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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도 못하게 하는 황당한 병역법

4월 17일 대구 남구청은 병무청의 요청에 따라 병역거부로 항소심 재판중인 20대 청년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저 치킨점을 폐쇄하라고 통보했다. 병역법 제76조 제2항의 병역의무 불이행자에 대한 관허업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취소하여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시행이 되었다면 자본금의 손실은 물론 사업 실패에 따른 정신적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4월 27일 대구지법 행정1부의 결정으로 집행이 정지되었다. 5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잠정 판단한 후, 병무청에 위의 법을 근거로 영업소 폐쇄조처가 내려진 현황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라는 솜방망이가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70년대 입법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초 입법 취지는 "병역의무 불이행자가 행정청의 일정한 행정행위가 필요한 사업을 하려는 경우 그 행정행위를 제한함으로써 병역 의무의 성실한 이행을 담보"하려는 취지(1973. 1.30 법률 제2454호로 일부 개정되어 1973. 3.2 시행된 병역법 의안원문 참조)였다. 동법 제76조 제1항은 재직 중인 경우에는 해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70년대 병역기피자들은 일단 도망이나 잠적을 했기 때문에 고발을 접수한 경찰은 색출과 체포에 어려움이 많았다. 기피자가 자영업과 직장근무를 통해서 도피 자금을 확보하면 검거는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법으로 수입의 근원을 막아 놓으면 자수를 하거나 아예 기피할 생각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피자도 국민인데 밥은 먹고 살게 해 주어야 함에도 유신의 광풍은 요만큼의 틈도 주지 않았다.

그 이후 외형적인 병역기피는 거의 사라졌지만, 온갖 부정한 수단이 개발되면서 결국 병무사범은 더 늘어났다. 지금은 국내에서 신분을 숨기면서 도망을 다니는 병역기피자가 전무하다. 거의가 다 해외체류 병역기피로 신병확보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지금은 국가전산망을 각 기관이 공유하기 때문에 병역기피자가 관허업이나 직장 근무를 버젓이 할 수가 없다. 바로 기피자 신분이 들통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역법 제 76조는 기피자 박멸! 이라는 섬뜩함만을 느끼게 해 주었을 뿐, 결국 병역거부자만을 과녁으로 해서 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전락을 했다. 

병역거부자는 대상이 아니다

병역거부자는 병무청에 자진하여 거부의 의사를 밝힌 후, 사법처리의 전 과정에 걸쳐서 협력을 하고 있다. "병역의무의 성실한 이행 담보"라는 입법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병역거부자 중에서 관허업 취소와 해직을 당한 후, 병역을 이행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병역법 제 76조를 집행하는 것은 이중 처벌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기본권 침해의 제한규정인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고,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물만 먹고 살아야 할 처지가 된 병역거부자

현재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는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재청이 되어 7년간이나 심리가 진행 중이다. 따라서 각 급 법원의 선고기일이 보류된 사건이 도합 900여건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장기간 재판 대기를 하면서 소규모 자영업이나 취업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형편인데, 위의 병역법 때문에 경제 활동을 아예 하지 못하고 있다. 물만 마시거나 손가락을 빨면서 살아가라고 다그치는 형상이다. 법은 만인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반대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 억압을 하고 있다.

젊은이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악법

수많은 병역거부자가 이 법률에 의해서 해직이 되었고, 그때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방부에 취업제한을 규정한 병역관계법령과 지침 등을 개정하도록 권고한바 있다(인권위진정사건:04진인1566호.14진정0184300호) 그러나 국방부는 마이동풍 격이다. 병역거부자에게 이런 행정처분이 계속 적용된다면 재판이 언제 종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생계수단까지 잃게 되어 인권의 침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말살이 된다.

당시 법을 만든 통치자의 최후가 주는 교훈

1973년 위 입법을 주문한 통치자는 측근에 의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친의 직을 계승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통치를 한 따님도 방법이 다를 뿐, 국민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무자비한 권력에 부역한 법률은 아직도 살아남아 인권을 말살하는 시퍼런 서슬의 칼춤을 추고 있다.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속담의 이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구체적인 후속조처를 취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다시는 이런 행정 처분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인권위원회의 간판을 걸고 근원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병무청도 법률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2017년 병무청은 병역법 제 76조를 집행하면서 제한되는 관허업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의사의 의료법에 따른 의원 개설 신고도 관허업에 포함되는지를 법제처에 질의를 한 바가 있다.(안건번호 법제처-17-0257 회신일자 2017.6.27.)법제처는 회신에서 "제한되는 관허업의 범위에 (중략)명확한 기준을 두고 있지 않아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있는바, 제한되는 관허업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법령정비의견을 내었다.

병역법 제 76조 제1항, 2항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병역기피자에게 취업제한과 관허업 봉쇄를 하면 숨을 곳이 없어서 스스로 병역이행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모든 구멍을 막았지만, 아직도 병역기피 풍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피의 원인에 대한 처방이 잘 못 되었기 때문에 당초부터 입법 목적을 온전히 달성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고기를 구하는 것 같은 당치 않는 일이었다.

결국 기피자가 아닌 거부자라도 처벌을 할 수 있으니 유용하다고 강변하면서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묵살하고 있는 국방부의 인권의식이야 말로 청산되어야 할 적폐다. 생계 수단인 밥줄을 끊고 밥그릇을 빼앗아 젊은이에게 백수 생활을 강요하는 살벌한 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관허업 취소, #병역거부자 해직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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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사회의 제반 문제거리들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 이면 에 숨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저.... 관심분야- 소수자의 인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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