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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재개발 지역에서 버티는 철거민은 여전히 사설업체 용역들의 각종 폭력과 협박에 시달린다. 철거민들은 공권력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도 받지 못한다. 유엔은 최근 이같은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특별 보고관을 파견했다. <오마이뉴스>가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말]
평택 세교 원주민 김화균씨. ⓒ 권우성
"기억이... 안나요."

김화균(79)씨는 철거 당시 현장 상황을 물었지만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잠들어있던 컨테이너 안으로 복면 쓴 용역들이 들이닥친 뒤, 그는 정신을 잃었다.

김씨는 경기 평택시 세교동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원주민이었다. 평택 세교에 80평 정도의 땅도 갖고 있었다. 아들과 농사를 지으며 살던 그의 평범한 일상이 바뀐 것은 평택세교 도시 개발 계획이 수립되면서부터다.

사업시행자인 조합 쪽이 김씨의 땅을 수용하면서 내건 조건은 평당 200만원. 김씨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낮은 보상가였다. 김씨는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10여명과 함께 개발 반대에 나섰다.

하지만 막을 순 없었다. 도시개발사업에서 해당 토지 소유주의 절반 이상이 동의하면 사업이 진행되는데, 조합은 이미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은 상태였다. 낮은 보상을 받더라도 사업 진행을 막을 수단은 없었다.

나성자 평택세교철거민대책위 총무는 "개발하면서 편파 보상을 했다, 임야인 땅은 700만원에 보상하고, 대지는 200만원도 안되는 돈을 주면서 나가라고 했다"면서 "편파 보상 하지마라, 평등 보상하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1월 30일 새벽 평택세교] 악몽
지난 2016년 2월 평택세교 강제철거 당시 철제 펜스 밑에 깔려 있는 김화균씨(왼쪽). 오른쪽 위는 철거 현장 모습. 오른쪽 아래는 병원에 입원한 김화균씨 ⓒ 전국철거민연합회
2016년 1월 30일 새벽, 김씨에겐 악몽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그는 개발 예정 부지 내 컨테이너에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복면을 쓴 용역 10여명이 자물쇠를 따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와 김씨를 강제로 끌어냈다. 시청이 제시한 토지수용개시일 2월 11일 이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용역들은 김씨를 컨테이너에서 약 150m 떨어진 철제 펜스가 있는 곳까지 끌어냈다. 용역들이 하도 잡아당긴 탓에 김씨의 허리띠는 끊어졌다. 그는 펜스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져 1시간 가까이 방치되다가 병원으로 옮겨졌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운 날씨였다. 뇌진탕과 흉부좌상, 요추부염좌 등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그는 현재 평택세교철거민대책위 사람들과 함께 평택의 한 원룸에 산다. 피해자인 김씨에게서 자세한 정황을 듣기는 어려웠다. 폭행의 충격 탓에 그는 2년 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목소리는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을 수 있었고, 말을 몇 마디 이어나가지 못했다.

나 총무는 "지금도 자주 정신을 잃는다"면서 "화장실에 가 나오지 않아서 가보면 쓰러져 있다, 갑자기 검은 그림자 같은 환영이 보였다면서 정신을 잃을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듣고 있던 김씨가 "잠을 제대로 못잔다"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잠 드는 거는 약을... 잘 때 되면 약을 먹는다고요. 그러면 한 서너시간 자고 깬다고."

그는 사건 이후로 3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었다. 잠을 자다가 습격당한 탓에 깊은 잠을 들지 못한다. 2주에 한 번은 정신과 진료를 받고, 매일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는 정신과 병명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용역들의 폭력 이후 그의 몸과 마음은 몹시 쇠약해진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김씨는 희미하게 웃으며 "(관련 내용을) 잘 좀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나 총무는 "지금까지 아무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평택 세교 도시개발사업의 사업 시행자는 에너지뱅크, 시공사(단순 도급)는 현대건설이다. 올해 공사가 마무리된 곳(1차와 2차)은 입주가 시작돼, 김화균씨 등이 살던 흔적은 사라졌다.

