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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 말 듯 드넓은 들판 끝으로 산자락들이 낮게 혹은 연이어 아스라이 내달린다. 어느새 저녁노을이 내려앉고 대나무 숲에 바람이 잦아든다. 무심히 내려다본 연못엔 물그림자가 언뜻 비친다. 정자 앞 오랜 나무들이 세상을 가린 듯 숨기어 이곳은 은자의 고요한 공간이 된다. -기자 말


임대정 임대정의 장점은 빼어난 위치에 조망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 임대정 임대정의 장점은 빼어난 위치에 조망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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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입지

임대정 원림은 진산인 봉정산(411.3m)을 배산으로 등지고, 사평천을 앞으로 임하고 있다. 시내 너머로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어 조망이 좋은 데다 주변에 대나무와 숲이 울창해 더위를 피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 옛날에도 이곳의 매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사애집>에는 "산을 대하고 물에 임하니 흥취가 끝이 없다"고 칭송했다. 민주현은 이곳에서 내원의 경관뿐만 아니라 주위 사계절의 풍경까지 노닐며 구경했다. 그는 이곳의 탁월한 경관을 "봄에는 버들을 보고, 여름에는 큰물을 보고, 가을에는 벼를 구경하고, 겨울에는 눈을 구경한다"며 '사시가경(四時佳境)'으로 표현했다.

임대정 임대정 원림에선 펼쳐지는 경관이 다양하다.
▲ 임대정 임대정 원림에선 펼쳐지는 경관이 다양하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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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정기>에도 이곳의 빼어난 위치와 조망을 예찬했다. "이 언덕은 앞으로 멀리 들판을 임하고, 남쪽으로 깊은 골짜기를 임하며, 동북쪽으로 산이 이어져 지세가 가파르니 높이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쾌활하다. 또한 울창한 숲과 무성한 대나무가 좌우로 둘러쳐 있으니 그 사이로 상쾌한 소리와 맑은 바람이 나온다"고 했다.

다양한 경관
임대정 원림에선 펼쳐지는 경관 또한 다양하다. 언덕 위에 정자가 있고 그 앞과 옆으로 연못이 둘러 있어 물의 공간과 자연 경관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선 봉정산의 원경(遠景), 연못의 영경(影景), 사방의 산수와 농경지의 환경(環景), 해넘이의 취경(就景)까지 다양한 장면이 연출된다.

임대정 삼면이 마루인 임대정은 주요 조망 대상이 세 방향이 된다.
▲ 임대정 삼면이 마루인 임대정은 주요 조망 대상이 세 방향이 된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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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계성은 차경(借景)의 종류로 먼 곳의 경물을 차용하는 '원차(遠借)', 가까운 곳의 경물을 차용하는 '인차(隣借)', 높은 곳의 경물을 차용하는 '앙차(仰借)', 낮은 곳의 경물을 차용하는 '부차(俯借)', 시절 풍경에 따라 경물을 차용하는 '응시이차(應時而借)'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사물의 정경이 잘 나타나면 절로 시선이 멈춰지고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임대정은 물의 공간인 연못과 섬은 근경(近境)으로 '인차'가 되고, 주변 자연 경관은 원경(遠景)으로 '원차'가 된다. 이것은 묘하게도 가까운 곳은 인간의 영역으로, 먼 곳은 자연의 영역으로 대비된다. 그러면서 연못과 섬은 원경인 자연을 축소하여 본뜬 축경(縮景)의 의미도 띠게 된다. 이것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내려다보는 부감(俯瞰)과 올려다보는 앙감(仰瞰)으로 각기 '부차'와 '앙차'가 된다.

임대정 임대정의 주요 조망 대상은 세 방향으로 조망 범위가 넓다.
▲ 임대정 임대정의 주요 조망 대상은 세 방향으로 조망 범위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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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정의 또 하나의 장점은 조망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대개 우리 옛 정원에서 주변 경관을 조망할 때 한쪽 방향이나 두 방향이 많은데 비해, 임대정은 주요 조망 대상이 세 방향이 된다. 그만큼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이 넓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임대정의 위치뿐만 아니라 상지의 연못이 하나의 방향을 이루고, 하지의 두 연못이 임대정을 두 방향에서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의 정원
임대정 원림은 물의 공간을 연출한 정원이다. 애초에 그 이름조차 물을 대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임대정에는 연못이 셋 있다. 언덕 위에 상지(上池)가 하나 있고 언덕 아래에 하지(下池)가 둘 있다. 게다가 원림 앞으로 시내가 흐른다. 요즈음이야 원림 앞으로 도로가 나는 바람에 예스런 정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 옛날 이곳을 방문했다면 물이 만들어내는 그 오묘하고 다양한 풍경에 흠뻑 취했을 것이다.

