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쪼개듣기'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화제작 리뷰, 업계 동향 등 다채로운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편집자말]
 2018 서울재즈페스티벌 포스터

2018 서울재즈페스티벌 포스터 ⓒ 서울재즈페스티벌


매년 5월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펼치는 꿈의 무대, 서울재즈페스티벌이 벌써 12년째를 맞이 했다. 올해도 오는 19, 20일 양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내 각종 야외 공연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은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뷰티풀민트라이프 같은 행사와 더불어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야외 콘서트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출연진을 살펴보면 뭔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로린 힐, 에픽하이, 크러쉬, 존박, 제시 제이, 넬, 헤이즈, 혁오, 로이킴, 데이식스 등 재즈가 아닌, 팝-록- R&B-힙합 음악인들이 대거 명단에 올라 있다. 반면 재즈를 연주하는 이들은 마세오 파커, 크리스 보티, 브랜포드 마살리스 등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숫자가 미미하다.

행사 초창기 팻 메쓰니, 크루세이더스, 디멘션 등 걸출한 재즈 음악인들의 공연으로 구성되었던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시절(2007~2011년)과 비교하면 상당히 달라졌다.

특히 올림픽 공원 야외 무대로 장소가 바뀌면서 비재즈 음악인들의 참가는 눈에 띄게 급증했고 최근 2-3년 사이의 출연진들을 놓고 보면 사실상 '서울 팝 페스티벌'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렇다 보니 정작 행사 라인업에서 대중들이 먼저 찾아 보는 건 재즈 음악인 명단이 아니라 어느 해외 팝스타가 오느냐로 바뀐 지 오래다.

50여 년 관록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일찌감치 록 밴드들 초청

 2018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 https://www.montreuxjazzfestival.com )

2018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 https://www.montreuxjazzfestival.com ) ⓒ 몽트뢰재즈페스티벌


딥 퍼플, 빌리 아이돌, 앨리스 인 체인스, 퀸스 오브 스톤 에이지, 나인 인치 네일스, 잭 화이트, 매시브 어택 등. 얼핏 보면 어느 록 페스티벌 출연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이 명단은 놀랍게도 올해 열리는 한 재즈 페스티벌에 등장하는 록그룹/음악인들이다. 이 행사는 바로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매년 6월 개최)이다.

지난 1967년 키스 자렛(피아노), 잭 디조넷(드럼), 찰스 로이드(색소폰) 등 단 3명의 연주인으로 출발했던 이 음악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했고 무려 1300명(팀) 이상이 이 무대를 거치면서 명 연주를 들려준 바 있다. 이제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 각광받을 만큼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음악을 사랑하는 각국의 여행자들에게도 꿈의 관광지로 언급되고 있다.

이곳 역시 재즈 보단 팝-록 등 다른 분야의 장르 음악인들이 1990년대 이후부터 행사의 중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골 출연자가 된 딥 퍼플부터 모터헤드(헤비메탈), 토토(팝/록), 게리 무어(블루스/하드 록),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프로그레시브 록) , 블론디 (뉴웨이브), 알이엠(모던 록) 등 재즈와는 무관한 밴드들이 어느 순간부터 대세를 차지하게 되었다.

올해엔 할리우드 톱스타 조니 뎁이 앨리스 쿠퍼, 조 페리(에어로스미스)와 함께 결성한 슈퍼 그룹 할리우드 뱀파이어스의 일원으로 몽트뢰 무대에 출연할 예정이라 색다른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재즈 시장 축소도 한 몫

 지난해 열린 2017 서울재즈페스티벌 현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 https://www.facebook.com/seouljazzfestival/ )

지난해 열린 2017 서울재즈페스티벌 현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 https://www.facebook.com/seouljazzfestival/ ) ⓒ 서울재즈페스티벌


행사의 전면에 일반 팝 음악인들이 등장하다보니 얼핏 주객전도에 가까운 상황이 이들 재즈 페스티벌 이름 하에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는 근본적으로 재즈의 인기 하락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과거에도 재즈가 음악 시장의 주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외 시장에선 그럭저럭 지분을 지녔던 장르다. 컬럼비아, 애틀랜틱, 워너브러더스 등 유명 팝/록 음악 레이블마다 마일즈 데이비스, 웨더 리포트, 밥 제임스, 데이빗 샌본 등 쟁쟁한 재즈 연주자들이 몸 담고 꾸준히 음반을 내놓을 만큼 재즈는 나름의 영역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해외 메이저 음반사들의 이합집산, 레이블의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재즈 업계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던 컬럼비아, 워너 등은 더 이상 신인 재즈 음악인들을 영입하지 않고 기존 음악인들은 더 이상 재계약하지 않았다.

버브-콩코드-블루노트 등 유명 재즈 레이블조차도 팝 음악 성향으로 탈바꿈하면서 이른바 '돈이 되는' 음악 위주로 방향을 바꾼다.  데이빗 포스터, 돈 워스 같은 팝 음악계 유명 프로듀서가 이들 레이블의 CEO로 선임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진행된 일들이다. 또한  낱개의 싱글곡+스트리밍 중심으로 음악 시장이 재편된 것 역시 음반 위주 작업을 하는 재즈 업계에는 악재처럼 작용했다.

이렇다보니 재즈 관련 공연 시장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팝 음악인 중심의 행사는 비단 서울 및 몽트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는 6월 열리는 자카르타 자바 국제 재즈 페스티벌은 배우로 더 유명한 바네사 윌리엄스, 록그룹 구 구 돌스 등이 출연할 예정이고 네덜란드 노스 씨 재즈 페스티벌에는 칼리드, 너드 등 R&B와 힙합 음악인들이 대거 이름을 올린 상태다.

물론 여전히 고집스럽게 재즈로만 채우는 행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한국)을 비롯해서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벌(덴마크) 등은 여전히 재즈 및 블루스 혹은 월드뮤직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점차 재즈로만 채워지는 페스티벌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몽트뢰가 일찌감치 팝/록/R&B 음악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재즈가 아닌, 국내 인기 음악인들 위주로 공연진이 채워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진 않다. 일부 마니아들에게만 알려진 재즈 음악인들 만으론 수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대규모 행사를 감당하기란 이제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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