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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쓰레기 대란 이후 '제로 웨이스트'가 새로운 라이프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입고 먹고 살면서 나오는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재활용하자는 운동입니다.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버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쓰레기를 유발하는 현대사회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눈물겨운 체험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김연우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다. 살다보면 사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 같이 느껴진다. 국정농단 사건을 볼 땐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죄 같았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며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것이 잘못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이 아동노동 착취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랬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가해자의 한 무리에 서 있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갈 것이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그럴 때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나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만 같다.

쓰레기를 만드는 것도 그렇다. 최근에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없이 살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력형 '힙스터(새로우면서도 독특한 유행에 민감한 사람)'를 자청하는 친구가 먼저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말 그대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프로젝트란다. 친구는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비닐 대신 장바구니를, 일회용 포장 용기 대신 도시락통을 싸가지고 다녔다. 멋있어 보였다. '힙하다(유행에 앞선다는 뜻)', '의미 있다' 찬사를 보내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생각하는 대로 산다는 게 뭐 그렇게 큰일도 아니야. 너도 생각난 김에 해. 그럼 그렇게 사는 거지."

그렇게 덩달아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단 일주일만 해보자. 일이 많아 굉장히 바쁠 때였지만 쓰레기를 덜 만드는 일에 시간이 많이 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첫 좌절, 요구르트병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 준비물 3종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 준비물 3종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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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친구 조언대로 가방에 텀블러와 밀폐 용기, 손수건을 챙겼다. 뭐 더 사야 할 것 없냐고 물었다가 쓰레기를 안 만들기로 한 사람이 뭔가를 살 생각부터 한다고 잔소리를 들었다. 일단 세 가지 아이템으로 시작하자. 그리고 내가 얼마나 쓰레기를 만드는지 살펴보자. 그런 마음으로 첫날을 보냈다.

시작은 좋았다. 일하기 전에 카페에 들려 커피를 한 잔씩 사곤 했는데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내미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의식 있는 청년 코스프레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커피를 담아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아뿔싸, 책상 위에는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배달해 준 요구르트가 놓여 있었다. 이 요구르트를 어쩐담. 요구르트 공장에 가서 텀블러에 담아오거나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지 않는 이상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결심한 지 반나절도 안 되어 쓰레기를 만들고 말았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사무실로 배달시킨 수분크림이 왔다. 네모난 택배 박스를 보자 또 아차 싶었다. 그래도 택배 박스는 재활용이 되잖아라는 위안도 잠시, 박스 안에는 화장품을 몇 겹이나 싼 '뽁뽁이'(에어캡)가 있었다. 게다가 투명 비닐봉지 안에 담긴 광고지와 화장품 샘플까지. 고작 텀블러 한 번으로 올라간 자존감이 금방 무너졌다.

일은 많은데 점심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근처 김밥집에 김밥을 사러 갔다. 검은 비닐봉지에 은박으로 싼 김밥과 일회용 젓가락, 투명 봉투에 담긴 단무지를 받는 게 익숙했지만, 제로 웨이스트를 결심한 첫날 아닌가. 봉지와 젓가락을 거절하고 밀폐 용기를 내밀었다. 밀폐 용기에 담긴 김밥을 쇠젓가락으로 먹고 설거지를 했다.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로 도시락을 싸서 먹었다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로 도시락을 싸서 먹었다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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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는 아예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손수건 겸 도시락보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기분이 괜찮았다. 물론 시간이 많이 들었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30분은 아침잠 많은 내게는 고역이었다.

