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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도면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얼었던 땅이 녹았다. 본격적으로 삽을 떠야 할 때가 되었다. 삽을 뜨려면, 그 이전에 철거를 해야 한다. 철거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보통 무엇을 떠올릴까. 나는 사실 떠올리는 이미지가 없었다. 목수님은 말씀하셨다.

"골조와 원형의 틀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다 버립니다."

말은 듣는다고 다 이해가 되는 게 아니다. 철거하기 전 길가 쪽으로 난 방 벽은 허물어져 속살이 거의 다 드러나 있었다. 처음 지어졌을 무렵인 1936년대 쌓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석축에 덧대 살면서 벽돌이 얹어지고, 시멘트를 덧발랐는데 시멘트가 떨어지면서 벽돌이 밀려나오고 있었다. 다른 방의 벽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연재를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철거 전의 집 사진을 기억하실 것이다. 뼈대만 남기고 다 바꾼다는 말이 바로 이런 장면을 뜻한다는 걸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 연재를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철거 전의 집 사진을 기억하실 것이다. 뼈대만 남기고 다 바꾼다는 말이 바로 이런 장면을 뜻한다는 걸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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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은 대부분 버티고 서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밑둥이 썪어 있었다.
 기둥은 대부분 버티고 서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밑둥이 썪어 있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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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블럭으로 쌓아놓은 틈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이쳤을 것임은 매우 쉽게 짐작이 되었다. 현재의 벽체를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벽체를 뜯어내는 데 천장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천장을 뜯어봐야 서까래와 들보가 나온다. 나무 상태도 그래야 가늠할 수 있었다.

애초에 지붕에 단열이라는 개념이 장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쓸 수도 없었다. 그러자니 한옥의 대수선이란 정말 말 그래도 뼈대만 남기고 싹 다 바꾸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철거 이후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철거를 시작하기 전에 결정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느냐 하는 것이다.

기와와 벽돌들이 종류별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모두 다 80년도 넘게 이 집과 한 몸으로 버텨온 것들이다.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나는 모두 다 나의 집에 다시 들여놓을 것이다.
 기와와 벽돌들이 종류별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모두 다 80년도 넘게 이 집과 한 몸으로 버텨온 것들이다.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나는 모두 다 나의 집에 다시 들여놓을 것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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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기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집 지붕에 있던 기와를 쓰는 건 선택 사항 중 하나다. 낡고 오래된 기와를 새 걸로 바꾸느냐, 옛 것을 그대로 쓰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든 이 집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옛 기와를 쓰기로 했다. 집과 한몸이었던 그 기와를 한꺼번에 싸서 버리는 게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이런 감상적인 주문은 작업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대략 난감한 것이었다. 건축주가 새 기와를 선택하면 지붕에서 내린 기와를 한꺼번에 철거 트럭에 실어 어디론가 가지고 가면 일은 끝난다. 지붕 공사를 끝내고 새 기와를 다시 공장에서 받아와서 올리면 또 일은 끝난다.

그런데 옛기와를 다시 쓰겠다고 하는 순간, 그 기와를 내려서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리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깨지고 금간 것을 새 집에 올리는 건 기와공 직업 윤리상 허용이 안 된다. 버릴 것을 버리고, 남길 것을 남긴다고 해도 쌓아둘 공간이 없다. 별도로 창고가 있지 않는 한, 좁디 좁은 공사 현장에 철거 후 다시 올릴 때까지 몇 달 동안 수천 장 기와를 쌓아둘 공간이 있을 리 없다.

이 집을 지은 분은 아마 정성은 있으셨으나 가진 돈이 풍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서까래는 한없이 가냘프고 듬성듬성하기까지 하다.
 이 집을 지은 분은 아마 정성은 있으셨으나 가진 돈이 풍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서까래는 한없이 가냘프고 듬성듬성하기까지 하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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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욕심은 기와에만 머물지 않았다. 나는 이 집에 있던 미닫이문과 창문을 다시 사용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골조만 남기고 모두 다 새 것으로 교체하는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옛집의 흔적이 집 안 어딘가에 남아  있기를, 나아가 유리창을 테이블과 장식소품으로 용도를 바꿔서 박제처럼 바라보기보다, 유리창은 유리창으로, 미닫이문은 미닫이문으로 계속해서 그것이 가지고 있던 역할을 새 집에서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전부 다가 안 된다면 단 하나라도 그렇게 이 집에 쌓인 시간에 내 시간을 보태서 흐르게 하고 싶었다. 게다가 옛날 유리창의 무늬는 요즘 나오는 공장 무늬와는 다른, 그 시절 그때만의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 역시 현장에서는 대략 난감이었다. 그 당시 만들어진 유리는 매우 약해서 깨지기도 쉽고, 보온에도 취약했다. 그걸로 문의 역할을 하게 하는 건 기능적으로 추천하고 싶지 않노라 했다. 이외에도 나는 문고리, 대문, 애자, 대문, 방문, 문살 등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욕심을 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한계는 역시 또 분명했다.

