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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이언적은 인생을 바꿀 논쟁에 뛰어들어 세상에 이름을 드러냈다. 그의 이름은 나라의 동쪽 변방인 경주를 넘어 영남으로 알려졌고 급기야 왕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여러 벼슬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마흔한 살이 되던 해에 김안로의 복권에 반대하다 결국 삭탈관직당하고 낙향한다.

그는 본가로 돌아가지 않고 옥산동으로 들어가 집을 짓고 은거한다. 이중삼중의 폐쇄 공간에 깊이 침잠한 은둔이었다. 그에게 폐쇄는 번다한 세상을 차단하여 무진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었고, 은둔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뿐 자신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그는 홀로 있으나 세상의 중심이 되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는 이곳을 독락당(獨樂堂)이라 했다. 그에게 홀로 즐긴다는 것은 자신을 궁극에까지 몰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깊이 침잠하여 비로소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열었다. - 기자 말

독락당 일원 땅을 향해 아주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는 독락당은 인간사회와 모든 것을 차단하고 자연으로만 개방되어 있다.
▲ 독락당 일원 땅을 향해 아주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는 독락당은 인간사회와 모든 것을 차단하고 자연으로만 개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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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에는 정원이 없다. 아니 독락당과 주변 일대가 모두 정원이다. 정원을 별도로 조성하지 않았을 뿐이다. 굳이 눈에 보이는 정원 형태를 찾는다면 독락당 입구 왼편에 조성된 작은 화오와 나무 몇 그루 심은 앞마당 정도일 것이다.

그럼, 어째서 이곳을 한국을 대표할 만한 정원으로 꼽는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독락당만의 독특한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독락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원인 소쇄원과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영된 별업(別業)이다. 소쇄원이 나름 개방적인 구조로 사회성을 띠는 반면에 독락당은 지극히 폐쇄적인 구조로 개인적이다. 소쇄원이 자연의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인간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면 독락당은 인간사회와 모든 것을 차단하고 자연으로만 개방되어 있다.

독락당 역락재에서 본 독락당 쪽 산수유 풍경
▲ 독락당 역락재에서 본 독락당 쪽 산수유 풍경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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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그 폐쇄성은 독락당을 출입해 보면 알 수 있다. 독락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의 차폐를 통과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마을 앞 송림이다. 제법 너른 들판이 마을 앞 송림에 이르면 깊은 산중으로 바뀐다. 두 번째가 자계천 계곡인데 여기서 인간 세상과는 절연하게 된다. 세 번째는 그 옛날 외거노비와 소작인들이 살았던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애초 독락당 일원이었는데 이곳을 지나야 독락당에 이르게 된다.

네 번째로 높다란 솟을대문이 출입을 막는다. 대문을 지나면 다시 솔거노비들이 거주했던 공수간과 숨방채라는 다섯 번째 차폐를 만나게 된다. 여기선 독락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언뜻 보이지 않는다. 벽과 건물만 보일 뿐 문은 은폐되어 있다. 숨방채 옆으로 난 동쪽 문을 겨우 찾아 들어서면 샛마당이 나온다. 여기서도 잠시 문을 찾느라 주춤하게 된다. 안채와 사랑채로 가는 문이 정면이 아니라 옆으로 숨은 듯 있어서다. 여섯 번째 차폐인 오른쪽 문을 들어서야 비로소 독락당에 이르게 된다.

독락당  동쪽 문을 들어서면 안채로 가는 문, 사랑채로 가는 문, 계곡으로 가는 길 등 세 갈래의 문과 길이 숨은 듯 있다.
▲ 독락당 동쪽 문을 들어서면 안채로 가는 문, 사랑채로 가는 문, 계곡으로 가는 길 등 세 갈래의 문과 길이 숨은 듯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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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은 철저하게 건축을 위한 공간이 아닌, 공간을 위한 건축이다. 은둔을 위해 최소한 확보되는 공간, 그러면서도 간섭받지 않는 공간이어야 했다.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철저한 차단은 내부에서의 철저한 완결성의 지향으로 나타난다. 안팎의 세상사는 차단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여 지극한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의지가 건축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차폐들이 밖에서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땅에 납작 엎드린 건물들의 지붕선만 ㅡ자 담장 너머로 간신히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독락당은 외부에서는 전혀 그 전체 면모를 헤아릴 수 없는 단지 담으로만 인식되는 건물일 뿐이다.

자계천으로 가는 담장 마주한 두 담장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자라고 있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 자계천으로 가는 담장 마주한 두 담장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자라고 있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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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은 담으로 연출된 공간이다. 담장으로 이중삼중의 폐쇄공간을 만들었다. 미로 같은 담장은 자계천으로 이어지는 독락당 담장과 공수각 담장 사이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주한 두 담장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자라고 있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이곳에는 원래 담장이 아닌데도 담장 역할을 하는 독특한 구조물들이 있다. 살창, 협문, 계정이 그것이다. 담장 안에서는 창도, 문도, 정자도 담장의 일부로만 존재할 뿐이다. 담장 밖에서 봐야 비로소 창이 되고, 문이 되고, 건물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화장실도 담에 붙어 있다. 독락당의 담은 철저하게 폐쇄된 공간에 숨통을 틔워 주는 역할을 한다. 바로 살창과 협문과 정자가 자연과 통하는 연결구가 된다.

