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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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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은 새로운 시대가 코앞에 임박했다는 느낌을 주고도 남는다. 그 느낌이 너무도 확신에 차고 자신만만하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것임을'이라 하지 않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이라고 선언했다. 한반도 정세변화를 최일선에서 체험하는 두 정상이 그렇게 느낀 것이다. 통일에 관한 남북합의들 중에 이제껏 이렇게 시원시원한 표현은 없었다. 6·15 선언과 10·4 선언에도 이 정도로 활기찬 문구는 없었다.

7·4 공동성명 이래, 역대 남북합의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단어가 있다. 바로 '염원'이다. 우리 민족은 통일이란 말이 나오면 염원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향이 역대 합의 속의 '염원'이란 표현으로 반영됐을 수도 있다.

통일은 남북 모두의 '염원'

역대 남북합의에 담긴 ‘염원’ 표현.
 역대 남북합의에 담긴 ‘염원’ 표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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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남한한테도 북한한테도, 또 남한 일반 국민한테도 남한 보수파한테도 똑같이 '염원'의 대상이다. 최근 남한 보수파 일부가 분탕질을 하는 것은 통일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소외될까봐 두려워서일 것이다. 그들에게도 통일은 염원의 대상이다. 그 같은 전 민족적 염원이 조만간 성취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판문점 선언은 보여주었다.

1972년 이래의 남북합의들을 보면, 그 염원의 성취에 필요한 것들을 마치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채워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통일을 위해 어떤 마음을 갖고 만날 것인지(통일 원칙), 어떤 식으로 만남을 발전시킬 것인지(교류·협력 모색), 합친 뒤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통일국가 체제) 등등을 합의문에 담았다. 모든 사항을 한 번에 다 채운 게 아니라, 점차적으로 조금씩 채워 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북은 항상 대결과 긴장 상태에 처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통일이란 염원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 왔던 것이다. 합의서의 체결 주체가 장관급(7·4 공동성명)에서 총리(남북기본합의서)로, 다시 대통령(6·15 선언 이후)으로 격상돼온 것도 그렇다. 통일은 진화해온 생물체였던 셈이다.

통일에 관한 역대 남북합의. 위의 두 사진은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찍었고, 아래 세 사진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복사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한 고위급 회담은 제5차다.
 통일에 관한 역대 남북합의. 위의 두 사진은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찍었고, 아래 세 사진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복사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한 고위급 회담은 제5차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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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역대 합의서 속의 불가침 보장 조항이다. 서로를 열렬히 염원하는 연인들은 어떻게 하면 더 자주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덜 싸울 수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간절히 염원하는 사람들은 상호 충돌을 걱정하거나 '불가침'을 약속할 필요성이 낮다. 대개는 그렇다.

그런데 남북은 통일을 염원하면서도 불가침을 걱정한다. 7·4 공동성명 제2항에서는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라고 말했고,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제2장 남북불가침' 항목을 두었고, 10·4 선언에서는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 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고 말했고, 이번 판문점 선언에서는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말했다. 6·15 공동선언에서만 불가침 문제에 관한 언급이 없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상호간의 충돌을 걱정하는 경우는 대개는 제3자가 개입됐을 때다. 둘의 사랑을 훼방하는 제3자가 있을 때, 이로 인해 자신들이 대립관계로 바뀌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자신들의 의지만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 때 그런 걱정을 하게 된다.

남과 북이 통일을 염원하면서도 동시에 상호 침략을 걱정하는 것은, 양 당사자의 의지만으로 이 관계가 유지되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 정권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품고 있지만, 이 관계를 자기 이익대로 끌고 가려는 제3자 혹은 3자들에 대한 두려움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은 충돌 가능성을 방지하는 장치들을 합의서 안에 차근차근 축적해왔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이를 위해 6개 조문을 배치했다. 인상적인 것은 군사당국 간의 직통전화 설치다. 싸울 일이 있을 때는 직통전화로 오해를 풀자고 했다. 사실, 직통전화까지 설치할 수 있는 사이라면 처음부터 전쟁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0·4선언에서는 서해상의 충돌 방지대책과 평화체제 구축 및 종전선언 등을 통해 불가침을 담보하려 한 데 이어, 이번 판문점 선언에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도 거론하고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로의 전환도 거론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가침 보장에 만전을 기하고자 했다. 통일로 가는 길목이 우발적 사태로 막히지 않도록 하나씩 하나씩 쌓아온 것이다.

통일 원칙, 교류·협력 모색, 통일국가 체제에 관해서도 상당 수준의 합의가 축적됐다. 7·4 공동성명에서는 통일 원칙이 합의됐다. '자주적 통일, 평화적 통일, 민족 대단결에 의한 통일'을 통일의 원칙으로 내걸었다.

이 원칙은 남한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파기되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됐다. 3대 원칙 중에서 '민족 대단결에 의한 통일'은 사상·이념·제도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는 통일이다. 홍준표처럼 편향된 사상·이념·사고를 가진 사람도 통일 국가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자고 그때 이미 합의를 해뒀던 것이다.  

교류·협력 문제는 10·4 선언과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층 구체화됐지만,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꽤 상세히 규정됐다. 이산가족, 인적 왕래, 철도 및 도로 연결, 우편 및 전기통신 교류 등에 관한 사항이 이때 대략 합의됐다. 이 같은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발달시키자고 남북기본합의서는 말했다. 이때 처음 등장한 '민족경제'란 표현은 이번 판문점 선언에도 언급됐다.

통일 뒤에 어떤 유형의 '주택'에서 살 것인가, 그러니까 통일국가 체제의 문제는 2000년 6·15 선언에서 대략적 합의됐다.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서는 아직 완벽한 합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의 희망사항을 인정하고 이를 절충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 후의 합의문에는 이에 관한 언급이 없다. 향후의 합의에서 계속 채워질 부분이다.

보수정권도 원했던 '통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두 정상.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두 정상.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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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남쪽 체결 주체는 보수 정권들이었다. 이들도 통일 합의서 축적에 관한 한, 어느 정도는 기여를 했다. 이것은 그들한테도 어느 정도는 통일의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통일에 대한 민족적 염원이 그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도 통일이란 대의명분 앞에서는 민족의 염원을 등질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미·소 양국 군대에 의해 38선이 그어져 있었던 1947년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만들고 이 노래를 지금도 열정적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 민족의 염원이 보수 정권까지도 통일의 길로 내몰아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정성 다해서 통일을 이루자 했다. 이 나라 찾는 데는 통일이라 했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 했다. 그런 노래를 부르며 통일을 염원해온 우리 민족이다. 외세의 간섭과 개입 때문에 결코 만만치 않았는데도, 지난 50년간 통일에 필요한 합의들을 하나씩 축적해온 민족이다. 그런 민족이었기에, 금세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이 한반도에서 마치 퍼즐을 맞추듯 조용히 통일의 그림을 완성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왔기에, 2018년 4월 27일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는 확신에 찬 선언까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통일이 그 누구의 훼방으로도 깨질 수 없는 하늘의 명령이고 우리의 숙명이라는 것을 판문점 선언은 우리들 가슴에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태그:#판문점 선언, #남북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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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8 남북-북미정상회담 : 평화가 온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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