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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미디어나 생활 속에서 궁금한 성이야기를 성교육 전문 강사 심에스더씨에게 묻고 답하는 연재입니다. [편집자말]
tvN 드라마 <화유기> 장면
 tvN 드라마 <화유기>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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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부모님과 드라마를 보다가 남녀 주인공이 키스를 할 때면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었다. '사방이 쥐 죽은 듯' 딱 그랬다. 꼼짝 마도 그럼 꼼짝 마가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리 네 식구는 그 누구도 먼저 말을 떼지 않았고, 헛기침도 하지 않았으며, 눈동자를 딴 데 돌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 때는 그랬는데 우리 아이들은 안 그렇더라. 초등학교 1학년, 5학년인 딸들은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화유기>의 단골 시청자였다. 오연서도 알고 이승기도 안다. 그들이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정해진 수순대로 뽀뽀라도 할라치면 나랑 남편은 쥐 죽은 듯 고요한데(이걸 보여줘도 되나, 눈 감으라고 할까, 요즘 뽀뽀 정도가 뭐 어때서, 얘들도 알 건 알아야지 등 내 안에서 열두 가지 생각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숨겼다 한다) 아이들은 난리가 난다.

"엄마 이승기는 왜 저렇게 오연서랑 뽀뽀를 많이 해? 엄청 많이 나와."
"(무심한 듯 '쿨한' 척) 그러게 많이도 쪽쪽 거리네."

"엄마, 저건 뽀뽀가 아니잖아. 이승기가 오연서 언니 입술을 빨아먹는 것 같아. 아, 더러워."
"(빨아먹는 거 맞아 ㅠㅠ) 더럽긴... 사랑하면 다 저래. 쟤들이 좋으니까, 사랑하니까 저러는 거지(더럽다는데 차마 엄마·아빠도 많이 했어라는 말은 못 하겠더라)."

우리 집뿐만이 아니다. 아는 동생의 아들은 최근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빠져 있는데, "남녀 주인공이 왜 저렇게 뽀뽀 하냐"면서 엄마한테 우리도 해보자고 달려들었단다. 그런 요구를 단칼에 뿌리치기도 어려워서(아들 사랑하는 마음이 큰 탓에) 그저 입술만 '쭉' 내밀어 주었다고 한다. 난감한 '뽀뽀 이야기'를 들으며 아, 그건 아닌데... 싶기도 하고, 나였다면 그걸 어떻게 했을까 고민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이걸로 정했다.

성교육, 단어보다 중요한 건 태도

- 심샘, 엄마·아빠의 뽀뽀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자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생각이 나요. 어렸을 때 영화에서 조금 진한 키스신이라도 나올라치면 괜스레 허허 웃으시던 아빠, 갑자기 간식 가지러 가신다던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맘 편히 키스신을 음미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제 모습이(ㅠㅠ). 화면 가득 다른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는 건,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본다면 누구라도 부끄러울 수밖에요.

평소 남녀 간의 스킨십이나 애정표현을 민망한, 또는 은밀한 행동으로만 알아왔다면 더욱 그렇지 않겠어요? 지금이야 뽀뽀나 키스 등이 사랑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궁금해할 때 이야기를 해주는 일은 또 하나의 숙제 같아요.

아이들이 묻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면 물어봤을 때라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해요!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먼저' 물어봐 줄 때가 참 고마운 때인 거 같아요. 우리 피하지 말고 조금씩 해보자고요!"

- 어떻게 하란 말씀이세요?
"질문에 답을 할 때는 정확한 용어까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명확히 말하는 게 좋아요. 아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내용보다 그때의 뉘앙스로 대화를 기억하고 영향을 받곤 해요.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말하는 태도에 따라 잔소리로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성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어쩔 줄 몰라 뭉뚱그려 대충 말하면 내용은 남지 않고 부끄럽고 민망한 뉘앙스로 성을 받아들이기 쉬워요. 편견이 생기는 거죠. 예를 들어 신체를 말할 때도 음경, 대음순까지 아니어도 그거, 저거, 이거 대신 고추, 잠지 등 우리가 쓰는 용어를 평범한 뉘앙스로 명확히 말해 주는 게 좋아요. 자, 그렇다면 정말 궁금한 엄마 뽀뽀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저 금세 다크서클이... 너무 뜸 들이셨어요. 빨리 말해주세요.
"먼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뽀뽀'에 대해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해요. 사실 뽀뽀는 영어로는 '키스'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 속 뽀뽀와 키스는 느낌이 많이 다르잖아요. 해봐서 알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 부분을 짚어 줄 필요가 있어요."

