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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싱글일 때의 자유로움을 떠올린다. 멍하니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길 즐겼다. 몇 시간이고 여유롭게 읽고 싶은 책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시절 친구들과의 급작스러운 만남에도 언제든 응할 수 있었다.

별것이 아닌 줄 알았던 일상이 특별한 것이었음을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지금 두 아이를 양육하는 나는 육아에 발이 묶였고 하루하루가 시간과의 싸움이다. 촘촘한 일상에서 우리 부부의 여가시간은 없다.

두 명의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남편과 협업으로 움직여야 오후 11시에 일과를 끝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아이들을 재우려고 누웠다가 남편은 둘째 옆에서, 나는 첫째 옆에서 피곤에 지쳐 잠이 들어버리고 만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울 때도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던 우리였다. 아이가 두 명이 되니 불평할 시간조차 없다. 연애 때부터 신혼 초까지 우리의 취미는 영화감상이었다. 영화관을 갈 수 없는 우리는 집에서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최대한 볼륨을 낮춰 숨죽이듯 영화를 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마저도 아직 돌이 안 되어 새벽마다 자주 깨는 갓난쟁이 둘째에게 달려가느라 수시로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한다.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닌 애매한 기분을 느끼다 이내 보기를 포기해버렸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남들처럼 떠나보자 작정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아기들 짐을 바리바리 싸서 나갔다가 진이 빠져서 돌아오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집이 제일 편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뼈저리게 느꼈음에도 날이 좋으면 혈기왕성한 남편과 나는 또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애기 둘을 들쳐 업고 근처 마트를 돌며 아쉬운 마음을 잠재운다.

정서적인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 경제적인 부담감에 짓눌린다. 복직하면 이 아이들은 어찌해야 하나. 긴 휴직기간을 보내고도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해결책이 없는 질문들로 스스로 불안해하며 일상을 보낸다. 아파트 대출금 상환도 버거운데 두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매월 늘어만 간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비용 또한 염려스럽다.

그래서인지 딩크(Double Income No kids,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나 비혼(非婚)을 택한 주변 지인들의 SNS에 여행사진이나 여유로운 일상모습이 올라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포기한 시간적 여유와 물질적 풍요, 개인적인 성취들의 값어치를 따지게 된다. 골똘히 앉아 육아손익계산서를 따져보았다.

계산기를 두드려도 값을 매길 수 없는 순간

내 육아손익계산서의 결론은 플러스다.
 내 육아손익계산서의 결론은 플러스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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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상거래의 관점으로 논할 수 없다. 억지로 손익논리에 짜맞춰 생각해보자면 이건 철저하게 손해나는 관계다. 당장 내가 영위하는 삶만을 보아도 그렇다. 기본적인 욕구조차 내려놓아야 하는 지금의 육아전쟁 상황은 당연히 손해이다. 그럼에도 시간을 돌려 싱글일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이 아이들을 만나는 선택을 할 것이다. 손해를 보상하고도 남는 이익지표가 여러 가지 있기 때문이다.

갓 네 살이 된 첫째는 갓난쟁이 둘째에게 머리를 쥐어뜯기고 있는 내게 달려와 소리친다. "엄마, 내가 지켜주게('ㄹ'발음을 하지 못한다)!"를 외치며 고사리 손으로 동생 앞을 가로막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마이쭈'라는 사탕을 나에게도 사주겠다며 세상 편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 내가 사줄게"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는 그 잔망스러움이 나를 웃게 한다.

각기 제 몫의 사랑을 타고 난 것인지 둘째는 눈만 마주쳐도 방긋방긋 웃어대는 통에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예쁨을 받는다. 그러니 엄마인 나는 이 아이가 오죽 예쁘겠는가.

둘째가 태어나고서 우리 가족의 추억은 갑절로 늘어났다. 남편은 진공청소기를 '청소기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첫째가 떼를 부릴 때면 괴물을 데려오겠다는 얘기를 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주말에, 남편은 어차피 해야 할 청소를 핑계 삼아 한 번씩 그 괴물을 꺼내온다. 윙하고 굉음을 내니 아이는 정말 괴물을 본 것마냥 혼비백산한다.

청소기 괴물 덕분에 집도 깨끗해졌고 큰 아이의 얼토당토 않는 떼부림도 수월히 넘긴다. 두어 번 청소기 괴물을 보고나니 용기가 생겼는지 첫째는 제법 씩씩하게 둘째를 감싸 안아주었다. "누나가 지켜줄게!"를 외치더니 남편이 청소기를 가까이 대자 동생을 냅다버리고 도망쳐버린다.

네 가족이 거실 바닥에 뒹굴며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진 집에서 벅찬 행복감을 느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얻었는데 아이들로 인한 내 인생의 손익을 계산하고 앉아 있는 내가 바보였음을 깨닫는다.

추억과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기분에 젖어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주변에 둘째 출산을 장려하고 싶은 시대착오적(?)인 생각마저 든다. 역대 최저 출산율 1.05명을 기록한 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내게 준 건 값을 매길 수 없는 행복과 추억만이 아니다. 첫 아이를 낳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잘못 키울까 두려워 육아에 관련된 많은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아이의 변화무쌍한 모습과 놀라운 성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쓰고 또 썼다. 매일 내게 새로운 글감이 되어준 아이에게 이끌려, 오히려 내가 나를 키우는 '육아(育我)'의 세계로 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표현이 서툴고 고집 센 미운 네 살 첫째는 내게 어마어마한 설득능력을 키워주는 스승이 되었다. 한 사람을 '인격체'로 대하기 위해 보여야 할 존중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 지도 알게 되었다. 이 두 생명체들을 어르고 달래고 돌보며 나는 오늘도 그 어떤 고집불통과도 소통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 내공을 쌓고 있다.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하루 종일 조잘거리는 첫째는 잠이 들면서도 "엄마, 얘기하자. 우리 오늘 얘기 못했잖아"라고 말한다. 우리 딸이 내게 들어주는 능력·경청의 자세까지 알려 주려나보다. 나는 오늘도 첫째의 종알거림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겸허히 귀를 열고 들어준다. 내 인생에 이런 이익과 기쁨이 또 어디 있나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봄이 왔다. 벌써 엉덩이가 들썩인다. 남편은 선덕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려 청소기를 꺼내오고 아이들은 다시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청소기 괴물을 피해 온 집안을 뛰어다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가정에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과 행복의 기쁨이 넘쳐난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내가 더 성숙해지는 값진 이 순간이 나날의 피로를 풀어주고 봄날의 나들이를 보상해준다. 나는 '고귀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경력을 쌓아가는 경력연장 중인 여성이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내 자신의 성장이라는 인생경험을 저축하는 중이다. 내 육아손익계산서의 결론은 플러스다.


태그:#육아손익계산서, #육아, #가족,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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