게다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도시락을 싸는 건데 장을 보는 것 자체가 쓰레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마트에 가면 거의 대부분이 스티로폼이나 비닐에 싸여 있었다. 장조림, 깻잎 같은 반찬을 사는 것 자체가 쓰레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식재료도 문제였다. 불고기를 소분해서 얼려놓고 싶은데 소분할 용기가 마땅치 않았다. 일회용 비닐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참고 결국 통째로 보관했다. 3일이 지난 후에는 재래시장에 밀폐 용기를 들고 가 직접 반찬을 받았다. 재래시장에 오고 가는 시간을 생각하니 차라리 밥을 굶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로 도시락을 싸서 먹었다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로 도시락을 싸서 먹었다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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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사실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할 땐 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면 되는 것'이니 시간과는 상관이 없겠다 싶었다. 마치 다이어트처럼 '절제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큰 착각이었다. 제로 웨이스트는 어감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애를 써서 '하는 것'이었다. 소비하는 게 숨 쉬는 것만큼 익숙한 사회에서는 '안 쓰는 것'이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제로 웨이스트를 하면서 나는 더 바빠졌다. 의식 있게 산다는 건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환경과 세상을 생각하며 산다는 건 내가 여유가 있을수록 수월한 일이었다. 사는 게 버거우면 죄를 짓지 않고 살기가 더 어려워지는 걸까?
 옷을 사면 쓰레기가 생긴다
 옷을 사면 쓰레기가 생긴다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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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는 쓰레기가 너무 많았다. 거절해도 생기는 쓰레기 중 하나는 영수증이었다.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에서는 말하기도 전에 계산대에서 영수증이 자동으로 쓱 나왔다. 영수증을 안 받는 사람들이 많은지 계산대 위에는 영수증이 잔뜩 쌓여있었다. 이래서야 안 받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생기는 쓰레기의 한 몫은 포장용품이 차지했다. 택배를 시키면 어김없이 박스와 뽁뽁이가 무더기로 왔다. 과자를 먹거나 편의점에서 주스를 하나 사 먹어도 쓰레기는 생겼다. 포장지에 담겨 있는 음식을 먹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만들어야만 했다.
 쇼핑 후, 봉투 없이 손에 덜렁 들고 온 바지
 쇼핑 후, 봉투 없이 손에 덜렁 들고 온 바지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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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를 하며 생기는 또 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과연 쓰레기는 무엇일까? 주말에 있을 결혼식 때문에 바지를 하나 샀다. 봉투를 거절하고 덜렁덜렁 손에 들고 걸어오는 길이었다. 봉투와 영수증을 거절했다는 위안은 작았고, 어쩌면 꼭 필요하지 않은 옷을 산 것 자체가 쓰레기를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컸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쓰레기인 걸까? 친구 결혼식에 쓰였던 그 많은 꽃들도 쓰레기로 취급해야 하는 걸까? 소비를 줄이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어야 하는 걸까?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를 하면 자존감이 높아질 거라 생각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적어도 죄를 조금만 짓는 노력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소비에 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주일 동안 내가 깨달은 것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를 하던 일주일 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 나는 생각보다 아주 많은 양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며 산다. 쓰레기 공장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둘, 나 혼자 노력한다고 쓰레기를 안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노력하면 줄일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나는 평소보다 쓰레기를 덜 만들며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텀블러와 손수건, 밀폐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습관은 계속될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릴 때 느끼는 가벼운 죄책감이 생겼으니까.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로 텀블러 사용하기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로 텀블러 사용하기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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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채식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평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채식을 결심한 후로부터는 고기가 간절했다. 그 뒤로 나는 간헐적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웬만해서는 고기보다는 생선을, 생선보다는 달걀이나 유제품을, 그것보다는 채소를 먹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고기를 아예 안 먹기보다 먹는 횟수를 줄였다. 말하자면 채식주의자보다는 '레스(less, 덜 먹는) 육식주의자'로 사는 셈이다.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 역시 계속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하며 사는 내게 온전한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란 자연으로 돌아가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

'레스 육식주의자'로 살았던 것처럼 나는 '레스 웨이스트(덜 버리는) 프로젝트'를 설렁설렁 유지하며 살 것이다. 웬만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아침엔 챙겨 온 텀블러에 커피를 받겠지만, 저녁엔 은박지에 싸여 온 치킨을 시켜 먹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 적당한 무엇무엇 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들지라도, 그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려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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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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