독락당 화장실 화장실도 담에 붙어 있는데 마당을 침범하지 않고 계곡으로 돌출되어 있다.
▲ 독락당 화장실 화장실도 담에 붙어 있는데 마당을 침범하지 않고 계곡으로 돌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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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독락당 뒤에는 더 은밀한 공간이 있다. 계정(溪亭)이다. 계정은 밖에서 보면 계곡가의 정자이지만 안에서는 은밀한 내원이다. 독락당이 강학의 공간이자 선택된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계정은 온전히 주인만의 공간이다. 이 계정 옆 담장에 자계천을 드나들 수 있는 협문이 있다. 인간세상과는 철저하게 차단하여 겹겹으로 담을 쌓고 오직 하나의 출입문만 냈지만, 자연과는 단 하나의 담장만 쌓고 문도 내고 창도 내고 마루도 내어 통하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계정 마당에는 사방으로 드나드는 문들이 있다. 사당을 출입하는 협문, 어서각을 출입하는 협문, 독락당으로 나가는 협문, 자계천을 출입하는 협문에다 집 뒤 송림으로 나가는 협문까지 사방 다섯 곳에 문이 있다. 이외에도 사당 안쪽에 있는 두 개의 협문과 안뜰에서 어서각으로 들어가는 협문까지 합치면 모두 여덟 개다. 외부로는 사람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지만, 내부(계정)에선 집 안팎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이다.

계정 밖에서 보면 계곡가의 정자이지만 안에서는 은밀한 내원이다.
▲ 계정 밖에서 보면 계곡가의 정자이지만 안에서는 은밀한 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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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계정 주위에는 모두 8개의 문이 있고, 사당에만 3개의 협문이 있다.
▲ 사당 계정 주위에는 모두 8개의 문이 있고, 사당에만 3개의 협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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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의 절정은 건물이 통째로 담이면서 커다란 창이기도 한 계정이다. 계정은 안에서는 마치 담장에 뚫어 놓은 대형 창문처럼 트인 담장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계곡 쪽에서 봐야 돌출된 정자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정 마당은 ㅁ자로 건물이 모두 담장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즉 완벽한 네모 형태의 구성을 위해 건물은 마당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하고 담장이 되든지 아니면 담장 밖으로만 존재하여 은둔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공간으로만 창출되고 감추어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당의 완결성을 위해 건축이 양보한 설계임을 알 수 있다.

계정 계정은 안에서는 마치 담장에 뚫어 놓은 대형 창문처럼 트인 담장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 계정 계정은 안에서는 마치 담장에 뚫어 놓은 대형 창문처럼 트인 담장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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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 독락당의 핵심 풍경으로 밖으로 돌출된 정자이다.
▲ 계정 독락당의 핵심 풍경으로 밖으로 돌출된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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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

독락당은 마룻널을 제외하곤 모두 단청이 되어 있다. 건물은 땅을 향해 아주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다. 기단도 낮아 자신의 존재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깊이 침잠한 건물이다. 안채와는 책방으로만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얼핏 보면 격리되어 있는 듯하다.

이언적이 나중에 지었던 양동마을의 관가정이나 동생을 위해 지었던 향단과는 사뭇 다르다. 양동마을에 있는 두 집은 보란 듯이 산등성이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듯 호탕하게 서 있는 반면 독락당은 깊숙이 나지막이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양동마을의 향단 이언적이 동생을 위해 지었던 향단과 태어난 관가정은 숨어 있는 듯한 독락당과 달리 산등성이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듯 호탕하게 서 있다.
▲ 양동마을의 향단 이언적이 동생을 위해 지었던 향단과 태어난 관가정은 숨어 있는 듯한 독락당과 달리 산등성이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듯 호탕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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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당 독락당의 건물 구조를 보면 본가인 양동의 서백당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 서백당 독락당의 건물 구조를 보면 본가인 양동의 서백당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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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 하나, 이언적이 낙향했을 때 본가인 양동마을에 가지 않고 삼십 리나 떨어진 이 외진 옥산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대개 사대부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마련이지만 회재는 고향인 양동마을 대신 이곳을 택했다. 아마도 삭탈관직당하고 나니 고향에 갈 면목도 없었거니와 이곳에는 그가 아끼던 소실이 살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락당의 건물 구조를 보면 본가인 양동의 서백당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살창 독락당의 살창은 집 안에서 계곡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구조물이다.
▲ 살창 독락당의 살창은 집 안에서 계곡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구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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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의 하이라이트, 살창
독락당은 정면 4칸, 옆면 2칸의 건물이다. 방은 1칸이고 마루가 3칸이다.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곡 쪽의 마루는 예전에 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계곡 쪽으로 창이 나 있는데 이 창에서 바라보면 계곡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살창이 담장에 설치되어 있다. 독락당에서 가장 극적인 연출이고 독락당의 상징이 된 담장의 형태이다. 회재는 이 살창을 통해 물을 바라보고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고 자신을 수양했을 것이다. 이황이 쓴 옥산정사라는 현판, 남공철이 쓴 옥산정사 기문, 이산해가 쓴 독락당 현판, 한석봉이 썼다는 계정에 걸린 편액도 눈여겨볼 만하다. 옥산서원의 현판은 김정희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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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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