 울퉁불퉁 뭔가 아주 세밀하게 조각했는데, 정작 눈 코 입 귀는 조각하지 않았다.
ⓒ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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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보면 울퉁불퉁 뭔가 아주 세밀하게 조각했는데, 정작 눈 코 입 귀는 조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양손은 젖가슴에 살짝 올리고 있다. 아마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큰 가슴과 엉덩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상은 좀 엉성한 부분이 있다. 앞에서 보면 허릿살이 분명한데 뒤에서 보면 이 허릿살이 엉덩이로 이어져 있다. 왜 이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원재료 돌에 나 있는 구멍에 맞춰 조각을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다. 구석기 조각가는 앞에 나 있는 동그란 구멍을 배꼽으로, 뒤에 나 있는 일(一) 자 골을 항문으로 삼고 조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이런 모양이 된 것이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는 가설은 잘못

미술학자들은 큰 가슴과 엉덩이를 중심으로 이 비너스 상을 설명한다. 바로 풍요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상으로 보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상을 보면서, 그때 당시 남자들에게, 또는 어떤 한 무리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 받은 여자는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여자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몸 자체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여자, 이 여인상처럼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한 여자가 그때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한다. 그러니까 이 여인상은 그때 당시 '비너스' 상이라는 것이다.
 
1988년 러시아 돈 강 코스텐키 구석기 유적지에서 나온 비너스다. 이런 여인상은 유럽과 서부 러시아에서 나오고 있는데,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달리 임신을 했는데도 풍만하지 않은 것도 많다.
▲ 코스텐키 비너스(Venus of kostenki) 1988년 러시아 돈 강 코스텐키 구석기 유적지에서 나온 비너스다. 이런 여인상은 유럽과 서부 러시아에서 나오고 있는데,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달리 임신을 했는데도 풍만하지 않은 것도 많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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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비너스 상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는 것도 그저 짐작이고 가설일 뿐이다.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러한 짐작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설일 가능성이 높다. 이 가설로는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독특한 머리 모양을 설명할 수 없다. 또 임신한 여자의 몸을 조각한 것도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허릿살과 엉덩이가 이어져 있어 임신한 여자의 몸과 다르게 보이고, 정면에서 보면 가슴 바로 아래에 홀쭉하게 골이 나 있다. 이는 위 사진에서 만삭의 여자 몸을 조각한 러시아 코스텐키 비너스 배와 빌렌도르프 비너스 배를 견주어 보면 알 수 있다.


구석기 여인상은 유럽과 서부 러시아에서 나오고 있는데,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달리 풍만하지 않은 것도 있다. 구석기 시대 유럽 여자들의 몸매가 어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위 사진에서 몸이 풍만하지 않은 여인상은 어쩌면 당시 유럽 여자들의 실제 몸매였을 가능성이 높다.(다음호에 이어서 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태그:#김찬곤, #빌렌도르프의비너스, #울산신암리여인상, #로셀의비너스, #코스텐키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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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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