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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자 유난히 행사가 많은 달입니다. 덩달아 신경 쓸 일, 돈 쓸 일이 몰려 있어 '5월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5월이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지난달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을 폐지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현직 초등학교 교사였다. '스승'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기념일을 '스승'이 원치 않으니 없애 달라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5월 8일 '어버이날'과 더불어 5월 15일 '스승의 날'은 나를 돌봐주고 가르쳐주는 어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뜻깊은 기념일로 여겨져 왔다. 스승의 날이 되면 학생을 거쳐 성인이 된 제자들이 학창 시절의 스승을 만나기도 하고, 현재의 학생들도 자신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위해 편지를 쓰고,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면서 감사함을 표현한다.

이런 뜻깊고 따뜻해야 할 '스승의 날'이 왜 주인공인 '스승'들에게 부담스럽고 차라리 없어졌으면 하는 날이 되기 시작한 것일까? 2011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기자가 직접 겪은 스승의 날 교실 풍경을 되돌아보고, 참다운 '스승의 날'이 되기 위해 생각해보아야 할 점에 대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특별한 날이었던 스승의 날

처음 담임을 맡은 아이들과는 매달 축제를 하면서 행복했다.
 처음 담임을 맡은 아이들과는 매달 축제를 하면서 행복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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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이후 2016년까지, '스승의 날' 교실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신규교사로 처음 부임하게 된 학교는 도심 속 아파트 단지에 있는 큰 학교였고, 아이들은 30명 내외로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의 특성 상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반 아이들과 담임교사인 나는 거의 가족과 같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

처음 담임을 맡은 아이들과는 매달 축제를 하면서 행복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을 '아이들을 위한 날'로 정하고, 그 달에 생일을 맞이한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

생일 선물은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미리 생일을 맞이하는 아이들이 원하는 활동이나 수업을 물어보고(물론 대부분 체육활동이거나 장기자랑이었다), 그 활동을 2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위해 가장 큰 케이크를 사서 반 전체와 함께 먹고 생일인 아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문구류)을 하나씩 사주었다. 크게 특별하지 않고, 소박한 행사였지만 아이들은 한달 중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생일을 맞은 몇몇 아이들은 기쁨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교사로서 참 보람되고 행복했다.

다음 해에는 좀 더 특별하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께 허락을 미리 맡아 주말에 반 아이들 4~5명을 1조로 하여 학교 주변의 공원이나 시내에 함께 가서 '선생님과의 일일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 코스는 아이들이 직접 짜게 했으며 점심은 선생님이 사주되 다른 돈은 각자 용돈을 가지고 와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게 했다. 또, 스티커 사진을 찍거나 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를 해주어 추억을 함께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활동으로 아이들은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의 특별한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과 반갑게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한 날'로 특별한 선물을 해주었듯이, 제자들은 '스승의 날'이 되면 항상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주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님을 위한 장기 자랑을 준비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반장이 선생님 몰래 아이들과 '007작전'을 펼쳐 스승의 날 당일 아침 7시에 나와 칠판에 풍선을 달고 큰 전지에 롤링페이퍼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본인들의 용돈을 모아 카네이션과 케이크를 사오기도 했다.

몇 년 전 스승의 날에는 내가 학교에서 신는 슬리퍼가 뜯어진 것을 본 제자들이 직접 신발 가게에 가서 새 슬리퍼를 선물로 사왔다. 아이들이 내 신장을 본인들 생각보다 크게 봤는지 내 사이즈보다 큰 것을 사왔지만,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 열심히 신고 다녔던 따뜻한 추억도 있다.

