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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냉장고는 왜 3개인 걸까?' 정확히 말하자면, 양문형 냉장고 1개, 김치 냉장고 1개, 냉동고 1개가 있다. 양문형 냉장고에는 대체로 3종류 이상의 과일이 늘 있고, 잡다한 야채 조각이 일회용 비닐 봉지에 말라 비틀어져 들어있다.

김치 냉장고와 냉동고에는 김치, 각종 냉동 음식, 고기가 상비돼 있다. 이 밖에도 '먹이 창고'라고 하는 3층짜리 선반에는 라면, 김, 참치 캔, 과자가 가득하다. 한 달에 한두 번 먹을까 싶은 골뱅이 통조림 역시 아홉 캔 이상 상비 돼 있다.

우리집은 성인 4명이 사는 핵가족이다. 아르바이트 하는 동생과 직장에 다니는 나는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보다 밖에서 해결할 때가 많다. 집 아래층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는 부모님은 집에서 자주 식사를 하시지만 그렇다고 두 분 다 대식가는 아니다. 이런 우리 집에 왜 3개의 냉장고와 3층짜리 '먹이창고' 선반이 필요한 걸까.
        
'미니멀리스트' 딸과 엄마의 충돌

 엄마와 살아서는 미니멀 라이프로 살고 싶은 소망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엄마와 살아서는 미니멀 라이프로 살고 싶은 소망을 이룰 수가 없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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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은 비단 먹는 문제에만 그치지 않았다. 5평 정도 되는 내 방에는 3개의 붙박이장이 있다. 내 방에 있는 옷장이지만, 엄마 옷이 옷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엄마는 30년 전 입었던 옷을 버리지 않고 보관한다. 물론 전혀 입지 않는다.

몇 년 전 그게 너무 꼴 보기 싫어서 엄마 몰래 엄마의 헌 옷을 몰래 버렸다가 된통 싸웠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미안하지만, 엄마의 헌 옷을 왜 내가 끌어 않고 살아야 하는 건지 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옷을 쟁여 놓지 않고, 간소하게 산다면 굳이 넓은 집에서 살 필요는없지 않을까?
      
엄마는 엄마 옷을 쟁여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옷을 종종 사온다. 옷이 많아 봐야 빨래할 시간만 늘어난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이 '꼬질꼬질'하다고 했다. 시집도 안 간 딸이 예쁘게 하고 다녔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옷 많다고 재벌집에 시집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채식주의자인 나에게 라쿤 털이 달린 패딩을 사다 주고, 내가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간 사이 원피스 두 벌을 샀다. 참으로 치밀한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엄마가 사온 옷을 환불하거나 버리면 엄마와 전투가 벌어지기에 환불도 못했다. 엄마와 살아서는 미니멀 라이프로 살고 싶은 소망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집안일에서도 사사건건 부딪쳤다. 왜 걸래 대는 집에 3종류를 사다 놓는 것인지, 그 걸레 대에 왜 걸레를 달지 않고 일회용 물티슈를 달아 바닥 청소를 하는 걸까. 편리한 게 우선인 엄마는 내가 걸레로 집 안 청소를 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고, 환경 보호론자에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엄마가 일회용 물티슈를 청소에 쓰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에 질려서, 엄마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끝없이 음식과 물건을 쟁여놓고,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냐고. 이렇게 쟁여 놓고 사는 대신 조금만 소비하면 일도 조금 고 여유 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엄마에게 싸움을 걸었다.

엄마는 말했다.

"한 번에 차로 대형 마트에서 장 한 번에 대량으로 보는 게 편해. 매번 조금씩 동네 마트에서 사는 게 얼마나 불편하니? 그리고 엄마는 먹을 거, 입는 거에 아끼면서 사는 거 싫어. 엄마가 네 나이 때 돈 없어서 별 고생을 다하며 살았어. 이젠 돈도 있으니 엄마는 원 없이 벌어서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사고 하면서 살 거야."

나는 적게 일하고, 적당히 벌며 소위 말하는 '소확행'을 추구하며 살고 싶지만, 엄마는 그런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적게 벌고 적게 일하며 사는 삶은 1962년생, 어촌 과부의 딸로자라 쌍문동 다락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엄마에겐 '소확행'이 아닌 '가난'을 의미했다.엄마에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을 강요할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선택한 '독립'            

나는 '미니멀리즘', '소확행' 추구 이외에도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게 됐다. 그 후에는 아버지와 남동생과 같이 사는 것 역시 불편해졌다. 자기 빨래 한번 하지 않고, 설거지도 시켜야 겨우 한번 하는 남동생에게는 '한남' 프레임을 씌워 바라보게 됐다.

다른 가족에게는 일절 상의 없이 주말에 한 무리의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놓고 "뭘 힘들어~,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아빠를 보며 '웹툰 <며느라기> 실사판이 따로 없구만'하며 한숨을 쉬었다. 

부모님과 살면 생활비를 아낄 수 있고,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반려견과 같이 살 수 있으며, 퇴근 후 차려진 저녁 밥상을 받을 수 있지만, 암만 생각해도 더는 가족과 같이 살고 싶지 않았다. 내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독립하는 편이 나았다.

부모님과 같은 방식으로 살려면 한 달 월급을 수백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영세한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은 세후 170만 원 정도다. 앞으로도 월급이 높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일할 생각도 없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부모님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다가는 마이너스 통장을 줄줄이 만들어야 할 판이다.

더 늦기 전에 몇 년을 미루던 독립을 감행했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공동체 주택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2인 1실이지만, 대신 월세가 한 달에 18만 원이다. 나만의 방이 없다는 게 무척 아쉽지만, 가족과 사느라 받는 스트레스, 월세와 생활비 지출 증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없음 등을 생각하면 별로 아쉬운 결정은 아니다.

이사를 결정한 날 부모님께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내가 독립하길 원한다는 걸 진작 안 엄마는 "그래 가라가~ 가서 한번 살아봐~"라며 포기한 듯 말했다. 가부장적인 아빠는 "가긴 어딜가!"라며 화부터 냈다. 집안일에 손도 까딱 안 하는 남동생 녀석은 "그래도 가족하고 같이사는 게 좋지"라고 했다.

이제 내가 없으면 가게일, 집안일까지 혼자 책임져야 할 엄마는 관절염으로 더욱 고생할 테고(나는 자동으로 불효자가 되는 건가?), 생면부지의 남과 한방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내가 살고싶은 대로 살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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