임대정 하지의 두 연못은 반달 모양과 둥근 원 형태의 자유로운 곡지(曲池)이다.
▲ 임대정 하지의 두 연못은 반달 모양과 둥근 원 형태의 자유로운 곡지(曲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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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정과 상지 상지의 섬에는 오죽이 심겨 있고 '세심(洗心)'이라고 새겨진 돌이 있다.
▲ 임대정과 상지 상지의 섬에는 오죽이 심겨 있고 '세심(洗心)'이라고 새겨진 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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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조성된 연못은 대개 천원지방설을 뜻하는 방지원도(方池圓島)로 음양의 결합을 상징한다. 그런데 임대정의 경우에는 조금 특이한 형태다. 정자 옆의 상지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방지원도이지만 하지의 두 연못은 반달 모양과 둥근 원 형태의 자유로운 곡지(曲池)이다. 즉, 정자와 상지는 엄격한 형식성을 띠는 반면에 하지는 비형식성이 강한 편이다.

임대정 원림은 정원 안에 물의 공간이 위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물의 공간이 고리 모양으로 둥그렇게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환상(環狀)이다. 이처럼 다양한 물의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임대정은 진입 공간에서 중심 공간에 오르는 즐거움이 있다.

기임석 기임석은 걸터앉아 쉴 수 있는 돌이라는 의미로, 연못의 경관을 보는 좌선석으로 볼 수 있다.
▲ 기임석 기임석은 걸터앉아 쉴 수 있는 돌이라는 의미로, 연못의 경관을 보는 좌선석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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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의 의미
네모난 연못인 상지의 섬에는 오죽이 심겨 있고 '세심(洗心)'이라고 새겨진 돌이 있다. 물가에는 육면석이 있는데, 동쪽에는 피향지(披香池), 서쪽에는 읍청당(挹淸塘), 남쪽에는 기임석 임술춘(跂臨石 壬戌春)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기임석은 걸터앉아 쉴 수 있는 돌이라는 의미로, 연못의 경관을 보는 좌선석으로 볼 수 있다. 임술년은 민주현이 임대정을 다시 지은 1862년을 말한다. 읍청당과 피향지는 서쪽에서 봤을 때 흙과 돌을 쌓아 만든 연못인 '당(塘)'의 형태로 인식되고, 동쪽에서 봤을 때 평지를 파내어 조성한 연못인 '지(池')의 형태로 인식하도록 배치했다.

임대정 동쪽에는 피향지(披香池), 서쪽에는 읍청당(?淸塘)이 있다.
▲ 임대정 동쪽에는 피향지(披香池), 서쪽에는 읍청당(?淸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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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학자 정동오는 피향지의 향(香)과 읍청당의 청(淸)을 주돈이의 '애련설'에 나오는 "연꽃의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香遠益淸향원익청)"로 파악했다. 그래서 피향지를 상원의 방지로, 읍청당을 하원의 곡지로 봤다. 그러나 유병림 등은 읍청당과 피향지는 연못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단지 시에서의 대구로 '시를 읊는 지당'의 의미로 파악했다.

하지의 두 연못은 봉정산에서 흘러온 물을 연못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원래 생긴 지형에 따라 조성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조선의 전형적인 중도형 연못인 방지원도의 형태를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대정 하지에는 모두 세 개의 섬이 있다. 남쪽의 연못에 두 개, 북쪽의 연못에 한 개가 있다. 이 세 섬은 삼신산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임대정 임대정 하지에는 모두 세 개의 섬이 있다. 남쪽의 연못에 두 개, 북쪽의 연못에 한 개가 있다.
▲ 임대정 임대정 하지에는 모두 세 개의 섬이 있다. 남쪽의 연못에 두 개, 북쪽의 연못에 한 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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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와 하지로 분리된 연못을 이어주는 것은 비탈진 오솔길(사로, 斜路)과 나무 홈통인 비구(飛溝)이다. 오솔길이 임대정의 상원과 하원을 찾는 사람들의 통로라면, 비구는 상지와 하지를 잇는 물의 통로이다. 비구를 통해 아래 연못으로 힘차게 떨어지는 비폭(飛瀑)은 역동성과 연속성을 드러낸다. 비구를 설치한 것은 단지 연못에 물을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고 청각적으로 듣게 하는 역할도 한다.

임대정 오솔길은 임대정의 상원과 하원을 찾는 사람들의 통로이다.
▲ 임대정 오솔길은 임대정의 상원과 하원을 찾는 사람들의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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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정 비구를 통해 상지의 물이 아래 연못으로 힘차게 떨어진다.
▲ 임대정 비구를 통해 상지의 물이 아래 연못으로 힘차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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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정을 읊은 시문을 보면 임대정 원림의 조경이 지형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언덕에는 열 그루 버들이 벌려 있다(岸列十柳)"는 표현으로 보아 하원의 연못 둘레에 버드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버드나무가 두 그루 정도만 있다. 대신 왕벚나무가 연못 주위로 있는데, 언덕에 있는 삼나무, 편백나무와 함께 원래는 없던 수종이다. 임대정을 읊은 옛 시문을 보면 대표적인 정원수가 느티나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앵두, 석류, 매화, 배나무, 살구나무가 있었고, 대나무, 반송, 국화, 대추나무 등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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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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