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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선원의 점심 공양. 어머니의 밥상과 흡사하다. 지난 5월 24일 정보스님과 함께 한 점심 공양 식단이다.
 천불선원의 점심 공양. 어머니의 밥상과 흡사하다. 지난 5월 24일 정보스님과 함께 한 점심 공양 식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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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공양은 색다르다. 절집에서는 식재료를 재배하고 조리하는 모든 과정을 수행의 연장선으로 여긴다. 고기, 생선 등 동물성 음식을 일절 먹지 않는 것도 '살생을 하지 말라'는 불교의 계율에 따른 것이다.

파, 마늘, 달래, 부추, 양파 등 매운 맛이 나는 다섯 가지 채소도 섭취하지 않는다. 강한 냄새 탓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뿐 아니라 매운 맛이 화를 부르고 음란한 마음을 일으킨다는 이유다.

대신 버섯가루, 들깨가루, 콩가루 등으로 짜거나 맵지 않으면서도 정갈하면서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낸다. 사찰음식은 '어머니의 밥상'으로 통한다. 인공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도 그 맛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건강까지 챙겨준다. 자연보약이다.

사찰음식을 만들어 파는 이유를 얘기하고 있는 정보스님. 스님은 절집에서 먹는 사찰음식을 손수 담그고 무쳐서 맛깔 나는 음식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사찰음식을 만들어 파는 이유를 얘기하고 있는 정보스님. 스님은 절집에서 먹는 사찰음식을 손수 담그고 무쳐서 맛깔 나는 음식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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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이 즐비한 천불선원 마당과 정원. 아기자기하게 가꿔진 정원에는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 꿀벌을 유혹하고 있다.
 장독이 즐비한 천불선원 마당과 정원. 아기자기하게 가꿔진 정원에는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 꿀벌을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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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서 먹는 사찰음식을 손수 담그고 무쳐서 맛깔 나는 음식으로 만들어 파는 비구니가 있다.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천불선원 주지 정보스님이다. 절집이 자리하고 있는 '담양 창평'은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알려져 있다.

정보스님이 수행하고 있는 천불선원의 마당에는 장독이 즐비하다. 아기자기하게 가꿔진 정원에는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 꿀벌을 유혹하고 있다. 마당이 아름다운 옛집 같은 수행도량이다.

정보스님은 이 마당에서 고추장과 된장을 담근다. 장아찌와 차, 건정 등도 만든다. 식재료는 대부분 절집 인근에서 나는 담양산을 쓴다. 해초와 천일염 등 지역에서 나오지 않는 식재료만 다른 지역에서 가져다 쓴다.

스님이 담그고 무치는 사찰음식은 도라지, 죽순, 무, 연근, 고추, 매실, 콩잎, 곰보미역 등을 이용한 장아찌가 많다. 간장, 고추장, 된장 등 장류도 담근다. 장류는 5차 발효를 거쳐 3년 이상 숙성시킨다. 생강차, 도라지차, 당귀차 그리고 오미자청, 도라지청 등도 있다. 밤, 찹쌀, 약콩, 보리, 녹두, 대추, 옥수수, 고구마 등으로 만든 영양선식도 특별하다.

생산품은 모두 절집에서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 '산들바다'를 통해 판매된다. 절집이 자리한 담양과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온다. 담양에 왔다가 사찰음식을 접한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정보스님이 차린 식단. 공양을 한 신도들은 어김없이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정보스님이 차린 식단. 공양을 한 신도들은 어김없이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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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스님이 만든 다식 세트. 스님은 다식은 물론 장아찌, 장류, 차, 청 등 수십 가지 음식을 만들고 있다.
 정보스님이 만든 다식 세트. 스님은 다식은 물론 장아찌, 장류, 차, 청 등 수십 가지 음식을 만들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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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사찰음식을 만들어 판 지 올해 4년째. 돈을 벌 목적으로 지난 2015년 1월 식품제조 허가를 얻었다. 돈은 재소자들을 돕는 교화사업을 계속하는 데 필요했다. 법문을 들으러 왔다가 공양을 한 신도들이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사업화를 제안한 터였다.

"제가 광주교도소에 드나들며 재소자들을 돕고 있는데, 올해 29년째입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요. 십시일반 후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죠. 신도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찰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지요."

스님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 손바닥에서 금세 티가 났다. 농사꾼의 손보다도 마디가 더 굵고 단단하게 깡이 박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장부 스타일과 달리, 성격은 아주 세심하고 섬세했다. 옷매무새도 단정하고 깔끔했다.

농사꾼의 손보다도 마디가 더 굵고 깡이 박힌 정보스님의 손.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금세 짐작할 수 있다.
 농사꾼의 손보다도 마디가 더 굵고 깡이 박힌 정보스님의 손.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금세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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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을 만들고 있는 정보스님. 스님은 음식 만드는 비법을 어릴 때 할머니한테 배웠다고 했다.
 사찰음식을 만들고 있는 정보스님. 스님은 음식 만드는 비법을 어릴 때 할머니한테 배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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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스님은 음식 만드는 비법을 어릴 때 할머니한테 배웠다고 했다. 맏이로서 할머니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어깨 너머로 하나씩 익혔다고. 음식을 만들고, 나눠먹는 취미도 그때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손맛에다 정성은 물론 저의 혼까지 불어넣습니다. 식재료를 씻고 자르는 과정만 보살님들의 손을 빌릴 뿐, 담그고 절이고 무치는 과정은 모두 제가 직접 해요. 다른 사람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죠. 제 고집이 조금 센 편이에요."

어떤 식재료든지 스님이 손끝으로 조몰락조몰락 하면 맛난 음식으로 재탄생했다. 스님은 직접 담그고 절이고 무친 음식의 상표에 자신의 얼굴을 넣는다. '나를 믿고 드시라'는, 스님의 얼굴로 보증하겠다는 표시다.

정보스님이 직접 담근 고추장. 장독 뚜껑을 열고 다시마를 걷어내자 빨간 고추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숨에 입에 침이 고인다.
 정보스님이 직접 담근 고추장. 장독 뚜껑을 열고 다시마를 걷어내자 빨간 고추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숨에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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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스님의 얼굴이 들어있는 상표. 스님은 ‘나를 믿고 드시라’는 보증의 의미로 음식의 상표에 자신의 얼굴을 넣었다고 했다.
 정보스님의 얼굴이 들어있는 상표. 스님은 ‘나를 믿고 드시라’는 보증의 의미로 음식의 상표에 자신의 얼굴을 넣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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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인연을 맺은 소비자들이 다시 주문을 해온다. 주문을 해오는 고객의 지역과 나이도 각양각색이다. 맛은 물론 음식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다 신뢰한다는 의미다. 스님이 사찰음식을 만드는 보람이다.

"재밌어요. 많은 분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자연보약을 제가 직접 만들잖아요. 맛을 본 고객들이 맛있다고 맞장구를 쳐주며 또다시 주문을 해오니 보람도 크고요. 힘이 들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수행하며 일합니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내 스스로 만족하는 걸로 족하지요."

자신을 속이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며 산다는 스님의 말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수행자의 면면이 함초롬히 묻어난다.

정보스님은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수행자다. 지난 5월 22일 석가탄신 때 신도들과 함께 한 모습이다.
 정보스님은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수행자다. 지난 5월 22일 석가탄신 때 신도들과 함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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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찰음식, #정보스님, #천불선원, #산들바다, #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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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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