- 아, 뽀뽀와 키스를 구분해서... 그렇네요.
"흔히 뽀뽀는 '입술과 입술을 쪽 맞추기', '입술을 다른 사람의 볼, 손등, 이마 등에 맞추기'라고 할 수 있어요. 연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끼리도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의 애정표현이에요. 키스는 좀 달라요. 입술을 다른 신체 부위에 맞추는 거 말고도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서로의 입술을 빨 수도 있고, 혀로 핥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가족과 친구보다 연인과 할 수 있는 애정표현에 가깝죠.

아이들이 호기심에 엄마나 아빠와 해보려고 할 때 '엄마나 아빠랑은 다르게(뽀뽀나 다른 표현을 해주며) 하고 키스는 조금 더 자라서 연인과 하는 게 좋단다' 하고 구분해 주세요. 이렇게 구분을 해주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키스에 대해 물어봤을 때 뭉뚱그려 다 '뽀뽀'라고 하기보다는 '뽀뽀 중에서도 키스'라고 알려주면 좋겠어요. 더럽거나 나쁜 행동이 아니라 서로가(반드시 서로가) 원할 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도요.

'엄마 아빠도 사랑해서 저랬는데? 지금도 하고 있고!'라고 이야기해준다면 아이들은 당연히 괴성을 질러댈 거예요. 겉으로는 그렇다 할지라도 긍정적이고 편견 없이, 키스를 애정표현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이야기를 한 뒤 보란 듯이 엄마와 아빠가 뽀뽀를 쪽! 한다면 더 좋아요). 무엇보다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가령 입술을 빨 수는 있지만 혀가 닿는 건 싫다든지 등, 키스에 대해 먼저 알고 상대방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맞춰갈 수 있는 사랑 표현 행위라는 것을 말해주세요.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도요."

빨리 안다고 큰일 나지 않아요

2009년 유네스코에서 발간한 조기성교육 지침서
 2009년 유네스코에서 발간한 조기성교육 지침서
ⓒ UN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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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아빠가 입술을 빨고, 혀로 핥는다고 하면 충격받지 않을까요? 알려주면 더 궁금해하고, 실제로 해보고 싶고 그러면 어떡하죠?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여러 모습의 스킨십과 애정표현을 경험하고 있어요. 가장 가까이에서는 가족 또는 가족처럼 함께 사는 사람들, 자주 만나는 이성/동성 친구들, 미디어 속 연인들, 공공장소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직접 간접으로 애정표현을 하고, 받고, 보고 있는 거죠. 

포옹과 가벼운 뽀뽀, 깍지 낀 두 손, 진한 입맞춤과 애정 어린 시선들, 혹은 폭력적이고 강제성을 띤 스킨십들까지 보고 겪으며 애정 표현에 대한 자신들만의 가치관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궁금해 한다는 건 서로를 존중하는 건강한 애정표현을 배우겠다는 뜻이기도 하죠!

우리는 흔히 빨리 알수록 성적인 행동을 빨리할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기 쉽지만 아이들은 우리 생각처럼 무모하게 행동부터 옮기지 않아요. 오히려 미리 알려줌으로써 잘못된 행동을 예방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어요. 실제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가장 좋은 때는 4~5세 정도라고 해요. 자신의 신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때거든요.

몇 년 전 유네스코(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는 '조기성교육 지침서'를 발간했어요. 이 지침서에 따르면 무려 5세(!) 때 이미 자위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고 나와 있답니다. 사춘기가 되기 전부터 자신의 성적인 욕구나 충동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도록 돕자는 거죠.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가지게 되기란 쉽지 않아요. 미리 알려주며 대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6세부터 아주 솔직한 성교육을 시키기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들이 있어요.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에요. 이 중 핀란드는 15세가 되면 콘돔이 들어있는 '성교육 주머니'를 나라에서 선물로 주고 있어요. 그 결과는 우려와 달리 십대 임신율, 낙태율이 세계 최저를 자랑하고 있답니다. 이 이야기가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 무조건 쉬쉬하지 말자고요. '나중에'로 미루지 말자고요. 아이들과 함께 성 이야기를 통해 우리 어른들의 편견도 함께 깨뜨려 나가봐요! 다시 말하지만, 물어봐 줄 때가 고마울 때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심에스더씨는 어려서부터 성이야기를 좋아해 '성영재'로 불렸다. 성을 사랑하고 성이야기가 즐거운 프리랜서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성교육, #키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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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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