방바닥 아래 갇혀 있었을 이 구들장들은 아마 80여 년 만에 햇살 아래 누워 있게 된 셈일 것이다.
 방바닥 아래 갇혀 있었을 이 구들장들은 아마 80여 년 만에 햇살 아래 누워 있게 된 셈일 것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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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정하고, 철거는 시작되었다. 작은 집 한 채를 철거하는 데 꼬박 열흘 가까이 걸렸다. 철거 현장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많이 놀랐다. 충격이라는 말을 써도 좋았다. 기둥들은 성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다 썩어가는 나무 골조에 내가 그렇게 애정을 다해 왔단 말인가. 이 공간에서 뭘 만들어 보겠다고 꿈을 꿨단 말인가.

이렇게 싹 다 치우면, 여기에서 원형의 보존이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기껏 80년 넘은 한옥을 사서 이 집에 쌓인 시간을 존중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싹 다 바꾸면 새로 지은, 새 것의 한옥과 뭐가 다를까 싶기도 했다. 생각보다 들보는 튼실하지만, 서까래는 매우 약했다. 기둥 상태는 좋은 것과 썪은 것이 섞여 있었다. 속살을 드러낸 집을 보시고 목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집의 상태는 매우 좋은 편에 속합니다. 기둥이 썩어보이지만 아랫 부분만 그런 것이고, 저런 부분은 잘라서 튼튼하게 보완을 할 겁니다. 들보가 이렇게 예쁜 집은 흔치 않습니다. 집 지은 분이 정성을 다한 집처럼 보입니다. 집의 구조는 손을 대지 않고, 뼈대를 그대로 살린 채로 단열과 난방을 위해 벽체를 다시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것이니 원형이 그대로 유지가 되는 겁니다. 한옥의 반은 나무인데, 오래된 나무로 지은 집과 새 나무로 지은 집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납니다. 거기에다 이 집 지붕에 있던 기와를 대부분 사용할 테니, 새로 지은 한옥과는 분위기가 정말 다를 겁니다. 그런데 이 집을 지은 분은 정성껏 예쁘게는 지었지만, 돈은 별로 없으셨나 봅니다."

대부분 대청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목구조에만 신경 쓰는데, 이 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런데 나무 자재들이 너무 가늘고 약해 보였다. 예쁘게는 하고 싶으나 주머니가 가벼운, 동서고금 모든 건축주들의 일관된 고민을 뉘신지는 모르나 그분도 하고 있었던 듯하다.

한옥의 수선공사는 파란색 천막 안에서 이루어진다. 얼핏 보기에 어수선해보일 수 있으나 저 천막 경계 넘어 현장 안에서는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중이다. 그 역사란 무엇이냐. 바로 지난 80여 년의 세월이 해체, 조합, 재편성을 거쳐 새로운 공간 탄생의 역사다. 역사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옥의 수선공사는 파란색 천막 안에서 이루어진다. 얼핏 보기에 어수선해보일 수 있으나 저 천막 경계 넘어 현장 안에서는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중이다. 그 역사란 무엇이냐. 바로 지난 80여 년의 세월이 해체, 조합, 재편성을 거쳐 새로운 공간 탄생의 역사다. 역사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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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에 한 번씩 철거 현장을 들렀다. 처음 본 철거 현장의 충격은 몇 번 가보니 언제 그랬냐 싶었다. 일하는 분들께 방해가 될 듯하여 모두 퇴근하고 난 뒤 들르곤 했다. 현장은 매일매일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집 안팎은 언제나 더할 수 없이 정결했다. 늘 물청소까지 말끔히 되어 있었다. 모든 작업의 끝은 바로 정리정돈이었다.   

단 하나도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매일매일 구들장의 돌이며, 서까래 하나까지 차곡차곡 집 바깥으로 들려 나왔다. 이 집의 돌과 나무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목수님의 현장 원칙 중 하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철거 현장 주변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 집들의 흔적들을 보며 나는 진실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책상에서, 입으로만 이야기하는 서생들의 손끝에서는 나올 수 없는 현장의 아름다움이었다. 손으로, 어깨로, 허리로, 두 다리로 일하는 분들의 노동의 엄정함이 깍듯하게 쌓아놓은 돌들과 기와에 배어 있었다. 목수님은 바닥을 다 드러낸 집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집은 흙이 참 좋습니다. 기름진 흙 위에 지어진 집이라 사시기에도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던 답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 집의 나무와 돌이 참 좋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나는 마치 '별 특징 없게 생긴 사람에게 성격 좋다'고 하는 것과 같다며 웃어 넘겼다. 하지만 집에 갈 때마다 목수님이 좋다고 하신 흙을 손으로 쥐어보곤 했다. 그러고 보니 이 흙은 대지 저 깊은 곳의 기운과 연결된 것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비로소 땅 위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내가 딛고 설 땅의 흙이 좋다는 말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뒤늦게 깨닫게 된 셈이다. 철거 현장의 충격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이 좋은 땅에 꾸릴 작은 화단에 어떤 꽃나무를 심을까 하는 궁리로 머릿속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단독주택, #한옥,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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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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