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밤새 뒤척이며 잠을 자지 못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어머니도 밤새 잠을 못 주무셨다고 했다. 그 덕에 피곤하긴 했지만 아까운 시간을 허투루 보낼순 없기에 아침 일찍 준비하고 둘째날 여행 일정을 시작했다.
둘째날 여행은 순천 일대를 돌아보고 저녁에 여수로 넘어갈 계획이다. 첫 코스는 순천 드라마 촬영장으로 갔다. 아침 저녁으로 일일 연속극, 주말이면 주말 연속극까지 꼬박 꼬박 챙겨볼 만큼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한 맞춤 코스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에는 80년대 서울 변두리 거리가 그대로 재연돼 있으며 좀 윗쪽으로 걸어올라가면 달동네가 그대로 만들어져 있다.
어릴적 우리집은 부산 사상구 주례동의 한 허름한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에 살았다. 집들 사이 사이로 골목길에서 동네 친구들과 딱지치기하며 뛰어 놀았고 앞집, 뒷집, 옆집 모두 한가족들처럼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 시절 김해로 이사를 오면서 고향을 떠났는데 순천 드라마 촬영장의 달동네를 돌아보며 옛스러운 달동네 골목길을 보며 어린시절 친구들 생각이 났다.
드라마 촬영장을 나와 순천 도심에 있는 '패션의 거리'와 '문화의 거리'에 들렀지만 오전 시간이라 옷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는 구 도심 패션의 거리는 썰렁했고 문화의 거리는 공사중이라 들어가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점심 먹고 오후에 가려고 했던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엄청 넓었다. 제대로 구경하려면 4시간 이상을 걸어다니며 구경을 해야 다 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내부 지도를 손에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구경을 시작했다. 봄이라 튤립을 비롯한 여러가지 꽃들이 곳곳에 피어있어 천천히 걸으면 꽃향기가 코 끝을 자극했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는 '스카이 큐브'라는 미니 전동 열차를 탈 수 있었다. 큐브 모양의 작은 전동차를 타고 순천만 습지까지 갈 수 있다. 차를 순천만 국가정원에 세워두고 스카이 큐브를 이용해 순천만 습지까지 한번에 관람이 가능했다. 하지만 중간에 점심 때가 겹쳐 있어 우리는 스카이 큐브 타고 왔다갔다 하면서 경치만 구경하고 순천만 습지는 오후에 따로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점심은 순천 아랫장에 있는 국밥집으로 갔다. 전라도 돼지국밥을 먹었는데 우리가 자주 먹는 경상도 돼지국밥과는 스타일이 완전 달랐다. 하얀 국물에 돼지고기와 다대기 양념장을 넣어 먹는 경상도식 돼지국밥과 달리 빨간 국물에 콩나물까지 들어가 있어 경상도의 소고기 국밥과 비슷한 느낌의 돼지국밥이었다. 그리고 토종순대는 살짝 데친 부추가 함께 나와서 순대에 올려 함께 먹는데 그냥 순대만 먹는 것보다 식감도 풍부해지고 느끼함도 잡아주어 괜찮았다.
늦은 점심 든든히 먹고 순천만 습지로 갔다. 순천만 습지는 '갈대밭'으로 유명한 곳인데 봄이라 갈대숲을 구경할 순 없었다. 대신 물이 빠진 습지 위로 놓인 데크로드를 따라 걸었다. 뻘에 구멍을 뚫고 올라온 여러 종류의 작은 '게'와 지느러미를 이용에 습지 위를 기어다니는 '짱뚱어'를 볼 수 있다. 심심찮게 보이는 게와 짱뚱어를 찾아 사진 찍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순천만 습지까지 구경하고 나니 어느덧 둘째날 해가 뉘엿 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둘째날 숙소는 여수다. 이제 여수로 이동해서 저녁은 여수에서 먹기로 했다. 여수 숙소는 '이순신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첫날 밤에 어머니도 나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일찍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 시간까지 좀 쉬기로 했다.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나는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오늘 저녁 메뉴는 '정식'이다. 이번에 찾아둔 전라도 정식은 여러가지 반찬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게장'도 나오고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두루치기도 나온다. 좋아하는 음식 취향이 다른 어머니와 내가 모두 만족할 만할 메뉴는 바로 정식이다.