'오마이뉴스'는 사업시행자인 에너지뱅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5~8일 총 4차례에 걸쳐 반론을 요구했지만 에너지뱅크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전화 연결이 닿은 에너지뱅크 한 직원은 "관련한 담당자가 외근 중"이라고 답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거주하다가 야간 철거 용역에 의해 쫒겨난 평택 세교 원주민 김화균, 나성자, 신두철. ⓒ 권우성
[2017년 5월 30일 새벽 개포주공8단지] 공포의 소화기 직사

용역들에게 폭력을 당한 사례는 김씨 만이 아니다. 개포주공8단지 상가세입자들도 지난해 5월 30일 비슷한 일을 당했다. 용역들이 세입자들에게 소화기를 직사한 것. 개포8단지상가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김민수씨는 1년 전 당시 상황을 똑똑히 기억한다.

"(개포8단지) 상가 1층 맨바닥, 새벽에 거기에서 잤어요. 새벽 5시 반쯤 되니까 용역들이 400명 정도가 와서 둘러쌌어요. (우리가) 피해갈 곳이 한 평 마사지실 공간이 있거든요. 거기 숨어있었어요. 400명씩 몰려오니까. (안에 있으니까) 해머로 때려 부수는 소리도 나는 거예요."

좁은 공간이라 세입자들은 문고리를 떼 조그맣게 숨 쉴 공간을 만들었다. 용역들과 문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갑자기 소화기 호스가 그 틈으로 들어왔다. 호스에서는 이내 소화분말이 뿌려졌다. 그 안에 있던 세입자들은 그 소화분말을 고스란히 들이마셨다.

"소화기를 구멍으로 들이대서 10개 정도 소화기를 살포한 거 같아요. 저희들은 쓰러지고, 쓰러져있으면 물을 뿌리고, 또 소화기 뿌리고... 이걸 계속했어요. 정말 개 끌리듯 끌려나가고. 그런데 법원집행관은 우리가 신나를 뿌려서 (용역들이) 소화기를 쐈다고 해요. 우리가 자폭할 일 있나요? 그걸 왜 해요?"
지난 2017년 5얼 30일, 개포주공 8단지 상가에서 벌어딘 강제 집행 모습. ⓒ 전국철거민연합회
법원집행관의 판단에 따라 용역들의 폭력도 '없던 일'처럼 넘어갔다. 하지만 소화기 분말을 정통으로 들이마신 사람들에게는 '없던 일'이 될 수 없었다. 김씨는 "당시 경찰들도 나몰라라 하면서 보고만 있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날 이후 김씨는 기침과 가래가 끊이지 않는다. 병원에 가봤지만,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 병원 쪽에서 후유증이 우려된다며 몇 가지 추가적인 검사를 더 해보자고 해, 이번달 검진을 받기로 했다.

김씨는 치킨집을 하는 평범한 상인이었다. 사실 예전에는 세입자들이 시위나 집회하는 것을 보면 "왜 저러나"라고 생각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처지가 되니, 지금의 법제도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무리한 보상이 아닌 그저 같은 자리에 임대 상가 내달라는 요구인데도, 손가락질 받는다고 그는 호소한다.

"우리는 돈 달라는 소리가 아니라 임대상가 내달라, 보증금 내고 월세 내고 장사하겠다, 이거예요. 대책 없이 무작정 사람 쫓아내는 거, 정말 없어져야 해요. 그런데 사람을 너무 악하게 만들어요. 사람 취급을 안해요. 경찰도 안해요. 다 있는 자들의 편이에요. 철거민 되면서 그런 거 너무 실감해요."

개포주공 8단지는 지난 2015년 공무원연금공단이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1조 1000여억원을 받고 판 곳이다. 공무원공단은 철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퇴거를 하지 않자, 용역업체 직원들이 강제 집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공무원공단 관계자는 "협의를 해오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자진 퇴거 요구도 했고, 일부는 나간 사람도 있었다"며 나가지 않은 사람에 대해 명도 소송을 진행,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강제 집행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제철거 과정에서 소화기를 분사한 것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소화기를 분사한 것은 맞다"면서 "소화기를 뿌린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당시 현장에서 신나 냄새가 났었고, '불을 지른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해, 불을 지를까봐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역 국회의원이 강하게 경찰에 수사 의뢰를 요청해 철거 용역업체를 상대로 수사가 진행됐고, 우리도 과실 책임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도 했다"면서 "결론이 어떻게 됐나 물어보니 최근 무혐의로 종결됐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개포8단지상가철거민대책위 김민수 위원장. ⓒ 권우성
태그:#철거민, #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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