'김영란법' 시행... 달라진 풍경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2017년 5월 14일 오후 서울 반포 꽃시장에 카네이션이 소량만 진열돼 있다. 한 상인은 "김영란법 등으로 카네이션 판매가 줄어 스승의날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많이 가져다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2017년 5월 14일 오후 서울 반포 꽃시장에 카네이션이 소량만 진열돼 있다. 한 상인은 "김영란법 등으로 카네이션 판매가 줄어 스승의날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많이 가져다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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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후 스승의 날 풍경은 달라졌다. 스승의 날 며칠 전 '스승의 날, 담임교사에게 카네이션 포함 일체 선물 금지'라는 가정통신문이 나가고, 스승의 날 전날에는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에 어떤 선물도 가져 오지 말라고 알림장에 써주세요'라는 메시지가 교무실에서 전파된다. '스승'인 내가 자신을 위한 날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고 알림장에 쓸 때는 참 기분이 묘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청탁금지법 문의에 대한 답변을 보면 더 씁쓸하다. 생화 카네이션은 공식석상에서 학생 대표만 줄 수 있으며, 음료의 경우는 어떤 학생이라도 선물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 이유가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청탁품(?)을 받으면 공정하지 못한 평가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과연 카네이션과 음료를 받고 그런 생각을 할 교사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물론, 학부모에게 촌지를 받고 그 학생의 편의를 봐주거나 차별대우를 하는 사례들로 인한 제재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카네이션과 음료조차도 안 된다고 하는 건 좀 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스승의 날 시즌이 되면 김영란 법과 교사를 주제로 한 기사가 자주 보인다. 기사에 달린 교사 비하 댓글들을 보면 힘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김영란법 시행 후 첫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해에는 웃지 못할 씁쓸한 기억도 있다. 그 해도 어김없이 아이들과 주말을 활용해 선생님과의 일일 데이트를 하고 생일 파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스승의 날'이 문제였다. 아이들에게 미리 '선생님한테 선물은 안 돼!'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자신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선생님에게 조금이나마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나 보다. 카네이션을 가져온 아이들, 캔 커피를 사온 아이들, 초콜릿을 사온 아이들 등 참 다양했다. 특히 기억나는 건 제자 할머니의 '스승의 날' 선물이었다.

"선생님, 할머니가 시장가서 선생님 드시라고 전통 과자 사오셨어요."

선물을 가지고 온 아이는 부모님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해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친구였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그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함께 목욕탕도 가고 신발도 사줄 만큼 뜻깊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을 다 돌려보낸 터라 그 과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준우(가명)야, 이거 집에 가서 할머니랑 같이 맛있게 먹어. 할머니한테 선생님이 정말 감사하다고 잘 말씀드려"

실망하며 그 과자를 가져가는 그 아이의 표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할머니한테 김영란법을 설명하기도 어렵고, 참 난감했다. 어떤 친구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저희 생일 케이크도 사주시고 놀러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시는데 저희는 왜 못해요?"
"선생님이 미안해. 대신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 편지로 써 주렴."

자신의 선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선생님한테 실망한 아이의 질문에 할 말이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김영란법 시행된 이후 스승의 날뿐 아니라 교사의 생일, 종업식, 졸업식, 수학여행, 수련회 등 들뜨고 설렘이 가득해야 하는 날이 '혹시 아이들이 선물 가져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는 부담스러운 날로 자리 잡아 버렸다.

따뜻하고 의미 있는 '스승의 날' 되려면

스승의 날을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심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여전히 스승의 날을 통해 제자들이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는 따뜻한 모습이 많이 있고, 연락이 뜸했던 은사님께 자연스레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스승의 날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스승의 날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실 속 교사와 학생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스승의 날이 교사와 학생에게 부담이 되고 꺼려지는 날이 아니라 주인공인 교사와 주인공에게 감사를 표현하고자 하는 제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선생님이 가장 바라는 것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잘 이해시키고 사전에 교사와 학생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장기자랑, 야외 체육활동, 선생님을 주제로 한 영화시청 등)을 계획해서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또한 김영란법의 과도한 적용에 대해 일선 교사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여 어느 정도 융통성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행복한 날이 될 수 있도록 교육주체들이 함께 노력해 나간다면 지금보다는 따뜻하고 의미 있는 '스승의 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태그:#스승의 날, #교사와 학생, #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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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이 가득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교육이야기를 전하고자합니다. 또,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둑과 야구팀 NC다이노스를 좋아해서 스포츠 기사도 도전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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