이번 식당 정식은 전날 저녁에 찾았던 기사 식당보다 가격이 천원 더 저렴한 7천원이다. 7천원짜리 정식이었는데 게장이며 게 된장찌개며 갓김치며 먹었던 식당들 중에 제일 괜찮았다. 맛있는 음식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전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주 '잎새주'를 시켜 반주 삼아 한 잔 했다.
든든히 저녁 먹고 여수 밤바다를 보기 위해 숙소 근처 이순신 광장으로 갔다. 이순신 광장에는 커다른 이순신 동상과 거북선이 있다. 특히 거북선은 직접 배 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게 돼 있는데 배 안에서 당시 선원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간단히 거북선과 여수 밤바다를 구경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3시간 안에 재탑승해야 하는 여수 해상 케이블카
셋째날은 여수 여기 저기를 돌아보고 저녁에 거제도로 넘어간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에서 어머니가 매일 챙겨보는 아침드라마를 보고 밖으로 나왔다. 여수의 첫 코스는 고소동 벽화마을 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산동네 마을 하나가 모두 벽화로 채워져 있는 예쁜 곳이었다. 여러 구간으로 나뉘어져 다양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는데 다리와 허리가 불편한 어머니가 오르막길과 계단이 많은 벽화마을을 오래 돌아볼 수 없어 9구간만 짧게 돌아봤다.
고소동 벽화마을을 나와 하멜전시관과 하멜등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여수는 조선에 표류했던 서양인 '하멜'이 7명의 동료들과 함께 탈출한 곳이다. 그를 기념하며 하멜 표류기가 기록된 작은 전시관과 빨간색 하멜 등대가 세워져 있다. 하멜 전시관 앞 작은 부두 주차장에는 캠핑카를 세워두고 캠핑중인 가족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하멜 전시관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여수 해상 케이블카가 지난다. 여수의 섬과 섬을 잇는 여수 케이블카는 바닥이 내려다 보이는 투명 바닥과 일반 케이블카가 있다. 어머니는 웬만한 여행지에 모두 경로 우대로 할인이 되거나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여수 해상 케이블카는 일반 케이블카만 할인이 가능했다.
여수 돌산읍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동도로 갔다. 여수 하면 '오동도'라는 섬이 유명하다. 특히 봄에는 오동도에 있는 산에 모두 동백꽃으로 가득하다. 오동도 입구에서 동백열차를 타고 오동도로 들어가 한참을 걸어 오동도 끝에 있는 등대까지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깨끗한 여수 바다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실컷 쐬고 돌아왔다.
여수는 오동도 근처에서 엑스포도 열렸고 가볼만 한 곳들은 대부분 근처에 집중돼 있다. 오동도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오후 내내 주변 구경을 한 뒤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돌산읍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밥 다먹고 일어나면서 케이블카 티켓을 보는데 '첫 탑승 후 3시간 안에 왕복 탑승을 해야한다'는 문구가 써 있었다. 그걸보고 서둘러 다시 왕복 케이블카를 탑승하러 가야했다. 예상치 못한 케이블카 시간으로 여유롭던 시간은 사라져 버리고 다시 돌아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나서야 다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차를 가지고 다시 오동도가 있는 여수 엑스포로 갔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아쿠아리움'을 한번도 가본적 없다고 하시길래 여수 마지막 코스는 '아쿠아 플라넷'으로 잡았다. 나는 해운대에 있는 '아쿠아리움'을 가보고는 비싼 가격대비 볼거리가 부족해 실망을 했는데 여수에 있는 '아쿠아 플라넷'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형 수족관을 처음 가본 어머니는 여러가지 수중 생물들이 신기하셨는지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셨다.
아쿠아 플라넷을 나오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가 지나 있었다. 이번 여행 마지막 밤을 보낼 이번 숙소는 거제 장승포다. 여수에서 거제 숙소까지는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저녁을 거제에서 먹을 거라 서둘러 차를 몰아 거제로 넘어갔다. 이렇게 짧은 3일간의 전라남도 여행이 끝나고 남은 하루 거제도 투어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