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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4.30 07:35수정 2018.05.14 18:02
봄철, 제주의 멜국은 멸치의 고소함과 봄동의 단맛이 조화롭다.

봄철, 제주의 멜국은 멸치의 고소함과 봄동의 단맛이 조화롭다. ⓒ 김진영


4월 말, 여행가기 참 좋은 시기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산들바람마저 분다면 금상첨화다. 제주에 당일치기 출장을 다녀왔다. 제주에 출장 간다고 하면 다들 "좋겠다"고 하지만, 일과 연관되는 순간 타임 테이블에 갇힌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제주 출장이다. 제주는 수십 번 넘게 간 곳이라 초행 길이 아니면 내비게이션은 끄고 다닌다. 길을 알고 있으니 규정 속도만 지키면 그만이다. 여행으로 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이니 한 끼 정도는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몇 가지 음식을 생각하다 하나가 떠올랐다. TV에 소개된 맛집도, 블로거가 극찬한 식당도 아닌 '멜국'이었다. 어쩌면 멜국 한 그릇 먹기 위해 출장을 잡았을 지도 모른다. 제주에는 먹을 게 많다. 고기국수, 갈치조림, 전복죽, 보말요리, 흑돼지 등 입맛 다시게 하는 음식들이 많다.

고기국수는 여러 곳에서 먹었다. 줄 서서는 딱 한 번 먹었다. 왜 줄 서는 지가 궁금했다. 줄 서는 곳이나 아닌 곳이나 맛은 대동소이 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용도로 음식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면 굳이 줄을 설 이유를 딱히 찾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운전하다가 보이는 곳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줄 설 시간도 없거니와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자멸·소멸·중멸·대멸... 크기에 따라 구분하는 멸치

'멜국'은 싱싱한 멸치로 맑게 끓여낸 국이다.

'멜국'은 싱싱한 멸치로 맑게 끓여낸 국이다. ⓒ 김진영


'멜국'은 싱싱한 멸치로 맑게 끓여낸 국이다. 하필이면 왜 봄이어야 하는가? 멜국에 쓰는 대멸은 봄과 가을에 잡힌다. 산란하러 봄에 한 번, 봄에 태어난 치어들이 자라 월동하러 남녘으로 떠나기 전 한 번 잡힌다. 그 사이 크기에 따라 멸치를 구분한다. 2cm 이하는 자멸(지리,※ 가로 안의 명칭은 일본말인데, 유통 현장에서 많이 쓴다), 2~5cm는 소멸(가이리), 5~7cm는 중멸(고주바), 7cm 이상은 대멸(주바)이라고 부른다.

대멸이 봄·가을로 잡히고, 나머지는 6월부터 순서대로 잡힌다. 최근에는 수온 상승 영향으로 서해에서도 멸치가 많이 잡힌다. 멜국에 빠져서 안될 식재료가 봄동이나 배추인데 봄이 지나 더워지면 단맛이 빠지고 아삭함이 덜하다. 배추는 재배 온도가 15℃ 내외가 좋다. 육지마냥 춥지 않은 제주 겨울을 보낸 봄동에는 단맛이 그득하다.

그래서 봄철 4월의 멜국은 멸치의 고소함과 봄동의 단맛이 조화롭다. 멜국? 멸칫국? 비린내 나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비린내는 물고기가 죽은 다음부터 시간에 비례해 강해진다. 아침나절 포구에서 사온 것은 비린내가 별로 없다. 싱싱한 멸치에 같은철에 난 봄동이나 월동 배추를 송송 썰어 맑게 끓이면 맛있는 봄철 멜국이 완성된다.

일보러 가기 전, 점심 때라 서귀포의 작은 포구에 들러 멜국 한 그릇 하기로 했다.  귤로향이라는 신품종귤이 출장의 목적이었지만, 허기진 터라 출장 전부터 입맛 다시던 멜국 한 그릇이 먼저였다. 일하는 것도 밥 먹기위함이 아니었던가. 서귀포 법환포구에 있는 전문점을 찾았다. 그런데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는 인테리어가 한창이었다.

뭐 봄철에 멜국 한 그릇 못할까 싶어 동네를 뒤졌다. 예전 봄철 출장 길에 포구에 들르면 식당 앞에 붙어있던 '멜국 개시' 안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문구가 없어 의아했다. 한림항 중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멸 안 들어 왔어요?"
"풍랑도 자주 있고, 요새 바다 조황이 좋지 않아 멸이 없시여."

벚꽃이 피기 전부터 멸치가 들어왔던 제주 바다에 벚꽃이 질 때까지 멸치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도 모르고 무작정 4월의 제주라 멜국부터 찾으니 멜국 하는 곳을 쉬이 찾을 수 없었다. 바다가 한없이 줄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도 않다.

찰나처럼 지나가는 제철 음식, 있을 때 먹어야

장대의 본명은 양태지만 제주에서는 장대라고 부른다. 담백하고 고소한 살맛이 일품인 생선이다. 옥돔국처럼 무와 함께 끓여 시원한 맛이 좋다.

장대의 본명은 양태지만 제주에서는 장대라고 부른다. 담백하고 고소한 살맛이 일품인 생선이다. 옥돔국처럼 무와 함께 끓여 시원한 맛이 좋다. ⓒ 김진영


한반도 바다에 차고 넘치던 명태, 오징어, 대구, 조기가 남획에 의해 귀해진 걸 보면 바다가 화수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밥 때가 지나 뱃속에서 저글링 하는 허기를 서귀포 오일장에서 고기짬뽕으로 달랬다. 볼일을 마치고 분홍빛 강렬한 겹벚꽃이 핀 516도로를 타고 제주시로 넘어갔다.

공항에 가기 전, 서귀포에서 못 먹은 멜국이 못내 아쉬워 구 시가지로 향했다. 봄철이면 멜국과 장대국을 내는 곳이다. 장대의 본명은 양태지만 제주에서는 장대라고 부른다. 담백하고 고소한 살맛이 일품인 생선이다. 옥돔국처럼 무와 함께 끓여 시원한 맛이 좋다.

식당에 들어가 멜국을 주문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뚝배기 가득 봄동과 함께 끓인 멜국이 나왔다. 멜국 먹을 때는 같이 나오는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를 입맛에 맞게 넣고 먹으면 좋다. 국물 한 수저 뜨니 어제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 데도 속이 시원해진다.

서둘러 봄동과 멸치를 함께 먹는다. 멜국을 먹는 중간쯤 궁금함이 밀려왔다. 내가 먹고 있 는 이 멜은 어디서 났을까? 궁금해서 주인에게 여쭤보니 멜이 날 때마다 급랭해서 쓴다고 한다. 바다 상황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 그리한다고 한다.

궁금증이 해결됐으니 뚝배기 반쯤 남은 국을 먹고는 기분 좋게 식당을 나섰다. 한라산을 넘어오며 봤던 지는 벚꽃에 가는 봄이 아쉬웠지만, 멜국 한 그릇에 가는 봄을 잠시 붙들었다. 4월과 5월 제주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때 주저없이 선택하면 좋은 음식이 '멜국'이다. 제철 음식은 찰나처럼 지나간다. 있을 때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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